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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립 Mar 19. 2020

[술터디 여덟째날] 블랙 러시안: 울어도 괜찮아

[술터디 여덟째날] 블랙 러시안: 울어도 괜찮아     


제가 칵테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한 맛이 섞여서 새로운 맛과 향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재료를 섞는 과정에서 마시게 될 사람만을 오롯이 생각해야 한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개별 존재를 존중하되 포용까지 하는 칵테일 같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술터디 여덟째 날 시작합니다.


# 블랙 러시안

   

블랙러시안
블랙러시안 레시피

올드패션드 글라스에 큐브드 아이스 3~4개를 넣고, 보드카 1oz와 깔루아(커피리큐르) ½oz를 넣습니다. 7~8회 잘 저어주면 끝! 참 쉽죠? 블랙 러시안에 우유를 넣으면 ‘화이트 러시안’이 되고, 우유와 깔루아를 섞으면 ‘깔루아 밀크’가 됩니다. 깔루아는 커피 향에 단맛이 강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깔루아보다 덜 한 단 맛을 원한다면 티아 마리아(Tia Maria)를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저는 극강의 단맛을 추구하여 잘 바꿔서 넣지는 않습니다. 하핳     




# 울보의 역사

저는 울보입니다. 제가 우는 덴 이유가 없습니다. 어릴 땐 낯을 많이 가렸습니다. 4살 때까지 엄마와 떨어지질 않아서 집에서도 엄마가 화장실에 가지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엄마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며 울었기 때문이죠. 부모님 외의 사람이 얼굴이라도 보려고 하면 일단 울고 봤습니다. 가끔 예외가 있었는데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보고는 울지 않았습니다. 반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보면 다른 때보다 얼굴이 더 벌게져 울었는데 이것이 집안싸움의 원흉이 됐다고도 합니다.

     

7살, 유치원 개인 활동 시간에 저는 리본 묶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하는 리본 묶기가 잘 되기는 힘들었겠죠. 하지만 저는 못하는 저 자신에 화가 나서 또 울었습니다. 결국 제가 리본을 묶을 수 있을 때까지 선생님이 옆에 붙어서 알려줬습니다. 결국 그 날 리본 묶는 법을 완전히 배우고 갔습니다. 엉엉 훌쩍 (눈물 훔치고) 엉엉 모르겠어요 흐엉을 반복했을 생각에 웃겨서 미소가 지어지기도 합니다.     


중․고등학교때는 한 학기에 두 번은 꼭 울었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전 과목에서 한 개를 틀렸든, 한 과목에서 한 개를 틀렸든 상관없이 항상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공부한다고 난리치고도 틀리는 제가 쪽팔려서 울었던 것 같습니다.     


스무 살 이후 울었던 것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처음 고백하고 차였던 날인 것 같습니다. 무슨 드라마처럼 비 오던 날 고백을 했는데 “사랑은 타이밍이야. 버스는 떠났어.”라는 이상한 말을 듣고 차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저는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던 상태라 충격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한 번도 연애해보지 않아 어설펐다는 제 자신에 대한 자책과 분노, 저런 사람에게 목메며 좋다고 하고 있는 제 자신이 한심해서 울었습니다. 기분을 풀겠다고 바에 가서 ‘깔루아’라는 말만 보고 “달겠거니”하고 블랙러시안을 시켰는데 보드카 향이 너무 강하고 맛이 써서 “애인도 없어, 맛도 없어, 운도 없어”라며 오열했던 것이 더 웃겼던 것 같습니다.     




엉엉엉


# 우는 건 약한 게 아니다

이후에도 저는 많이 울었습니다. 누구에게 화를 내다가 혼자 악에 받쳐 울기도 했고, 나서야 할 때 안 나서고, 안 나서야할 때 나섰던 제 과거와 주기적으로 싸우며 이불킥하다 울기도 했습니다. 취직에 실패할 때마다 울었고, 우우할 땐 해 지는 걸 보고 울기도 했고, 노량진에 잔뜩 붙어있는 공무원 광고 시험 광고판들을 보며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수두룩 빽빽한데 별로 다를 게 없는 나는 뭐해먹고 사나 싶어서 울기도 했습니다. 가족이랑 싸워서, 운동도 하고 술도 먹고 옷도 사고 여행도 가고 싶은데 돈 없는 백수라서 울고, 새벽에 혼자 깨 있을 때는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되나 싶어서 울기도 했습니다.     


한 번도 제가 우는 게 괜찮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특히 남 앞에서 우는 것은 말이죠. 약해보여서 싫었습니다. 안 그래도 저 자신이 구질구질해서, 화는 나는데 말로 표현이 안 돼서 우는데 그 모습을 남이 알게 된다는 게 너무 싫었습니다. 또 한국에서 우는 건 무시받기 딱 좋은, 터부시 되는 모습이기도 하니까요.     


근데 제가 상담을 받기 몇 달 전, 우울감이 가장 심했을 때는 눈물도 나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울 힘조차 없고 온 몸이 텅 비어버린 느낌이랄까요. 아무 생각도 없이 무기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우는 게 약함의 표시가 아니라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다 비워내고 다시 살아가고 싶다는 표시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울고 나면 당시의 감정은 다 비워지고, 다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거든요.     


물론 매순간 참을 수 없이 눈물이 나온다면 그것 또한 약물이든, 상담으로든 치료를 받아야겠죠. 하지만 더 이상 우는 저 자신을 싫어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물론 아직도 우는 게 부끄럽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이유로 ‘약해보여서’가 아니라 눈물 말고 다른 방법으로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는 점을 부끄러워하겠습니다. 더 말하고, 싸우고, 움직이고, 운동하고, 웃고, 나를 사랑하는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칵테일 마시는 것도 잊지 않겠습니다. 곧또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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