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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asson Dec 15. 2023

L에게 보내는 편지

#09 착한 너와 네 인생 첫 거짓말

2023. 10의 어느 날,

리나에게 


안녕 리나야. 

한동안 나는 너무 바빴어. 

공모전에 제출해야 할 소설도 있었고 어도비 자격증 시험을 3개나 통과해야 했거든. 

나는 종종 새벽 3~4시에 일어나서 창작 활동을 했어.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네 등원 준비를 했고 네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에 공부를 했어. 

네가 집에 오면 같이 놀이터에 가서 놀고 밥도 같이 먹고, 네가 잠들면 나는 다시 공부를 했지. 

창작을 하기 위한 영감은 아무 때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새벽을 택한 거야. 

힘들긴 해도 살 맛 나더라. 

낮에는 엄마로서의 나, 밤에는 자아실현을 하는 나. 


운동할 시간도 없어서 다니던 레슨을 다 끊고 러닝을 시작했어.

몰타는 제주도 6분의 1 크기의 작은 지중해 섬나라라 해안선을 따라 길이 아주 잘 깔려 있거든. 

몰타 앞바다

내가 러닝을 하는 날에는 네 아빠가 너를 등원시켜줬어. 

아침 햇살 부서지는 바닷가를 달리고 오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거든. 


너는 이런 나를 아주 잘 도와줬어.

늘 생각하지만, 대체 내가 전생에 나라를 얼마나 구했길래 너 같은 아이가 나에게 찾아와 준 걸까? 

아직도 기억나는 어느 아침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쓰다가 네가 잠꼬대를 하는 소리가 들리길래 

네 방에 들어가서 너를 토닥토닥해주다 까무룩 잠들어 버린 날이었지. 

아침이 찾아왔고, 네가 먼저 눈을 떴어. 나도 네 기척에 깨서 너를 바라봤어. 


"리나야, 일어났어?"
"응"
"거실로 나갈까?"
"No, 마마 자"


나보고 다시 자라고 하던 너. 

나는 잠깐 다시 잠이 든 것 같아. 다시 깨서 시간을 보니 30분 정도가 지난 것 같더라고. 

다시 깬 순간 네가 내 코 앞에 있었는데, 나를 동그란 눈으로 똘망똘망 쳐다보고 있더라고. 

내 볼에 한 손을 얹어 놓고 말이야. 

너무 귀엽고 웃겨서 너한테 다시 물어봤지. 


"리나 안자?"
"응"
"그럼 엄마랑 거실 나갈까?"
"No, 마마 자" 
"엄마 또 자?"
"응"


나보고 계속 다시 자라고 하는 너. 

나는 못 이기는 척 살며시 실눈을 감고 너를 몰래 훔쳐봤어. 

또 네가 날 똘망똘망 바라보고 있더라고. 

이게 참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웃음이 나더라. 


"리나야, 그럼 너도 얼른 자" 
"응" 


작고 따뜻한 너를 꼭 끌어안았더니 네가 이번엔 천장을 똘망똘망 바라보고 있더라. 

계속 나보고 자라던 너랑 작은 실랑이를 하다가 아빠가 일어나서 리나 방으로 들어왔어. 

그제야 네가 밖에 나간다고 하더라. 


솔직히 네가 어떤 의도로 그랬는지 전혀 알 수 없지만, 

물론 네가 이 글을 읽게 되는 시점에도 아무도 답을 알 수 없겠지만, 

나는 그냥 네가 피곤한 나를 더 자게 해준 거라고 생각하려고. 

아직 두 살도 안된 아기가 어떻게 그런 걸 알고 그랬겠냐만은! 


그날 아침은 너무 네가 사랑스럽더라. 

날 말똥말똥 바라보던 네 모습. 내 볼에 살며시 올려놓은 네 작은 손. 

너한테 나는 귀엽고 포근한 아기로션 냄새. 


그뿐이 아니야. 

네가 떼를 부리기 시작해서 조금 미간을 찌푸리거나 아무 말 도 없이 입을 꾹 닫고 있으면 

너는 갑자기 내 눈치를 보고 나에게 달려와 안기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아이야. 

내가 어디에 꿍 부딪혀서 아야!라고 소리치면 

너는 쏜살같이 달려와서 '마마 오케이?'라고 물어봐주며 상처 부위를 호~ 불어주는 아이야. 

네가 크면 어떻게 변할지 전혀 모르겠지만, 

지금의 너는 정말 착하고 공감능력이 뛰어난 아이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착하고 바른 아이로만 커주렴. 

공부 못해도 상관없으니, 지금처럼 착하고 밝고 잘 웃고 사랑스럽게만 커주렴.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착한 네가 태어나서 처음 한 거짓말이 뭔 줄 아니? 


"리나, 응아 했어?"
"No"
"진짜? 냄새나는데?"
"No 푸푸(응아), 피피(쉬아)"
"쉬아만 했어?"
"응" 


만 2년도 안된 너의 첫 거짓말. 

네가 상습적으로 하는 거짓말. 


현시점으로 너는 22개월이고, 아마 19개월~20개월 즈음에 처음 거짓말을 한 것 같아. 

어제, 너를 픽업해서 집에 오는 길에 놀이터에 들렀어. 

네가 정말 좋아하는 흙놀이를 열심히 하더라. 

나는 그런 너를 바라보고 있었고. 


열심히 흙놀이 하는 네 모습

갑자기 네가 나를 보더니 뜬금없이 하는 말. 


"마마, 냐냐 노 푸푸(엄마, 리나 응아 안 했어)" 
"응? 엄마 안 물어봤는데?"
"노 푸푸" 
"알겠어"
"노 푸푸!"


네가 내 옆을 휙 지나가는데 강렬한 냄새가 풍기더라. 


"리나, 응아 냄새나는데? 응아 확실히 안 했어?"
"응, 노 푸푸" 
"확실해?"
"응, 냐냐 피피" 


자꾸 나는 웃음을 숨길수가 없더라. 

나는 물어본 적도 없는데, 네가 갑자기 나한테 저렇게 말한 거야. 

이젠 물어보기도 전에 거짓말을 하다니. 


거짓말도 할 줄 알고, 정말 이제 진짜 사람이구나~ 싶더라. 

그런데 리나야. 


지금 하는 거짓말은 귀엽게 넘어가줄 수 있는데, 

나는 리나가 커서 못된 거짓말은 안 했으면 좋겠어. 


내가 너를 키우는 철칙 중에 하나야. 

공부 못해도 되고, 뭘 좀 못해도 상관없어. 

하지만, 

1. 거짓말하기

2. 어른들에게 버릇없게 굴기 

이건 절대 안 돼. 

특히 거짓말은 절대 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나한테는 무조건 진실만 얘기해야 해.

그래야 내가 너를 도와줄 수 있거든.


나의 예쁜 리나야. 

이 글을 읽게 되는 그 순간에도 꼭 명심해 주길 바라.

나한테 절대 거짓말하면 안 된다. 알겠지?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네 편을 들어줘야 하고 너를 도와줘야 해. 

그러니까 나에겐 무조건 진실만을 얘기해 주길 바랄게. 


사랑해 내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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