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처럼 살지 마>
보고서를 수십 번 퇴짜 받은 것도 모자라 결국 상사에게 쓴소리를 듣고 퇴근한 날이었다.
올해 첫 직장에 부임해 온 상사는 매우 예민하고 날카롭고 공격적인 캐릭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보고자들 중에 제일 직급이 낮은 나에게 가장 자주 전화를 걸었고 가장 자주 불러댔다. 그리고 마구 쏘아붙였다. 이거 아니야 저거 아니야, (그래서 저거 가져가면) 처음 거 그 처음 거, (그래서 다시 가져가면), 다시 다시, 아예 다른 거.
두통이 심해서 타이레놀을 3개째 입에 털어놓고 혼 빠진 시체처럼 터덜터덜 집에 들어갔더니 딸아이가 쪼르르 뛰어왔다.
“엄마, 나 엄마한테 할 말이 있어.”
“나중에, 엄마 지금 너무 피곤해.”
하지만 아이는 안 그래도 숨 죽은 배추처럼 축 늘어진 팔을 붙잡고 앞뒤로 흔들며 나에게 엉겨 붙었다. 무겁고 답답한 재킷과 블라우스를 벗고 침대 위에 뻗어 눕고만 싶었지만 아이는 내가 옷을 벗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라라야 엄마 딱 10분만 잠깐 눈만 붙이고 일어날게.”
“안 돼. 나 엄마 오기만을 점심 먹고부터 기다렸단 말이야.”
“나도 안 돼. 난 침대에 눕기만을 아침부터 기다렸어.”
평소에도 나는 나의 힘듦과 거칢과 날 것의 감정, 생각들을 그대로 표출하는 편이었다.
힘들다, 지겹다, 우울하다, 슬프다, 기쁘다, 좋다, 싫다.
우울증을 겪은 이후로 생긴 나름의 생존 방식이었다.
(핑계를 더 대자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혼자 끌어안고 끙끙대는 것만큼 마음의 병을 키우는 일이 없다고 담당 의사가 그랬다.
물론, 이 방식이 상대에게 폭력이 된다는 것도 잘 안다. 그중에서도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된 다는 것도.
“엄마가 안 들어주면 난 내일부터 학교에 안 갈 거야.”
학교에 안 간다는 말에 나는 라라의 눈을 쏘아보며 화를 냈다.
“뭐? 그럼 가지 마. 안 가면 너만 손해지.”
라라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1학년이다. 아이만 학생이 되는가. 엄마아빠도 학부모가 된다. 그리고 걱정이 산처럼 쌓여간다.
기저귀를 떼지 못한 아이, 기저귀를 뗐어도 화장실에 혼자 못 가는 아이, 화장실을 가도 뒤처리를 혼자 못 하는 아이, 낮잠을 꼭 자야 하는 아이, 의자에 제대로 앉지 못하는 아이, 밥을 혼자 못 먹는 아이, 국에 밥을 말지 않으면 아예 굶어버리는 아이 등등등.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아이를 학교에? 싶어 발을 동동 구른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의 부모들과는 다르게 매우 느긋했는데 라라는 기저귀를 일찍 뗐고, 기저귀를 뗀 이후로 단 한 번도 이불에 실수를 한 적이 없으며, 어른 젓가락으로도 반찬을 잘 집어먹고, 어른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지 말라면 절대 하지 않는, 겁 많고 소심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단, 한 가지. 내가 우려한 것은 라라의 친구관계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혹시 하는 마음은 설마로 잠잠해졌다.
라라는 유치원을 다닐 때도 친구와 싸우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 일이 생기면 가지 않겠다고 투정을 부리다가도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그런 아이였다. 단순하고 짧은, 일시적인 칭얼거림이었을 뿐 하루만 지나면 잊어버리는 그런 단순한 어린아이.
그런데 최근에서야 라라가 유치원을 간, 가야만 했던 이유를 들었다.
“안 가면, 날 더 미워할 거잖아.”
“안 가면, 난 더 친구가 없을 거잖아.”
아이는 두려움과 걱정을 회피하는 내 성향보다 더 독하게 더 큰 걱정과 불안으로 자신의 감정을 누르고 있었다.
그런 걸 알면서도, 나는 라라가 (유치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학교를 갈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갈 거라 믿고 싶었다. 그래서 쏘아붙였다. 가지 마! 학교! 안 가면 너 손해지!
참으로 나쁘다. 생각하니 진짜 나쁜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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