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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록 Jul 05. 2023

나흘만에 정주행 달성

박해영, <나의 해방일지>


누군가 피드에 '구찌'와 '구씨'를 비교한 내용이 있었고, 너도나도 '추앙'이라는 용어로 도배 되는 피드들.

얼마나 대단한 드라마이길래? 줄임말 아니고 그 추앙? 얼마나 멋있는 구씨이길래? 하면서 봤는데

내 머릿속엔 구씨도 추앙도 없고 염미정과 염창희 염기정 순서로 강렬하게 남았다.


염미정은 내 머릿속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온 것 같다.

아니, 텐션이 나랑 어째 비슷한게. 생각이. 한 때 염세주의이기도 했던 것.

대사 몇몇. 내 20대 시절 싸이월드 털렸나. 할 정도로 비슷한 캐릭터였다.




난 왜 딴 애들처럼 해맑게 웃지 못할까.

나는 왜 늘 슬플까, 왜 늘 가슴이 뛸까, 왜 다 재미 없을까.

인간은 다 허수아비같애

자기가 진짜 뭔지 모르면서 그냥 연기하며 사는 허수아비

어떻게 보면 건강하게 잘 산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모든 질문을 잠재워 두기로

합의한 사람들일수도.

인생은 이런 거야.. 라고 어떤 거짓말에 합의한 사람들.

난 합의 안해. 죽어서 가는 천국따위 필요 없어.

살아서 천국을 볼거야.

<나의 해방일지 - 11화>



20대 가장 찬란하고 가볍고 즐거워야 할 나는 어떤 술자리를 가도 이런 생각이 늘 자리잡았었다.

과에 적응할 학기 초, 술자리에서 우연히 센터에 앉았다가 말 수 없고 재미가 없고 술은 잘 마셔서

어떤 남자놈이 나 재미 없다고, 끄트머리에 앉은 말 많고 재밌는 내 친구와 자리를 바꿔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두고 두고 기억에 남는데, 나는 자리를 바꿔주며 피식 웃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에겐 시끄럽고, 사람 많고, 억지로 만들어지는 그런 자리가 연구대상이자 도전의 장이었다.



- 행복한 척 하지 않는다

- 불행한 척 하지 않는다

- 자신에게 솔직해진다


부칙

조언하지 않는다

위로하지 않는다

<해방클럽 규칙 세가지>




척이 뭘까? 생각했다.

나는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은 이후에 확실히 현실에서 나의 좋고 싫음을 알아챌수 있게 됐다. 남의 시선으로 필터링 하지않음과 지금에 집중하는. 행복을 기록으로 남겼던 어제를 불행한 오늘 SNS에 올리면서 남들에게 지난 날의 행복을 확인 받는 패턴의 삶에 길들여지는 것을 경계하지 않으면. 상품판매를 위한 마케팅 회로로 인생을 살게 될 것 같다.  그냥, 진짜를 진짜를 위해 잠깐이라도 다들 쉬어보길. 차분해져보길. 낮도 밤처럼.



짝궁이 아직 이 드라마를 보지 못했는데 날이 선선해지면 그 때 다시 정주행하자고 했다.

박해영 작가. 내 마음을 또 이렇게 진하게 흔들어 놓나요.

아니, 나 박혜영 작가 추앙해... 이 드라마 추앙해



2022.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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