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초록 Jun 29. 2023

유럽여행 대신 선택한 그것



  당시 건축학과 학생이던 짝꿍은 유럽여행을 가려고 모아둔 돈을 느닷없이 문인을 많이 배출한 모 대학의 문예창작학과 사설과정에 모조리 쏟아 부었다. 내성적인 편인 짝꿍지만 그 곳에서는 반장을 맡아 모든 잡무를 맡았다. 그 과정을 밟으며 야간 알바도 했다고 했다. 전공이던 학문보다 더 열심히(지금까지 한 적 없는 공부에 대한 열의) 문학 창작에 정진하였으나 이 분야는 본인이 이뤄내기 힘든 분야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잘 수료하였고 다시 전공인 건축학으로 돌아와 정신차리고 공부를 했다고 한다. 

  얼마 전 서점에서 최승자 시를 다시 보면서 그는 '와,,,(한때) 나는 내가 시인이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어. (시집을 훑으며) 이 단어와 이 단어.. 어떻게 이렇게 붙여서 이 문장을 완성하는거지? ' 내게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난 그의 이력은 상당히 내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었고 결혼까지 할 수 있게 됐다. 물론 건축을 하다가 문인이 되겠다고, 시인이 되겠다고 고집했다면 우린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ㅋㅋ 나는 그 열정을 쏟고도 변곡점을 찍을 줄 아는 그에게 미래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수학을 여전히 좋아하는 그가 그 당시 갑자기 뭔가에 홀려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등단을 희망하는 이들 사이에서 공부를 하며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그 판단. 그 결정. 그 시간, 그 돈 모두 엄청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포기가 아니라 세계관 확장 아니겠냐며.

아마도 그도 알겠지? 그는 단 한번도 이런 말은 꺼낸 적 없었으니까. 

 "문예창작수업 들으려고 모은 그 돈으로 유럽을 갔더라면 어땠을까"


그의 이런 인생의 몇 줄 덕에 아마도 내 평생 '그에게 반함 프리패스권'이 동나지는 않을 것 같다.



2021. 11. 12


매거진의 이전글 집요함과 노력, 인내심 그 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