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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Jun 13. 2023

영원히 차 조심을 외치는 사람

아이는 이제부터 학교를 마치고 혼자 걸어오겠다고 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 혼자 걷는 건 그다지 걱정되지 않지만 딱 하나 걸리는 건 작은 찻길을 건너야 한다는 점이었다. 시동 소리만 나도 흠칫 놀라는 겁 많은 아이라 허둥지둥하다 무슨 일이 나는 건 아닐까. 언제는 길을 반쯤 건너다 말고 저 멀리 차가 보이자 후다닥 돌아온 적도 있어서 여러모로 신경이 쓰였다.

 

"엄마, 나 끝났어. 갈게."

아이의 전화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뛴다. 길을 잘 건널까. 너무 갑자기 뛰거나 하지 않을까. 보자기 둘러쓰고 어디 큰 나무 뒤에 숨어서 지켜볼까 하다가 혼자 해보겠다고 결의를 다진 아이가 알면 좀 실망할 것 같아서 믿고 가만히 있기로 했다. 베란다에서 학교 앞길이 보이는 터라 창에 매미처럼 붙어서 아이가 걸어오기를 기다렸다. 성능 좋은 망원경이라도 하나 살까 짧은 고민도 하면서.

 

새 소리가 들리고 나무가 부드럽게 흔들리며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다정하고 평화로운 동네. 그 길을 걸으며 행복해하던 어제의 나는 어디로 갔나. 갑자기 긴장감을 유발하는 빠른 템포의 게임 사운드가 귓가에 들리며 그저 지나갈 뿐인 사람들과 살짝 파여 발 걸리기 쉬운 보도블록까지 모든 게 함정같이 느껴졌다. 나의 작은 새가 이 모든 위험을 피하고 무사히 둥지로 돌아올 수 있을까.

 

아이는 늘 혼자 다녀왔다는 듯 자연스럽고 씩씩하게 걸어왔다. 친구들에게 "내일 보자." 인사도 하면서. 나는 아이의 동선에 따라 거실 베란다에서 주방 베란다로 자리를 옮기며 아파트 동 입구로 들어서는 모습까지 열심히 보았다.

 

삑삑삑삑-. 도어락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자 머릿속에 형광 연두색 글씨가 떴다.

"미션 컴플리트!"

내 미션도 아닌데 마치 라이언 일병을 구하고 돌아온 것 같은 성취감과 피로에 휩싸인 나는 직감했다.

'아, 나는 영원히 아이 뒤통수에 차 조심을 외치는 사람이 되겠구나.'

아이가 대견하고 애틋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걱정을 매일 붙들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막연하게 느껴졌다.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 아이를, 자기 세계를 만들어 나서는 아이를, 더 넓은 세상으로 나서는 아이를 나는 매일같이, 죽을 때까지 애타는 마음으로 염려하며 살게 되리라.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는 그런 삶을 살게 된다. 지킬 것이 있는 삶은 영원히 약점 잡힌 삶이다. 넘어질까 부딪힐까 손을 꼭 붙잡고 함께 걷던 육아 1막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넘어질까 부딪힐까’는 육아라는 뮤지컬의 메인 넘버였던 것이다. 이 메인 넘버는 아이의 연령과 상황에 따라 변주될 뿐 같은 멜로디로 끝없이 등장한다.

 

지금의 나는 아이를 만나기 전의, 자유롭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도저히 살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문밖을 나서는 아이를 조금 더 합리적으로, 조금 더 쿨하게 지켜보고 싶지만 도저히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그런 척을 할 수야 있겠지만.

이런 염려 처음부터 몰랐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도 가끔은 한다. 하지만 염려하는 마음 곁에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이 나를 살게 하고 정신 차리게 한다. 내가 그냥 나라면 놓아 버릴만한 일도 누군가의 보호자이기에, 믿을 구석이자 비빌 언덕이 되어야 하기에 놓지 못하게 된다. 책임과 부담감, 막연함은 동시에 내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염려를 나의 숙명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제서야 장성한 자식의 뒤통수에 대고 ‘차 조심’을 외치는 노모의 마음이 어떤 건지 어렴풋이 알아간다.

 

오늘은 날씨가 변덕스럽다. 아침엔 비가 내려 선선하더니 오후엔 해가 나면서 꽤 덥다. 그래서 아침엔 멋 부린다고 반바지를 입고 나간 아이가 춥지는 않을까, 오후엔 위에 입은 셔츠가 도톰해 덥지는 않을까 습관성 걱정을 늘어놓다가 이런 내 모습이 우스워 피식한다. 딸도 하나뿐인데 우산 장수와 부채 장수의 엄마가 되고 난리를 피우는 내 모습.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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