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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리데이파머스 Feb 03. 2020

농부의 겨울 소일거리

짙은 미세먼지가 북쪽에서 내려온 찬 바람에 걷혔다. 참 쾌적한 날이다. 겨울에 쾌적함은 곧 추위를 말한다. 한국에서 찬바람이 먼저 도착하는 강화도는 바닷가에 있는 섬임에도 춥다. 문수산성을 지나고 강화대교를 지나 야자나무 농장으로 향한다. “산 밑에서 문수산성 내부가 훤히 보이는데 옛날에 저 성이 어떤 군사전략적 가치가 있었을까?” 성 내에 군사들의 이동과 분포 위치가 한눈에 보였을 텐데.. 몽골군이 건너지 못해 강화도 진입을 포기하도록 한 폭이 좁은 바다 수로에 얼음이 보인다. 묵직하게 깔린 뻘이 조금 언 듯하다. 오늘은 농장에서 저 멀리 북한 땅에 있는 민둥산이 잘  보였다. 이렇게 북한하고 가깝단 말이야.


 농장은 은행나무와 헛개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레인이 땅을 구매하기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었다. 덕분에 작년 링링 태풍 때 바람을 막아줘서 농장을 보호해주었다. 야자수 농장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이 나무들 덕분에 여름이면 푸르름을 선사하고 가을엔 단풍으로 농장을 가꾸어 준다. 플러스. 농장을 둘러싸고 있어서 포근하고 아담한 느낌을 준다. “햇빛을 방해하지 않을 만큼 은행나무를 더 사서 심어야겠어” 레인은 생각하고 실행까지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 간신히 막아섰다. 농장을 정원처럼 예쁘게 꾸미려고 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우선 본업에 집중하라고 그렇게 타일렀지만 말이다. 본인 마음이 편안해야 농장일에 더 집중할 수 있고 스트레스도 적다나?! 레인이 쏘듯이 말했다. “한 여름의 뙤약볕을 알아?”


 봄이 오기 전에 땅 밑에 간간히 남아있는 돌을 골라내기 시작한다. 작년 잡초의 무서움을 몸소 경험을 했기 때문에 손이 더 바빠진다. 모종삽조차 들어가지 않는 곳에 잡초가 자라면 뿌리째 뽑히지를 않아서 그곳은 결국 잡초 밭이 되어버린다. 농부도 포기해버리는 땅이 되어버린다. 농장일의 70% 정도는 잡초 제거라고 생각한다. 땅 밑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을 무수한 잡초 씨앗들. 올해는 좀 봐줘라. 안 그러면 구워 먹으리?

 두 시간이 흘러서 제법 땅 속의 큰 돌들을 제거했다. 우왕. “돌담을 쌓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돌을 캤어.” 농장에 차를 주차할 수 있는 정문 위치에 돌담을 쌓기로 했다. 사각 철망 안에 돌을 차곡차곡 채워 넣는다. 철망 길이가 총 3m로 거기다가 나중에 미니멀 간판을 달아도 되겠다. 철망 안으로 돌이 쌓여가는 속도가 느려진다. 허리 곳곳이 뻐근해져 온다. 평일 회사일과는 다르게 단순 반복적인 일을 하면 좋은 점이 있다는 걸 알았다. 머리가 휑 비워진다는 것. 리프레쉬가 되는 것 같다. 잡생각이 사라지고 새로운 한 주를 맞이한다. 울퉁불퉁한 땅이 평평해지고 부드러워지면 괜한 일임에도 뭔가 성취했다는 마음에 뿌듯해진다. “음.. 새로운 주를 맞이 할 수 있겠어” 신음소리와 함께 뻐근한 허리를 기지개 켰다. “역시 농장 정문 땅이 평평해지니까 눈도 편안하네. 이런 과정을 거쳐야 농부의 자격이 있는 거야” 돌이 제거된 땅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닦으면서 곧 세상에 태어날 쿵쾅이를 생각했다. 그리고 1 년 전과 후의 달라진 생활 패턴을 돌아봤다. 멀리 보면서 조급하지 말고 차근차근 살아가자. 고된 육체노동을 하고 난 뒤 땀이 식으면서 차분해진 마음은 모든 것을 포용하게 한다. 세상은 그대로이지만 달라진 내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한다. 저물어가는 노을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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