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의 마지막 달 크리스마스 즈음, 나는 프리랜서로의 커리어를 시작하기 위한 첫 제안서를 썼다.
프리미엄 신규 골프 CC의 클럽하우스와 레스토랑, 캐디유니폼의 제작/납품 건이었는데, 회사의 체계 안에서 주어진 일만 하던 내게는 생소하고 낯선 일이었음에도대책 없이 덤벼들어 며칠을 고심해서 제안서를 썼다. 나의 첫 제안서는 감사하게도 채택되어 프로젝트 PM으로 분주한 1월을 보냈고 2월에 접어든 지금, 첫 번째 프로젝트는 순항 중이며 나는 두 번째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작년은 나에게 여러모로 뜻깊은 해였지만, 행복하지만은 않은 해였다.오랜 시간을 몸담았던 회사를 뜻하지 않게 퇴사하고 많은 고민을 했던 해. 40대 중반 어정쩡한 나이의 퇴사는 새로운 직장을 들어가기도, 일을 놓기로 결정하기에도 여러모로 답답한 상황이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불투명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시간을 잘 보내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조금씩 꾸준히 하면서 기회를 기다리는 것.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고 지금은 때가 아닌 것뿐이다'라며 나를 다독이는 것. 그것뿐이었다.
생전 처음으로.. 한걸음 떨어져 나를 바라보게 되었던 시기였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잘하는 것, 못하는 것, 객관적인 나의 모습부터 내면의 모습까지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고심했고 이제 새롭게 맞이할 인생은 기존과 달라지길 바랐다. 쫓기듯 힘들게 숨이 턱까지 차오르게 그렇게 살지는 말자. 나를 소모하지 말자 그렇게 다짐했다.
좀처럼 잡히지 않는 기회와 그로 인한 불안함, 부족함을 인정하면서 나 자신을 바로 보았던 그 시간들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앞으로의 삶을 살아내기에 꼭 필요한 시간들이었다.
나는 지금, 조금은 자유롭고 조금만 불안하며 내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나의 의지대로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싫어하는 일은 나스스로와 타협하여 버틸 수 있는 정도만 한다. 충분히 집중하여 일을 하는데도 에너지가 남는 느낌인데 그로 인해 건강도 많이 좋아졌다. 회사라는 조직에 속해 있음으로 자연히 연결되는 수많은 과외의 노동과 감정 소비에서 빠져나온 탓일까.
물론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 일은 언제든 끊길 수 있고 나는 매번 새로운 일과 고객사를 찾아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회사에 속해 있음에 누릴 수 있었던 많은 베네핏도 없다. 온전히 스스로 노력하고 책임지며 홀로 서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이 좋다.
아이 셋을 키우며 능력치의 120프로를 해내야만 했던 치열했던 30대. 항상 숨이 턱까지 차듯 버거웠던 그 시간들을 잘 버텨내었기 때문에 자립할 힘을 가진 지금의 내가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내가 살아내는 그 어떤 시간이든 불행하기만 하거나 행복하기만 한 시간은 없는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삶이 내게 펼쳐질지 모르지만, 조심스럽게 더 나은 삶에 대한 확신을 하게 된다. 더불어 새로운 도전이란 젊은 나이에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새롭고 가슴 뛰는 일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기쁨은, 그에 상응하는 노력과 도전이 있어야 쟁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