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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아바 Mar 05. 2020

임신 출산을 통해 자아실현을 꿈꾸다-독립출판 도전기

임신 10개월, 36주 5일째 (D-23)

우리나라 여성들 중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은 이들은 드물 것이다. 일단 임신과 출산, 육아가 가져오는 신체적인 변화가 그 첫 번째일 것이고, 두 번째는 자신의 생활을 송두리째 흔드는 생활의 변화다. 흔히 말하는 경력단절 여성들과 워킹맘들의 고충이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실제 내 주변에는 워킹맘은 오히려 운이 좋은 경우이고, 경력단절이 된 능력 있는 언니, 선배들이 넘쳐난다. 나 자신도 지금의 직장을 선택한 이유 중 '육아휴직'을 부담 없이 쓸 수 있고, 복직 이후에도 비교적 이전과 비슷하게 업무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컸다.


아이를 갖는다는 것이 지금까지 나다움에 대하여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뉘앙스의 경험담들을 정말 많이 들었다. 물론 육아에서 또 다른 기쁨과 자아를 찾고 새로운 삶에 더없이 만족하거나 혹은 일과 가정 모두 소홀히 하지 않고 잘 꾸려가는 분들도 많다. 일반화를 하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아이를 갖기 전과 이후의 삶이 너무나 달라졌기에 목표를 수정하는 분들을 많이 보았다. 적어도 내 주변에는 많다.


아이를 갖게 된 후, 앞으로의 나의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던 내 삶이 결혼이라는 공동체를 꾸리며 '우리'의 삶을 중점으로 두는 것으로 변화했듯이 많은 것이 바뀔 것이다. 더구나 성인 남녀의 공동체와 달리 절대적으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무력하고 연약한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삶이 가져올 변화는 녹록지 않을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하지만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것들이 잔뜩 생길 거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오기 아닌 오기가 생겨나기도 했다. 엄마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되면서도, 나라는 정체성을 놓고 싶지 않다는 생각. 임신, 출산, 육아라는 이 새로운 도전이 오히려 나를 더욱 나답게 만들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막연하게 꿈꿔왔던 나의 버킷 리스트를 이 인생의 전환점을 맞아 꼭 이루겠다고 결심했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끈기가 없어 항상 놓아버렸던 '작가'라는 꿈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작년 11월 나는 '퇴사 학교'의 <한 번은 도전해야 할 독립출판 워크숍> 수업을 등록했다. 물론 퇴사를 고려한 결정은 아니었고, 직장인이 들을 수 있는 커리큘럼으로 적절하여 선택한 강의였다.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진행됐던 워크숍을 위해 매주 수요일 퇴근 후 가로수길을 찾았다. 추위와 피곤으로 고단했던 시간이었지만 훌륭하신 선생님을 만나 정말 책을 만들 수 있는 실용적인 내용(기획, 편집, 출판, 마케팅까지)을 콤팩트하고 임팩트 있게 배울 수 있었다. 


우선 책의 콘셉트를 고민할 때, 나는 앞서 말했듯 나의 임신이 나를 더욱 나답게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미래의 아이에게 줄 선물이자 나의 오랜 꿈을 이루어줄 수 있는 내용을 다루고 싶었다. 그리고 이 도전을 나 혼자만이 아닌 남편과 함께 이루고 싶다고 생각했다. 남편과 함께 아이가 있는 우리 가족의 미래를 상상하며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담은 책을 완성하면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과 고민 끝에 미래의 아이를 위해 꼭 해주고 싶은 것들을 정리한 책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스무 살의 성년이 되기까지 1년에 한 가지씩 꼭 지켜줄 수 있는 약속을 정리한 책이 책의 콘셉트였다. 나는 남편과 나눈 이야기를 토대로 글을 쓰고 편집 작업을 했고, 그림을 잘 그리는 남편은 삽화를 담당했다. 


                             -'1살, 기념수, 평생 친구를 만들어줄게'에 삽입된 남편의 일러스트- 


퇴근 후 저녁, 그리고 주말 오후에도 우리 부부는 작업을 함께 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아이와의 미래를 한 해, 한 해, 상상해보며 어떤 것이 아이를 위한 것인지,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는지도 생각해보았다. 그 생각과 결심이 담긴 책이 훗날 우리 부부가 아이를 가졌을 때의 초심을 잊지 않는 계기가 되길 희망하며 우리 가족의 첫 번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책이 만들기 위해서는 일정한 방향성을 유지하며 꾸준한 분량의 글과 그림을 생산해야 했다. 우리의 작업을 책답게 만들기 위해 처음 다뤄보는 프로그램으로 책을 편집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최종 편집본을 인쇄소에 넘겨 가제본을 받아보고 오탈자를 체크했다. 가제본이었지만 나와 남편의 첫 번째 책을 직접 눈 앞에 두고 만질 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설렘으로 심장이 쿵쿵 뛰었다.

          -퇴사학교 <한 번은 도전해야 할 독립출판 워크숍> 임성수 선생님께서 찍어주신 수료 기념사진 -



이미 책은 만들어졌지만 기왕이면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이번 기회로 제대로 시작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1인 출판사를 만들어 등록하고 책의 주민번호라고 할 수 있는 ISBN을 발부받았다. 우리의 책과 프로젝트를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창작자를 위한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텀블벅에 프로젝트를 올렸다. 책 이외에도 남편의 일러스트를 활용한 다양한 굿즈를 기획하고 제작을 위한 정보를 수집했다.


2월 말, 드디어 작년 11월부터 준비해왔던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주변 가족 친지 지인들에게 우리의 출판 프로젝트를 알렸다. 조금 민망했지만 그래도 우리의 결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응원받고 싶었다. 지금 이 프로젝트를 좀 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또 다른 주제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남편은 SNS 홍보와 새로운 그림체와 주제로 그라폴리오에 작업을 올리고 있다.

(출판 프로젝트는 '예비 엄마 아빠가 아이를 위해 쓰고 그린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텀블벅 펀딩을 진행 중입니다. 응원과 관심을 가져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프로젝트 링크▶  https://tumblbug.com/promise20 )


나는 어릴 때부터 일을 크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없는 일도 만들어서 하는 사람. 그렇지만 그 일을 만드는 과정과 결과물을 즐기는 사람. 아이가 생기면 이전처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을 가장 크게 키워나간 건 나 자신이었다. 나는 그런 불안을 오히려 불안의 원인으로 반박하고 싶었다. 아이를 위한다는 마음과 나의 오랜 꿈이 접점으로 만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꼭 이뤄낸다면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그 결과물을 손에 넣고 싶었다. 


아직 출산과 육아 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출산과 육아를 겪으면서도 다른 프로젝트도 잘 이뤄낼 수 있을지 확답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이를 위하여, 아이를 생각하며 작업했기 때문에 완성할 수 있었던 프로젝트였다. 


지금 나는 임신, 출산, 육아라는 과정에서 '포기'보다 '성공'이라는 단어를 앞세우고 싶다. 지금 진행하는 프로젝트 뒤에는 당분간 출산과 육아라는 프로젝트에 전념하게 되겠지만 곧 가까운 시일 내에 육아와 자아실현의 접점을 찾아 또 다른 프로젝트에 도전할 것이다.(이미 계획 중인 건 안 비밀.^^)




덧. 저희 부부의 첫 번째 프로젝트 도서 <너에게 보내는 스무 가지 약속>에 대한 소개와 책에 수록된 아빠 시니의 멋진 일러스트는 아래 링크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브런치 매거진 링크 ▶  https://brunch.co.kr/magazine/promise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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