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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리데이파머스 Oct 30. 2020

육아와 야자수 농장 병행

별이 잘 보이는 야자수 농장

쿵쾅이가 태어난 지 이제 7개월이 막 지났다.  아기를 돌보는 데 있어서 참 조심스러운 시기이다.  언제부터인가 뒤집기를 시작하더니 금세 기어 다니고 이젠 주변 물체를 손으로 잡고 일어서려고 한다. 두 팔로 스스로 몸을 지탱하는 것 아직은 불안 불안하고 눈에 보이는 물체들을 손으로 집어서 바로 입으로 가져간다. 아기 옆을 떠날 수가 없다. 개인 시간은 없다. 아기를 위한 시간이 존재하고 아기가 잠을 잘 때 비로소 나의 시간이 주어진다. 진짜 결혼 생활은 아기가 태어난 뒤부터라고 하는데 그 말에 끄덕끄덕 공감한다. 시간 쪼개기를 해서 틈틈이 산책도 해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고 회사 일도 해야 한다. 주말에 출근을 하는 아내를 대신해서 처음 주말에 독박 육아를 하고 난 다음 바로 몸살을 앓았다. 잠시 아기가 잠을 들 때 생기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다. 아기가 태어나기 이전은 정해진 시스템 속에서 딱딱 시간에 맞춰서 행동하면 되는 사회에 살았다면 이후는 정말 야생이라는 표현을 하고 싶다. 육아로 인해 복잡하게 마구 엉켜버린 정신상태, 피곤한 몸,  예측 불가한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고 시간을 쪼개서 살아가야 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알 수 없는 30분 뒤의 상황, 나에게 30분이 있다면 그 시간에 설거지를 해야 하고 농장 상황을 살펴야 하고 유튜브도 시청 또는 취미생활을 해야 한다. 유연한 마음 씀씀이도 필요하다. 중간에 아기가 일찍 깨버린다면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하던 일을 잠시 내려놓고 잊어야 한다.


 그. 려. 러. 니.

 

시간이 남았으니까 그때그때 뭘 하지?라고 생각해서는 나의 하루 시간이 무의미하게 흘러가버린다. 육아 초반에 그렇게 흘려버린 시간들이 많았다. 육아에서 오는 피로 때문에 힘들거나 우울해지는 것이 아니라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에 나 또한 흘러간다는 느낌에서 오는 무기력이 나 자신을 스스로 무너지게 하는 것 같다.


 요즘 최대 과제는 야자수 농장 운영과 육아의 병행이다. 주말 시간을 쪼개서 하는 것이 원래의 계획이었지만 육아라는 큰 과제 앞에 약간 밀리는 형국이다. 낮시간을 충분히 활용했던 작년과는 다르게 아침 2-3시간을 활용해서 정말 근근이 운영하고 있지만 다가오는 겨울을 생각하면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다. 그래서 이젠 아내가 직장에서 돌아오는 퇴근 시간 이후에 아기를 아내에게 부탁하고 농장에 나가 일 하기 시작했다.


 야자수 농장의 밤은 어둡다. 시골이니까 도시에 비하면 불빛도 적은 것이 당연하지. 어둡기만 하면 다행이다. 야간의 바람이 불면 마른 풀잎들이 서로 스스스슥 비비는 소리를 내는데 그 순간 정말 분위기가 스산해진다. 농장은 눈 감고도 다닐 만큼 손과 발에 익숙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나 말고 이곳의 알 수 없는 다른 주인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밤 시간을 활용해서라도 해야 한다. 농장에 나오기 전에 왼팔을 베고 잠을 자고 있는 아기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고 나왔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새근새근 자고 있는 얼굴을 생각하면 으스스한 생각 따위로 나의 발걸음이 방해받지 않는다. 몇 주 전까지는 쫓기듯 조급한 마음으로 아침 시간에 야자나무한테 물을 쪼르르르 줘야 했었는데 어둡기는 하지만 여유 있게 줄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안하다. 아기와 마찬가지로 야자수 나무도 사랑을 먹고 자란다.

 

 얇은 비닐을 사이로 어둠이 내린 밖과 환한 실내로 나뉜다. 이 얇은 비닐 벽이 뭐라고.. 벽 넘어는 한 없이 어둠이 가득하고 실내는 환하다. 흰 조명이 켜진 비닐하우스 실내에서 일하는 것은 포근하다. 하지만 어두운 밖은 발걸음을 되돌리거나 주저하게 만든다. 밤에 일하러 나올 때면 가능한 밖에 나가지 않는다. 정말 농사 작업에 중요한 공구를 찾으러 창고를 가지 않는 이상. 멀리까지 밝게 비추는 스포트라이트 손전등 불빛에 주변 나무들과 돌담은 하나 같이 괴상하게 보인다.


“저기 나무 뒤에 뭔가 있는 것 같아. 돌은 왜 이렇게 커 보여” 두려움이 커보이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깊은 어둠 속에서 나 여기 있어요 라고 OOO에게 나의 위치를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아직 밤에 이곳을 더 자주 와야 할 것 같다. 헉헉 차가워진 새벽 공기에 입김이 손전등 불빛 사이를 지나다닌다. 흔하게 자주 사용하던 물뿌리개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안 보이지.  "물뿌리개 어디 갔어? 자주 사용하던 곳을 다 봤는데.." 농장 곳곳을 살펴본다. 둥글고 하얀 불빛이 바쁘게 여기저기 흔들린다. 무슨 정찰병 같다. "거기 숨어 있는 아무개 얼른 나오너라. " 비닐하우스 밖이 정리가 되면 새벽에 뽀야(웰시코기)를 데리고 와야겠다. “누가 오나 정찰을 하라구”. 혹시 일하고 있는데 옆에서 모종을 파헤쳐 놓거나 비닐을 물어뜯지는 않겠지?


 일을 끝내고 비닐하우스 문을 열고 어둠이 내린 밖으로 나왔다. 멀리 가로등 불빛이 보인다. 손전등을 껐다. 어둠이 나를 삼켰다. 나의 숨소리만 들린다. 눈을 밤하늘로 향했다. 오리온 자리, 카시오페이아, 시리우스, 플레이아데스 성단 ... 아 저기 목성도 보이고 .. 이러고 있다. 차를 타러 가야 하지만 가만히 서 있다. 시차가 1시간 차이나는 곳에 사는 호주 아저씨도 밤하늘을 보고 있으려나? 오랜만에 연락을 해봐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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