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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정 Nov 29. 2021

퇴사, 그 이후

마음에 허전한 바람이 부는 날



나는 올해 6월에 퇴사를 했다.

2008년부터 다닌 회사로 꽉 채운 13년 만이다.


13년이란 세월엔, 나의 30대가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30대 초 인생의 황금기에 입사하여 정말 열심히 일했다. 나는 사원으로 입사하여 장까지 올랐고, 공통부서에 있었기 때문에 회사의 전체 부서와 연관되어 있었다. 일의 범위도 넓었고 일도 많았다... 셋째를 임신하고는 마땅히 쉴만한 곳이 없어 화장실에서 졸기도 하면서 아이를 낳기 하루 전까지도 일했던, 돌아보면 정말 나의 30대를 갈아 넣었구나 싶은 회사생활이었다.


그 사이 꽤 여러 번의 슬럼프를 겪었다. 직장 생활을 해보신 분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발전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개국공신, 이른바 젊은 시절 공을 세우고는 어느 순간부터 고여 썩고 있는 상사를 마주할 때나, 일을 하는 사람에게만 일이 몰리는 이상한 경험을 할때나, 회의 시간이면 어느 부서의 누구에게 어떤 말이 나올지까지도 너무 뻔하게 그려지는, 질리고 질리던 순간이 꽤 여러 번이었지만 잘 참고 넘겼다.


작년 초 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였고 그로부터 1년 후 부서 이동을 하며 프로젝트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그렇게 2021년을 맞았고, 성과가 드러나기 시작하던 무렵인 6월 퇴사하게 되었는데, 퇴사의 결정적 이유는 회사 임원들의 사과 강요였다.


전 부서 상사와 업무 관련으로 언쟁을 했던 게 이유였는데, 개국공신이었던 그 상사는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잘못한 게 없고 사과할 마음이 없다, 업무엔 문제가 없게 처리하겠다는 나의 대답은 매번 똑같았고, 하루에 몇 시간씩 불려 사과를 종용받던 나는 결국 사표를 던지고 말았다.


내가 퇴사할 때, 사람들은 내게 사과하라고... 사과 그거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동안 고생한 게 아깝지 않느냐고...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난 끝내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회사 생활에 신물이 올라오면서 내가 쌓았던 것들을 다 포기하는 선택을 했다.


13년간의 시간, 성과, 그로 인한 회사의 인정. 그러나 개국공신에게 비할 존재감은 아니었을 테다.

회사의 시스템은 효율적인 것 같지만, 보편성에 기울어져 있기에 사사로운 개인의 사정은 재고 거리가 아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일 잘하고 자기 의견이 있는 직원보다는, 능력치가 보통에만 해당한다면 두루두루 무던하고 문제를 일으킬 여지가 없는 직원이 더 나은 것이었다.


퇴사하게 되면서 내가 처음부터 진행하던 나의 프로젝트는 후임자에게 넘어갔고, 나는 그 일의 성과를 보지 못하고 나왔다. 고생했지만 애정이 많았던 프로젝트였기에 아직까지도 아쉽고 마음이 아프다.


얼마 전, 전 회사 동료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가 초석을 깔아 두었던 그 일이 잘 되어, 매출이 꽤 잘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회사를 나온 게 아쉽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으나 그때만큼은 마음에 찬바람이 불었다. 잘 될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마음이 허전했다. 꼭 자식을 두고 나온 기분이었다.


지금도 생각한다. 내가 그때 나의 마음을 다스려 잘못했다 죄송했다. 사과했다면 지금쯤 나는 좋았을까? 지금의 나보다 나았을까?


요즘 입사 지원을 시작하고 있는데, 내 맘대로 잘 안된다. 아마도 40 중반의 나이가 큰 걸림돌이지 않을까.

한참 일할 나이는 아니지만, 그때보다 더 나은 유연함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론 과거의 나처럼 한참 일할 예쁜 나이, 즉 인생의 황금기인 30대를 갈아 넣을 사람을 찾고 있겠지 라는 생각이 든다. 남 눈치 안 보고 내 의지대로 씩씩하게 일했고 씩씩하게 나왔으니 씩씩하게 잘 살면 되는데, 가끔은 이렇게 기운이 빠지고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지는 날이 있다.


글을 쓰면서 다짐하고 내게 체면을 건다.

앞으로는 내가 공들인 것들에 대해 그렇게 쉽게 내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일이 되었건 사람이 되었건 시간과 노력이 되었건 말이다. 아쉽고 마음이 슬픈 경험은 한 번으로 족하니까.

그리고 나는 새로운 인연을 위해 계속 두드릴 것이고 노력할 것이다. 이제껏 살아왔던 내 방식대로 말이다.

나에겐 더 나은 미래가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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