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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리데이파머스 Aug 28. 2020

야자나무 돌보미

날씨와 농부 편 2

바비 태풍이 무사히 지나갔다.


태풍 경로 한가운데 있던 강화도여서 월요일부터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실전 농부가 되기 위한 첫 관문인가? 비닐하우스가 태풍 바람에 잘 버텨줄까? 그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태풍 앞에 무기력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했다. 비닐이 바람에 펄럭이지 않게 하우스 양쪽을 랩으로 꽁꽁 감쌌다. 조그마한 틈으로 세찬 바람이 들어오면 하우스가 돚역활을 해서 바람에 날아가버릴 수 있다. 얼른 스크래치용 랩 비닐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와이프는 이런 걱정을 알 수가 없다. 태풍이 오는 줄도 모르고 있다. 바람 걱정으로 인해 표정이 심각해 보였는지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범선 돚이라고 생각하면 돼. 큰 나무배가 바다 바람으로 앞으로 나아갈 정도의 힘을 비닐하우스가 감당한다고 생각해봐”

 자연현상을 농부가 컨트롤할 수 없다. 요즘 같은 태풍, 비바람을 그저 지켜봐야 할 뿐. 이렇게 버라이어티 한 환경에서 자라야 식물들도 건강하지 하하하 애써 긍정적인 생각으로 퉁쳐 내야 한다. 바람에 비닐하우스 비닐이 찢겨줘도 "뭐 태풍이 원래 그런 거지. 바람이 세지"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농부 1이 말해줬다.  작년 링링 태풍에 농부 1의 인삼밭 나무 고정틀이 전부 날아가버렸는데도 그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대단한 내공이 느껴지는 농부다.


  복잡한 자연 속에서 특정 공간의 환경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일어난다. 그 방법은 시설하우스이다. 비싼 유리 온실도 있고 일반 비닐하우스 같지만 곳곳에 자동화 유닛이 설치된 자동화 시설하우스도 있다. 실내 온도를 체크해서 환풍기를 돌리고 햇빛 세기를 측정해서 차광막을 조절한다. 땅속 흙 사이의 수분양에 따라 물을 준다. 이 모든 것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제어한다. 계측 제어 기술이 어쩌면 전부이다. 위에 나열한 기능적인 측면은 사실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이미 오래된 기술이 이제야 농업에 적용된 것뿐이다. 요즘 트렌드는 여기서 머무르지 않는다. 하나의 중요한 기능을 요구한다.


  "농장이 내 마음 같았으면 좋겠어요!"


계측을 통해 얻은 수치 데이터를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고 이 데이터를 재가공하는 것이다. 즉 개개인의 농부 스타일에 맞춰 시설을 컴퓨터가 스스로 관리하는 것이다. 농부는 사람이고 각 사람마다의 미세하면서 고유한 행동 스타일이 컴퓨터 데이터베이스에 고스란히 기록한다. 그래서 비슷한 위치에 있는 A 농장의 데이터와 B 농장의 데이터 패턴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 이럴 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 하지만 당연히 비용이 많이 들겠지. 이것의 반의 반이라도 따라가기 위해서는 프로그램 개발 능력이 필수이다. 프로그래머인 내가 직접 해보겠다는 의지는 있지만 농장의 벗인 잡초가 자꾸 귀찮게 하는구먼. 한 명으로 넓은 농장을 운영하는 그날을 꿈꾼다. 나는 사용자 경험 측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FUN.  ‘재미’ 말이다. 선형이 아닌 원형. 나를 시작으로 돌고 돌아서 다시 나에게 응답이 돌아왔을 때 희열이란. '아직 덜 고생했군. 크크크.. 재미가 밥 먹여주냐?' '네. 밥먹여줍니돠~' 식물을 기르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것이 나의 본질적인 욕구라는 것을 깨달았다. 소통한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농업은 날씨와 정말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직접 경험한 바로는 죽느냐 사느냐 정도의 문제다. 한 해 농사의 성공 여부는 날씨라고 생각한다. 정성을 들여서 기른 작물이 한순간 시들어가기도 한다. 그 아픈 마음이란.. 감히 뭐라고 말할 수도 없다. 식물도 생명이어서 농부는 자식을 돌보듯이 정성을 들인다. 농장에 왔으니 우선 한 바퀴 둘러보고 시작하는 게 순서이다. "내 자식들이 잘 있나? 바람에 넘어지지 않았나?" 잡초가 무성히 자란 곳을 지나 야자나무 땅으로 이동했다. 옆집 농부는 잡초를 재배하나 보다. 크크크.. 어디 보자. 내 자식 같은 야자나무가 잘 자랐나? 두리번두리번거렸다. 빗물을 듬뿍 마신 야자나무가 잘 자랐다. 워싱턴야자도 매주가 다르게 자랐다. 줄기에서 한 잎이 완전히 빠져나오기 전에 다음 새 잎이 줄기 틈새로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이렇게만 겨울이 올 때까지 최대한 자라줘"


태풍 눈이 강화도 내 농장 머리 위로 지나가려나 싶었다. 그 속에는 바람이 거의 안 분다지?!. 눈을 보게 된다면 인사라도 하려고 했더니 그새 태풍 경로가 변경되었단다. 뜬금없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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