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이리도 예쁠까...!
다른 어떤 표현도 찾을 수 없다. 날마다 나의 눈을 동그랗게 만들어 놀라게 하고, 두 발을 멈춰 서게 하는 신기한 이 존재는, 말 그대로 경이롭다. 정말이지 나날이 완벽해져 간다. 31개월이 넘어선 세원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특히 잠든 세원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다! 낮잠을 자려 같이 누우면 아이는 내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대고 두 눈을 깜박깜박 거리며 나를 바라본다. 사랑을 나누는 거지. 그럼 정말로 깜박이는 두 눈의 속눈썹 아래로 별들이 떨어져 나는 약간은 흥분된 상태가 되고 마음 깊은 곳이 뜨겁다. 정말로 그렇다.
"엄마 뭐 봐?" (아이는 늘 엄마의 시선이 닿는 곳을 궁금해한다.)
"응 세원이"
"왜?" (요즘 하루에도 수십 번은 '왜'를 말한다.)
"너무 예뻐서.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응. 그런데 엄마 소리 지르지 마." (최근에 나는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고 사과를 했는데, 그 일을 다시 아이에게 남 이야기하듯 들려주었더니 '엄마 세원이한테 소리 지르지 마'를 말한 듯하다.)
"소리 질러서 엄마가 싫었어?"
"아니~ 좋은데 마음이 속상했어."
"앞으로 조심할게. 미안했어."
오늘은 이런 대화도 나누었구나... 아이는 엄마가 쓰는 단어나, 이야기, 읽어주는 책을 정말 유심히 집중해서 듣고 어느 날 이렇게 자기가 흡수한 단어들을 사용해가며 나와 대화한다.
세원이와 나의 하루를 대략 이렇다. 보통 7시 반에서 8시 반 사이에 일어난다. 서로 번갈아 화장실을 간다. 그렇다. 세원이는 이제 더 이상 기저귀를 차지 않는다. 물을 마시고 유산균을 먹으며 아침 메뉴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보통 오트밀에 사과, 바나나, 푸룬, 견과류를 넣어 크리미 오트밀을 만들어 먹거나 과일에 요구르트, 삶은 달걀과 빵을 먹는다. 세 끼를 같이 먹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아침에 쌀밥은 먹지 않게 되었다. 아침을 기분 좋게 먹고 후루룩 설거지를 한다. 일어나자마자 세탁기를 돌린 날은 이 타이밍이면 건조기까지 끝난다. 그리고 산책을 간다. 발길 닿는 대로, 가고 싶은 곳에 간다. 어떤 날은 멀리 다녀오기도 하는데, 그땐 점심까지 해결하고 돌아오는 길에 세원이는 잠든다. 집 앞에 산책을 다녀오면 집에서 점심을 차려 먹는다. 밥과 두서너 가지의 밑반찬으로 아주 맛있게 먹는다. 생각보다 배가 많이 고프기 때문이다. 설거지를 하고 서로 양치질을 하고 나면 두 시 경. 평화의 시간이다. 세원의 낮잠시간! 요즘 나는 이 시간을 정말로 즐긴다! 이 낮잠 시간 때문에 매일이 여행하는 기분마저 들 정도니까. 보통 두 시간씩 자는데, 낮잠 루틴이 끝나면 한 10여분 만에 잠들고 그 두 시간은 태국 후아힌의 어느 조용하고 한적한 바닷가에 비치타월을 깔아 두고 책을 읽고 있는 내가 있다. 드넓은 바다와 빠져들 것 같은 파아란 하늘, 그리고 아이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바라본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낮잠 이불을 질질 끌며 나에게로 온다. 안아달라고. 한 20여 분을 업고 거실을 거닌다. 그럼 '이제 내려줘'한다. 그럼 매트에 내려주고 나도 잠깐 기대어 눕는다. 저녁 메뉴를 생각하며 재료가 없으면 산책 겸 같이 집 근처 마트에 걸어서 다녀온다. 그럼 본격 저녁 준비! 보통 한 번 먹을 분량의 음식을 하고 매일 요리를 하는데, 세 식구의 양이 그렇게 많지 않으므로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 6시 반에서 7시에 저녁을 먹고 이때부터 저녁 루틴을 가진다. 남편이 아이랑 놀고 나는 설거지하고 샤워하고 아주 간단히 3분 스트레칭을 하고 9시경에 아이와 침대방으로 들어간다. 책을 읽거나 노래를 불러주고 어떤 날은 "세원아 잘 자~ 오늘도 즐거웠다! 좋은 꿈 꿔~ 굿 나잇!" 말하고 내가 먼저 잠드는 날도 있다. 아이가 세 돌을 향해 가는 지금 아이를 재우고 다시 일어나 나만의 시간을 갖기가 점점 어렵다. 이유는 아이 재우는 시간에 나도 커다란 피곤이 밀려온다. 잠깐 잠이 들었다 눈이 떠지면 11시쯤 되어 있는데 그때 조명을 켜 두고 책을 읽는다. 글도 쓰고 인터넷 장도 보고, SNS도 한다. 그리고 더 이상 눈이 견디지 못하면 아이의 볼에 뽀뽀를 하고 나도 잔다.
두 돌이 막 지났을 땐 정말 많이 힘들었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쉽게 칭얼댔는데, 나는 크게 우는 것보다 칭얼대는 세원이를 못 견뎌했다. 나의 체력과 컨디션이 점점 바닥을 보이던 시기였는데, 그땐 어쩔 줄 몰라하는 나의 어두운 그림자가 세원에게 드리워져 아이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나보다 훨씬 더 감내하며 마음을 내어주고 나를 품어주었던 세원... 그렇게 서로의 병풍이 되어주며 같이 울고 웃으며 헤쳐 나왔다. 지금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내 시간으로 여기며, 함께 있으면서도 우리가 하는 일에 흥미를 느끼는 방법을 찾아 나간다. 서로에게 자유의 시간을 주기도 하면서. 벅차고 부담스러웠던 시간이 점점 편안해지고 있다. 이건 아마도 그간 함께 보내온 시간의 힘이지 않을까. 서로의 좋은 모습과 그렇지 못한 모습들을 보여가며 감정을 나누면서 보이지 않는 단단한 끈이, 끊어지지 않는 끈이 서로의 새끼손가락에 묶여있다.
지난 5월 말, 가을 즈음해서 세원이를 어린이집을 보내려고 여러 곳으로 상담을 다녀왔었다. 그중 집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버스를 타고 다녀왔다. 1시간 정도 삼당을 하는 사이 그곳을 다니고 있는 아이의 어머님이 세원이를 돌봐주셨다. 세원이는 나를 찾지도 않고 건전지가 들어가는 장난감이라곤 없는 그곳에서 조용조용 잘도 놀았다. 상담을 해주셨던 분도 그곳의 학부모였는데, 아주 편안하게 상담을 마쳤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8월 18일, 남편과 세원과 함께 저녁을 먹고 어린이집으로 가서 그곳의 선생님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최종 결정 전의 면담 같은 것이었다. 남편을 설득해 다니기로 결정하고 입소대기 신청과 입학금을 납부했다. 그리고 며칠 뒤, 전화가 왔는데, 생긴 지 20년이나 넘은 그 어린이집이 폐원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원아모집의 어려움과 그로 인한 운영이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오전이고 오후고 아이랑 밖에서 놀고 있으면 '아직 어린이집에 안 다니나 봐요?'라는 말을 한 때 많이 들었다. 시어머니도 이젠 보내야지 거드셨고, 남편도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니 어린이집 보내고 좀 쉬라고 말했다. 그때가 두 돌 전 후 즈음인 듯하다. 그래도 난 기관을 알아볼 생각도 보낼 마음도 없었고 그냥 무심하게 '곧 보내야지'하고 얼버무렸다. 두 돌 즈음 아이와 둘만 있는 시간들이 사실 너무 힘들었었다. 그런데 내가 너무 힘든 상태에서는 도저히 아이를 보내고 싶지가 않았다. 나의 이상한 오기인가 싶다가도 아이와 하루 종일 붙어있으면서 온갖 것을 나누는 그 시간들을 더 이어나가고 싶었다. 아이를 보내 놓고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하지 않을 것 같았다.
결혼을 하고 남편과 처음으로 맞이하는 연말을 나는 홀로 독일에 있었다. 12월 말에 가서 1월에 돌아왔다. 3주를 남편과 떨어져 있었다. 그땐 가야만 할 것 같아서 남편이 잠든 깊은 밤, 비행기 표를 끊었다. 그런데 정말 밤마다 남편과 영상통화를 하면서 울었다. 미안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보고 싶었다. 그냥 즐기다 오면 될 것을 나는 이도 저도 아닌 감정상태로 3주를 보내다 돌아왔다. 잘 모르겠지만 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집에서 울 것만 같았다. 더욱이 몸과 마음이 힘든 상태에서 아이를 보내면 안 될 것 같았다. 세원이가 옆에서 나를 바라봐줘야만 나도 건강한 일상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이런 성향 때문에 아이를 안 보낸 것이 아니라 못 보낸 것이다. 나는 우리 둘의 관계가 아주 아주 친해져서 보이지 않아도 세원이도 나도 불안해하지 않고 무엇보다 내가 기쁘고 편안할 때 보내고 싶었다. 그것을 세원이도 원하지 않을까. 엄마의 편안한 마음과 행복이 아이에게 전염될 거라 생각했다.
세원이가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다니기로 '최종 결정'한 일보다 더 중요하고 소중했던 건 이곳에 다님으로써 생길 앞으로의 다채로운 일들이었다. 최종 결정을 앞두고 남편과 함께 어린이집에 가서 세원이가 생활할 공간을 눈으로 보여주고 선생님과 만나 이야기 나누고 그곳에 다니는 보호자분들과 인사를 나눴던 일, 이야기 나누면서 남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 일(남편은 삶의 만족도가 아주 높은 사람이라 했더니 선생님께서 남과 비교하지 않아서란다. 실로 남편은 비교를 하지 않는다. 내가 숨은 보석을 발견했다고도. 그리고 남편은 물론 자신의 딸이지만 세원이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고 아주 많이 사랑하고 위하고 있구나 느꼈다), 집에 돌아와 세원이를 씻기고 못하고 간 저녁 설거지를 하고 우리 부부도 씻고 바로 잠들었지만 그다음 날 일과를 마치고 저녁에 마주 앉아 다시 대화를 나눈 일. 어떤 시도를 통해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내겐 더 중요하고 귀하고 소중하다. 물론 갑작스러운 어린이집 폐원으로 세상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너무 안타깝지만...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나.
세원이가 다닐 어린이집이 스스로를 탐구하는 환경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가장 컸다. EBS의 한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알게 된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나를 번쩍 눈뜨게 했다. 하지만 어디에서든 아이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가며 기뻐하고 화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리라. 나도 어디에서든 희로애락을 잘 담아내는 사람이니. 세원, 우리 다시 또 걸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