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들어가서도 한동안 나의 재수 시절은 집에서 꺼낼 수 없는 금기어였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나는 재수마저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독학 재수를 하겠다며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나의 재수 생활은 고3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고3 때보다 더 집중할 수 없었다. 독학 재수는 보통의 의지력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규칙적이었던 학교 생활이 없어지니 밤낮이 바뀌고 생활이 엉망으로 되었다. 모든 것을 멀리하고 오로지 공부에만 집중해야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집중할 수 없었던 것은 나와 다르게 상위권 대학을 간 친구들의 소식이었다. 마음이 여린 상태에서는 작은 돌멩이 하나도 파장을 일으키는 법이다. 점점 나는 작은 일에도 더 쉽게 좌절하고 있었다. 계속되는 실패로 자신감은 바닥을 쳤다.
지금은 이렇게 몇 줄로 요약할 만큼 담담해졌지만, 재수 생활은 끝없는 암흑에 갇힌 기분이었다. 나는 결국 우울증에 걸렸고, 수능을 포기했다. 학교 성적만으로 갈 수 있는 전형을 찾아 하향 지원했다.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했으니) 대학을 다니면서도 1-2년 동안은 방황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허했다. 내가 원하는 게 뭘까. 그 와중에 자꾸 고등학교 졸업식 날이 생각났다. 내가 정확히 뭘 원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방황하는 시간이 되풀이되면 또 빈 손으로 졸업하게 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대학 시절, 고등학교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결코 대학 졸업식 날은 빈 손으로 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필기는 수업 때 한 번, 시험 기간에 노트북에 다시 한 번, 총 두 번 정리했다. 시험 볼 책은 세 번씩 봤다. 먼저 목차를 보면서 전체를 훑으며 보고, 다시 한 번 하나하나 암기하며 보고, 시험 보기 전날 다시 한 번 읽었다. 평소에는 과목에 관련한 서적도 1-2권 이상 봤고, 관련 논문도 읽었다. 전공 수업 교양 수업할 것 없이 최선을 다했다. 어느 교양 수업 교수님은 교양 수업을 왜 이렇게 열심히 하냐고 묻기까지 하셨다.
이렇게까지 대학 공부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자랑이 아니다. 학점을 위해서 굳이 이렇게 까지 공부할 필요 없다는 이야기다. 취업을 위해서는 적당히 높은 학점과 다른 스펙이 더 중요하다.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세 번의 실패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대학 졸업식 날 강단에 올라가 최우등 상장을 받을 수 있었다. (졸업 연설 때 또 다른 흑역사를 만들었지만.) 그냥 그거뿐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못 받은 내 노력에 대한 보상을 대학 시절에라도 대신 받고 싶었다.
그리고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최우등 상장이, 내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바꾸는 일은 없었다. 그 상장을 '대학 이름'만큼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었다. (회사에서는 ‘그런 거’ 받은 줄도 모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오랫동안 날 지배했던 '패배감'과 낮아진 자신감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두 번의 입시 실패로 깨달은 것이 있다면, 포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고 좌절해도 무언가 계속해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대학 이름’은 분명 학창 시절에 대한 중요한 보상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실패했다고 해서 계속 좌절할 필요는 없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삶은 계속된다. 다른 것으로 나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심지어 직장 생활에서도 ‘대학 이름’보다 ‘능력’을 우선 인정한다. 그리고 그 증명은 결국 내가 해야 한다.
고3을 비롯한 모든 수험생에게 (비록 입시에 성공한 이야긴 아니지만,) 삶은 계속되고 우리의 노력이 계속되는 한 결국 보상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그리고 결과에 상관없이 참 고생이 많았다는 이야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