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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씨 Jan 10. 2023

1. 학습지 회사에 발을 들이다

Q.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면 언제가 좋은가?

A. 대학 졸업 직후요.


나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대학 졸업 직후로 돌아가고 싶다. 코인이나 주식을 하고 싶어서는 아니다. 물론, 시기가 딱 좋아 비트코인이나 테슬라에 목돈을 박아둔다면 여유롭게 살 수는 있겠지만 목적은 그것이 아니다. 로또 번호를 외워서 돌아가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왜 과거에 얽매여 있는가.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해볼까한다.




계주는 출발을 잘해야한다. 첫 단추도 잘 꿰야한다. 모든 처음이 중요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직을 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고. K장녀답게 부모님께 항상 효도해야한다는 마음이었다. 구직사이트에 따끈따끈한 이력서를 올려두고 괜찮은 곳에 지원을 했다. 혹시 몰라 이력서를 모두 공개로 해두었다. 그런데 정수기, 학습지, 보험 등 전화가 많이 왔다. 소심한 성격탓에 영업직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 정중하게 거절했다. 지원한 곳에서의 전화는 오지않았다.

전전긍긍. 그 때부터 무작위 지원을 했고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오면 모두 받았다. 그 중 탁 얻어 걸렸다. 학습지 회사인데, 학습지 선생님이 아닌 사무직을 구한다는 것이다. 면접을 보러 편도 40분 거리의 사무실로 갔다. 


낡은 건물 2층에 자리 잡고 있던 사무실은 내 이력서 빈 칸보다 좁았다. 영화에서 보던 괴짜 변호사의 사무실같기도 했고, 망한 사업가의 사무실같기도 했다. 본인을 지역국장이라 소개한 분이 자리를 내어주었고 나는 앉아 고개를 휙휙 돌려 사무실을 스캔했다. 여기저기 꽂혀있는 학습지들이 눈에 띄었고 어쩐지 사람의 온기는 없었다. 

내가 해야할 일을 설명해주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한마디로 정리되었다. 선생님보조 또는 뒷바라지. 월급도 당시 최저임금을 생각해도 그 보다 적었다. 그럼에도 나를 필요로 한 곳이라 생각되어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인수인계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내 전임자는 누구보다 가뿐한 표정으로 마지막 퇴근을 했다.


일은 정말 쉬웠다. 주마다 나오는 교육자료를 뽑아두거나 필요한 학습지를 주문하거나 정리하거나, 사무실을 쓸거나하는 정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들뿐이었다. 게다가 선생님들은 월, 수, 금만 출근을 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눈이 돌아갔다. 월말에는 선생님들의 급여명세서를 뽑아 나눠주는 일이 있었는데 그날따라 선생님들의 월급이 보였다. 영업하는 일이라 힘들다고는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나보다 2배, 3배 많은 월급을 보자 '해볼까'하는 마음이 자리잡았다. 그것이 오만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사무일로 1년을 채워 퇴사를 하고 방문교사로 다시 출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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