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이거 완전 알바천국이잖아!!!

다섯 살 아들의 순수함이 너무 부러운 요즘

"이거 완전 알바천국이잖아!!!"


아들의 입에서 나온 이 한 문장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 또다시 내 귀를 의심했다. (요즘 들어 내 귀를 의심할 만큼 아들이 내뱉는 놀라운 문장들 때문에 너무나 즐거운 나날이기도 하다.) 순간 '어? 이 녀석 봐라? 어디서 이런 걸 들은 거지? 녀석에게 광고를 보여준 적이 있던가?'라는 수많은 생각을 하면서 나의 짱구를 굴려봤다. 아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아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는 집 안에 TV가 틀어져 있던 적이 없었고, 유튜브를 싫어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사이사이에 나오는 광고 때문이었다. 아들과 약속한 대로 하루에 정해진 시간만큼 영상 노출을 시켜주는 요즘도 유튜브가 아닌 넷플릭스나 올레 TV 같은 플랫폼에 의지하는데, 무작위로 송출되는 위해광고가 아이에게 노출될지 모른다는 위험을 철저히 차단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알바천국"이라니, 세상에! 이런 말은 어디서 들은 거야, 도대체!


"OO아~ 그게 무슨 말이야? 알바천국이라니? 도대체 그런 말은 어디서 들은 거야?"라고 반색하며 묻는 나에게 다섯 살 아들은 엄마의 질문이 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엄마, 엄마야말로 무슨 말이야? 여기 봐봐, 여기! 완전히 알바 천국이잖아!!!"라며 손가락으로 뭔가를 가리킨다. 녀석의 손가락을 가만히 따라간 나는 그제야 '아뿔싸' 싶었다. 그곳에는 아들과 함께 읽고 있던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펼쳐져 있었고, 그 책의 주인공인 물고기 '알바'의 그림이 페이지 가득 그려져 있었다. 아들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장면을 봤고  순간 주인공 '알바 물고기' 가득한 장면을 보고는 '알바 천국'이라고 표현하며 스스로 감탄사를 내뱉은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누구나 '알바 천국'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올릴 법한 CF를 떠올렸고 이미 세상에 가득 물들어버린 아주머니 한 명은 그 단어가 아들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에 꽤나 불쾌해했다. 나는 녀석에게 빠르게 사과했다. "어머, 그렇네! OO이가 이 그림을 이렇게 멋진 문장으로 표현했는데 엄마가 못 알아들어서 너무 미안해!"


아들 녀석은 바다생물에 푹 빠져있다. 누가 보면 고향이 바다라도 되거나 아니면 매주 엄마 아빠와 바다에 놀러 가나 하고 착각할 만큼 바다라는 존재를 엄청 사랑한다. 가장 좋아하는 바다그림책은 정말 하루에도 수십 번씩 봐서 책이 너덜너덜 해졌고 한글을 조금씩 읽기 시작하는 요즘, 아들의 최고 선생님은 바다생물 그림책이다. 물고기 이름을 통해 한글 글자에 친숙해진 녀석이라서 정말 바닷속의 해양생물을 만나면 일일이 엎드려 절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한 달에 최소 2번은 노량진 시장에 물고기 탐사를 나갔던 녀석은 코로나 19가 모든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으면서 요즘은 동네 재래시장을 탐험하는 것으로 대체하며 그나마 위안을 삼고 있다. 어디에선가 '바다' 또는 '물고기'라는 단어만 들려도 다다다다 달려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을 만큼 물고기 사랑이 엄청난 녀석이다.

- <알바는 100살>이라는 환경보호에 관한 그림책 -




오늘도 아침부터 물고기 놀이(일명 낚시놀이인데 사실 녀석은 한 번도 낚시를 가 본 적은 없다. 코로나 19 문제가 해결되면 가장 먼저 낚시 또는 갯벌체험을 가야 할 만큼 물고기와 '물'아일체 되어 있는 우리 아들.) 하면서 낙지를 사러 가자고 노래 노래를 불렀다. 산 낙지를 사러 가야 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 하나는 관찰이다. 물론 낙지를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서 기름장에 비벼주면 밥 한 그릇을 뚝딱할 만큼 낙지를 잘 먹기도 하지만, 아들 녀석이 낙지를 그토록 원하는 것은 낙지의 빨판과 힘을 겨루어 보고 싶기 때문이다. 반나절 정도 낙지 노래를 들으니 이건 당장 시장에 달려가야 할 각이다. 하루에 코로나 확진자가 거의 천명에 육박할 만큼 심각해진 상황이라서 이번 주말도 집콕할 예정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외출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 거다. 결국 두 손 두 발 든 엄마에게 물고기도 사자면서 그의 흥은 이미 절정으로 다 달았다.


길을 걷는 녀석의 발걸음이 너무나 천진해서 뒤에서 바라보는 내 얼굴에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그래, 네가 이토록 좋아한다면 낙지 까짓것 여러 마리 사지 뭐~'라고 생각하며 함께 동네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그러다가 천을 따라 흐르는 개울물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녀석의 뒤통수를 바라보니 불현듯 며칠 전의 일이 떠올랐다. 아들과 하원을 하고 집으로 운전을 해서 오는 길이었다. 갑자기 아들이 뒷좌석에서 외친다.


"엄마~
저 아파트에 왜 물고기 그림이 그려져 있어?
저 아파트에 물고기가 사나?"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운전 중이라서 주위를 열심히 돌아보기도 힘든 상황이라 살짝 고개를 돌려봤는데 내 눈에는 물고기의 'ㅁ'자도 보이지가 않는다. "엄마, 찾았어? 보여?"라고 재촉하며 묻는 아들의 말에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 도대체 물고기 그림은 어디있는 거야?' 하며 좌우 고개를 둘러보다가 파란색 불빛을 발견하고는 너무 웃겨서 박장대소 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커다란 웃음에 아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엄마, 왜 그래?"


아들이 발견한 물고기는 바로 GS건설의 대표적인 아파트 브랜드 마크였다. 그 마크가 아들의 눈에는 물고기 그림으로 보였다는 걸 인지하고는 너무 웃겨서 웃기 시작하면서 한편으로는 아들의 순수함이 부러웠다. 아파트 마크가 진작부터 내 눈에도 보였지만 설마 아들이 그걸 물고기로 생각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내게 그 마크는 아파트 브랜드 표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까만 저녁 가운데 푸른빛을 내며 아들의 시선을 사로잡던 그 마크가, 물고기로 인지되면서 순간 우리 아들에게 얼마나 큰 설렘을 주었을까. 동일한 것을 보아도 아들과 내가 서로 다른 것을 생각한다는 사실, 그러나 우리 아들의 눈과 마음에는 세상의 때가 아닌 순수함만 가득한 것 같아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작년의 어느 여름날, 허리디스크 수술로 병가 마지막 달에 아들과 운동 겸 동네 산책을 하고 있었다. 유모차를 답답해해서 나 혼자 유모차를 끌면서 녀석의 뒤를 졸졸 좇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아들이 저 앞에서 내게 달려왔다.

"엄마, 엄마~ 저기 국수가게가 있어!
나 국수 먹고 싶어, 저거 먹으러 가자 가자!"

라고 말하는 아들의 재촉에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리 봐도 내 눈에는 국수가게가 보이지 않는데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건지, 내 눈에는 지금 당장이라도 남편을 불러 함께 들어가고픈 곱창집만 보일 뿐이었다.


"OO아~왜 엄마 눈에는 국수가게가 안 보일까? 어디 있는데? 설명해 줄 수 있어?"라고 묻는 내 질문에 아들은 크게 한숨을 쉬며 "엄마, 나 따라와!"를 외치더니 앞으로 다시 다다다다다 달려 나갔다. 그러더니 어떤 간판 앞에 서서는 짧둥맞은 검지 손가락을 최대한 하늘로 추켜올리더니 나를 부른다. "엄마, 여기 있잖아! 이거 안 보여? 이거 국수잖아! 빨간색이니깐 뜨거운 국수 파나 봐!" 그 순간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내 눈에 보이는 간판의 글씨를 찬찬히 읽어나갔다. 웰. 빙. 24. 시. 사. 우. 나. 나는 배꼽이 빠져라 웃었다. 아, 녀석의 이 천진난만과 순수함을 돈을 주고 살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사고 싶을 만큼 녀석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우리 아들의 눈에 국수가락으로 보인 표시는 사우나 표시였다. 커다란 그릇 안에 국수가 세 개가 있다고 표현을 한 아들의 표현력에 감탄하며 나는 어깨를 들썩이면서 아들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찰칵. 나는 억지웃음이 필요할 때면 그때마다 그날의 장면을 떠올리고는 한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아들의 순수함은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한 살 더 먹은 엉아가 되었다고 해서 전혀 퇴색되지 않고 나날이 더 찬란히 빛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말이다. 그리고는 또 생각한다. 나도 그런 순수함이 조금은 남아있을까...




내가 우리 아들 나이보다 한 두어 살 더 먹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나는 집 안에 켜진 라디오를 가만히 들으면서 라디오 스피커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이 안에 사람이 갇혀 있나 봐. 내가 구해줘야겠어.' 바쁘게 집안을 돌아다니는 부모님의 눈치를 보면서 나는 슬며시 공구함으로 간다. 그 안에서 드라이버 하나를 챙겨 들고는 라디오를 분해하기 시작한다. 고사리 손으로 힘들게 나사를 하나하나 풀면서 설레었던 그 감정이 가끔씩 떠오른다. 결국 그 안에 사람이 들어있지 않음을 깨달았을 때의 그 실망감과 허탈함은 곧 희망이 되어 다음번을 기약한다. 내가 아직 너무 꼬마라서 이 놀라운 라디오라는 기계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 굳게 믿었다. 조금 더 커서 다시 라디오를 분해해 갇힌 사람들을 구해주겠다는 야망 가득한 마음을 안고 조용히 라디오를 원래대로 만들어 놨던 나였다.


그랬던 꼬마 아이는 지금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요즘 그 아이를 통해 순수함을 회상하며 순수 회복에 대한 열망을 갖는 중이다. 나이가 조금 더 들어가더라도 순수한 마음은 퇴색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이 드는 요즘이다. 예전에는 '나잇값 못한다.'라는 말이 한 사람을 비하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들어서는 '그 사람은 순수하다.' 말처럼 들린다. 언제나 어른인 척해야만 하는 그런 무게감 가득한 삶 말고, 가끔은 나 자체를 내려놓고 내 마음 가득한 세상의 때를 손빨래하듯이 박박 씻어낸 뒤 아이 같은 순수한 눈과 마음을 새로 장착하고 싶다. 그래서 가끔은 깃털처럼 가벼운 그런 삶이면 좋겠다. 오늘보다 내일 더 순수하기를 간절히 바라보는 토요일 밤이다. 내일의 내 마음씨앗에는 순수함이라는 싹 하나가 틔워져 있으면 좋겠다. 정말.

- ‘국수가게’라며 나를 이끈 네 살 아들 녀석의 뒷모습 -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는 참 좋은 여자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