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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May 22. 2024

꽃으로 만개하지 않을래.

분홍빛 파도가 에메랄드 빛으로 바뀌는 계절로 다시 돌아왔다. 마치 석양처럼 번져갔던 분홍빛들은 햇살의 따뜻함에 조개가 품고 있던 진주를 꺼내는 것처럼 바뀌어 버렸다. 이젠 햇볕에 서 있으면 은근하게 구워지는 생선이 된 것 같아서 오래도록 볕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아, 이제 이런 계절이 되어 버렸다.


기억할만하면 얽혀버린 실타래처럼, 끊어진 파편을 줏어들고 가는 것 같은 꿈을 무수하게 꾼다.

그중에 조금 피식 웃을만한 꿈을 꿨는데 인간이 음식의 재료가 되어서 하나의 음식이 되는 꿈을 꿨다. 그래서 누구는 마늘, 누구는 김치, 누구는 고기. 이런 식으로. 그러고는 싸우더라.

‘내가 더 중요한 재료야!’ 라면서. 나는 무엇이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웃기면서도 교훈적이라 조금 더 꿈을 곱씹어 보았다.


그런데 꼭 마늘이 될 필요가 있을까, 대파가 되면 안 되는 거야? 라는 의문이 생겼다. 대파가 안되면 쪽파라도 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게 안되면 다시다라도, 미원이라도. 아니면 고춧가루라도 좋아. 생각해 보니 모두 감칠맛 내는 재료잖아. 여전히 좋은 재료가 되고 싶구나 싶다. 몰려오는 잠을 잠시 몰아내기 위해 바닥에 앉아서 꿈뻑 졸며 생각했다.


이 꿈의 결말은 알지 못했지만 내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은 명확했다.

’좋은 재료도, 꽃이 될 필요 없어‘ 였다. 화려하게 만개한 꽃이 되고 싶어서 안달이었는데 무엇이 될 필요도, 피워내지 못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니 잠시 마음이 울렁거렸다. 아니, 어쩌면 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한결 나아졌다.


너와 나의 거리에도, 관계에도 인식이 달라졌다. 네가 좋다고 하는 말에 웃을 수 있게 된 건 부정할 이유가 없어서였고, 관계를 당기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고군분투하는 너를 보고 있으면 한발 더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묘하게 어긋났던 거리를 예쁜 직선으로 그어질 수 있도록 하였다. 어쩌면 눈을 맞추고 싶었던 것은 내가 아니라 상대였을지도 모른다. 눈을 똑바로 바라봐 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고.


어딘가 예전보다 밝아진 것 같아.

웃음이 많아졌어.


무심하게, 적당히 넘긴 말이었지만 마음이 울렁거리는 말이었다. 새 해가 시작되고 줄 곧 듣는 이야기였다. 약간 들뜨게 되는 기분을 꾹 눌러 놓고 웃었다. 아마도 그렇게 된 까닭은 우리 집의 귀여운 꼬마가 있기 때문일 거야. 실제로 영향을 받고 있는 건 사실이니까.


올해는 유독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그 시간 속에서 가끔씩 조바심을 내게 된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이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싶을 때도 있고 붙잡아 두고 싶을 때가 있다. 영원처럼, 잠시나마 길게 음미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넘어지고, 성장하고,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거겠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겠지. 내가 정의 내린 것들에 대하여 정답이라는 노트에 적어두고, 오답에 저항하듯 살고. 한 잔의 씁쓸함을 안고 살다 보면 또 십 년이 흘러 있겠지 싶다.


십 년 후엔 조금 더 웃는 얼굴로 세상을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조금은 덜 넘어지고, 덜 울고, 단단한 40대의 영혼을 마주하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 여전히 그때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무엇이라도 되기 위해 한 줌 노력해보러 가야겠다.

스스로에게 창피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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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최 민 과장님께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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