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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아바 Mar 25. 2020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다.(제왕절개 후기)

0개월, D-day. (10개월, 276일, 39주 3일)

(2020. 03. 24. 9:06 아이와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하며 기록을 남깁니다.)


새벽이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배를 바늘로 쿡쿡 깊게 쑤시는 느낌에 잠시 잠이 깨었다 다시 눈을 붙였다. 그러다 문득 생리를 하기 전의 그 기묘한 기시감에 서둘러 화장실을 갔더니 평상시 소변을 볼 때와 다른 느낌의 물이 다리 사이를 빠져나갔다. 살짝 분홍빛이 도는 물이 한차례 더 쏟아진 뒤 급하게 분만실로 전화를 걸었다. 양수가 새는 것 같으니 병원에서는 지금 바로 오라는 답변을 받았다. 이때 시간은 새벽 2시 반.


15분 거리의 병원에 도착하기 전 한차례 또 물이 쏟아지고 그렇게 서둘러 병원에 입원을 했다. 아이의 맥박수를 측정하는 기계를 두르고 환자복으로 환복 한 뒤 침대에 누웠다. 관장과 간단한 제모 후 2~3시간은 남편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진행이 늦어지면 촉진제를 사용한다고 하셨다.


                    새벽부터 제대로 한숨도 자지 못했던 남편은 침대 한 귀퉁이에 얼굴을 묻고 쪽잠을 잤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쏟아지는 양수와 다르게 나의 자궁은 신호가 없었다. 그날 오후에 예정되어 있던 내진을 마음의 준비도 없이 시도 때도 없이 받으며 혼이 쏙 빠졌다. 1cm, 2cm 자궁문이 조금씩 열렸지만 양수가 너무 빠르게 흘러나왔다. 태동검사를 위해 몸을 똑바로 뉘운 후부터는 갑자기 숨을 쉬기 어려워졌고 머리가 핑글핑글 돌았다. 갑자기 소란스러워진 후 갑자기 내 침대에 많은 사람들이 달려왔다. 난장판 속에서도 똑똑하게 귀에 꽂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산모가 힘들어하면 아이도 힘들어요.


담당의 선생님께선 출근 전이라 당직 선생님이 내려오셔서 초음파 검사를 진행했다. 뱃속의 양수가 거의 없어요. 매 검사 때마다 양수 양이 많다고 칭찬받았기에 당혹스러웠다. 긴급 수술에 들어간다는 소리와 함께 내가 누운 침대는 입원 때 잠깐 보았던 방 하나로 빨려 들어가듯 들어갔다. 침대 위에서 수술을 위한 제모 후에 하반신 마취를 위해 등을 새우등처럼 구부렸다. 등 한가운데를 쿡 찔러오는 고통에 몸이 움찔거렸다. 잠깐의 미동에도 척추 아래가 전기로 감전된 듯 떨려왔다. 척추주사이기 때문에 움직이면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저 숨만 죽일 수밖에 없었다.


해부실 개구리처럼 팔다리가 펼쳐진 채로 난생처음 하반신 마취와 수술을 경험했다. 고통은 없었다. 차가운 메스의 감촉도 느끼지 못했다. 내 뱃살의 덩어리감과 그 위를 지나는 둔한 압력만이 느껴졌다. 배를 누르는 감각이 여러 차례 지나간 뒤, 약간의 저항감과 함께 배에서 무언가가 뽑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뒤, 생각보다 작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아기 보세요.


오른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눈을 꼭 감은 보송한 얼굴의 아기가 눈 앞으로 다가왔다. 당황할 사이도 없이 찰나에 아이의 얼굴이 다가와 내 뺨을 비볐다. 따뜻하고 놀랄 만큼 부드러운 감촉이었다. 순식간에 처음 느끼는 감정에 휩싸여 눈가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처음 보는 아가였고, 그 아가가 내 아가라니.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는 아주 찰나의 순간이 지난 뒤 멀어져 갔고 나에게는 아이의 탄생 시간이 적힌 팔찌만 채워졌다. 나는 곧 잠이 들 거라는 간호사 분의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정신없는 수술실에서도 팔찌부터 챙기는 의료진을 보면서 아이가 바뀔 걱정은 없겠다고 내심 안심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처음 입원했을 때 누웠던 그 공간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입원 시 누웠던 침대의 반대편이라고 알려줬다. 아이는 바로 신생아실로 이동하여 4시간 정도 인큐베이터에 들어간다고 전해 들었다.(아이는 건강하다.) 정신을 제대로 차리기도 전에 온 몸이 덜덜덜 떨려옴을 느꼈다. 춥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이불이 덮이지 않은 몸은 어김없이 떨려왔다. 꼼꼼하게 이불에 둘러싸여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지루하게 시간을 흘러가고 잠시 뒤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침대에서 침대로 이동하며 드디어 입원실로 들어오게 되었다.


아이의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수술 후 내 몸은 마취도 풀리지 않아 발가락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음식은 물론 물도 마실 수 없는 상태로 꼼짝없이 침대에 갇혔다. 진통제와 페인버스터를 조치하여 얌전히 누워있을 땐 생각보다 배가 아프진 않았다. 물론 곧 마취가 풀리고 조금이라도 힘이 들어간 순간의 고통은 강렬했지만. 흔히 영화에서 보는 배에 칼을 맞을 때 기분이 이런 것이겠구나, 실감이 났다.


다음날인 오늘은 침대 위에 앉아 이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토닥거릴 정도로 회복되었다. '자연분만은 선불, 제왕절개는 후불'이라는 말을 실감하며 진통보다는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고통을 느끼며 수액 거치대에 기대어 방을 걸어 다니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수술 이후로는 아직 아이의 얼굴을 만지지도, 보지도 못했다. 잠깐 면회를 다녀온 남편이 찍어온 휴대폰 사진 속에서 잠든 아이를 손가락으로 어루만져 볼 뿐이었다. 아직도 아이를 품에 한 번 안아보지 못했지만... 나는 그날 그렇게 엄마가 되었다.


    남편이 찍어온 신생아실의 아가 사진. 눈을 꼭 감아 조금 아쉬웠다. 갓난 아기지만 코가 아빠를 쏙 빼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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