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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아바 Apr 02. 2020

초보 엄마에게 불어닥친 코로나19의 나비효과

D+2 /20. 3. 25 회고 및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당부말씀

아이가 태어난 지 8일째, 이제 9일째로 접어드는 찰나에 있다. 5박 6일의 입원을 끝마치고 조리원에 입소한 지 4일째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것도, 난생처음 수술을 했다는 것도 그 다사다난함에 포함될 수 있지만 이번엔 정말 코로나 19로 인하여 생각지도 못했던,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을 했다. 정말 쓰고 싶었던 글이었지만, 한동안은 이 내용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심란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어 약 일주일이 지난 지금에서야 겨우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 19의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하여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늦었다면 늦었고, 빠르다면 빠를 회고담을 작성한다.


내 인생의 첫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며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두려움을 느끼며 맨탈이 바삭바삭하게 부서졌던 경험이 세 번 있었다. 첫 번째는 2차 기형아 검사  다운증후군 고위험군 진단을 받았을 때, 두 번째는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인 제왕절개 수술과 회복기간, 그리고 세 번째는 수술 다음 날 받았던 지자체의 코로나 확진자 안내 알림을 받았던 순간.


수술 후 소변줄도 빼지 못한 상태로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있던 나를 대신하여 남편만이 아이를 보러 면회를 다녀왔다. 아이의 사진을 보며 행복한 기분을 만끽하는 것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수술 다음 날 준비되지 않은 제왕절개 수술 때문에 어수선한 상태로 오전 시간을 보낸 뒤 오후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지자체에서 보내온 확진자 안내 문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는 거의 일상처럼 되어버린 것이기에 남편과 나는 평상시와 같이 문자를 훑어보았다.


지금까지는 기껏해야 집 근처 마트 정도의 동선만 가끔 겹쳤기에, 이번에도 그러려니 싶었고, 우리의 주 관심사는 코로나가 아닌 아이와 나의 수술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까지는. 코로나 19라는 온 나라를 들썩이게 만든 질병은 결국 나의 일상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고 말았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하며 당장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확진자는 우리 아파트의 라인에 살고 있었다. 확진자에 대한 역학조사가 시작되었으며 정확한 동선 파악을 위하여 2~3일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하였다.


임신을 한 상태라 워낙 유난스러울 정도로 마스크와 소독제를 끼고 살았던 우리였지만 만에 하나라는 말을 차마 떨칠 수 없었다. 곧바로 병원 측에 전화를 걸어 현재의 상황을 공유하였다. 곧 병원 책임자로 보이는 원장 선생님이 병실로 찾아와 상황을 자세히 청취하였다. 원장 선생님은 거동을 할 수 없는 나를 대신하여 남편이 사비로라도 검사를 받는 것을 제안했다. 검사 결과가 제대로 나오기 전까지는 나는 물론이고 남편도 병실에 그대로 자가격리를 진행해달라고 요청받았다. 나와 남편은 의료진 및 관계자분들이 병실에 들어왔을 때 마스크를 착용했다.


늦은 오후였기 때문에 거주지역 관할 선별 진료소는 문을 닫았다. 난생처음으로 수술까지 하며 낳은 아이를 직접 눈으로도 볼 수 없었다. 수술 후 통증과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할 때 답답한 마음이라도 풀고자 출산에 대한 글을 썼다. 아직 역학조사 결과가 확실하진 않았기 때문에 그저 수술에 대한 후기와 같은 출산 후기를 쓸 수밖에 없었다. 글을 다 쓰고 다시 읽었을 때 다른 출산 후기와 다르게 건조함이 가득한 글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했다. 아이에 대한 기억과 정보는 수술로 아이를 꺼낸 뒤 마취로 잠들기 전 잠깐 아이를 확인하며 뺨을 비볐던 그 찰나와 면회를 다녀온 남편의 휴대폰 사진뿐이었다.


아래의 링크가 그 문제(?)의 출산 후기다. 나중에 사태가 수습된 후 뒤늦게 글을 확인하였을 때 많은 분들의 축하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너무 놀랍고, 또 감사했다.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다.(제왕절개 후기) 


날이 밝은 뒤 남편은 선별 진료소가 문을 열자마자 병실을 나섰다. 증상자나 밀접접촉자에 대한 소견이 없기 때문에 19만 원의 비용을 지불한 뒤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는 하루가 걸린다고 했다. 그리고 뉴스나 인터넷 후기와 다르게 직접 진료소를 다시 방문해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남편이 진료소를 떠난 뒤, 그리고 돌아와 결과를 기다리는 순간, 역학조사 결과를 확인하기 까지. 침대에서 제대로 거동도 못했던 상태의 나는 온갖 가능성에 대한 불안과 자기 암시처럼 걸어둔 희망으로 널뛰는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다. 마음뿐만 아니라 난생처음 경험하는 수술 후 고통으로 심신이 모두 지친 상태였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남편은 음성 판정이 났다. 그리고 역학조사 결과 확진자는 대외 동선이 거의 전무하여 아파트 내 밀접접촉자는 아무도 없었다. 확진자는 해외여행을 다녀온 지인과의 만남을 통해 감염되었다.


병원 측에 검사와 역학조사 결과를 바로 안내했다. 남편의 병실 내 자가격리 권고는 끝났다. 하지만 검사를 받지 않았던 나는 퇴원 마지막 날까지 병실 내 자가격리 조치를 받았다. 결과가 나오면 아이를 유리창 너머라도 직접 볼 수 있겠다고 기대하던 마음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검사 결과를 듣고 이제 괜찮겠지 싶었던 마음이었던지라 더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아가들과 산모들의 건강, 그리고 관계자들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병원의 입장과 고충도 이해가 갔기 때문에 퇴원 때까지 최대한 협조하기로 하였다. 결과가 나오기 전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거리에 쫓겨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나, 혹시나 양성이라면 벌어질 후폭풍 등을 생각했을 때 관계자분들도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와 위험부담을 안고 있는지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협력하여 끝까지 조심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자가격리 조치와 1회용 식기 사용, 마스크 착용 이외에는 병동을 찾는 의료진 분들도 여느 환자와 다름없이 열심히 케어해주셨다.


아이를 면회할 순 없지만 대신 사진과 동영상이라도 보고 싶은 욕심에 부지런히 유축을 하며 남편을 틈만 나면 신생아실로 보냈다. 하지만 지금도 잠이 많은 우리 아이는 결국 퇴원하는 날까지 단 한 번도 눈 뜬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하필 남편이 핸드폰을 놓고 간 순간 딱 한 번 눈을 떴단다.) 퇴원 후 찾게 되는 조리원과 산후도우미 업체에는 전후 사정과 검사 결과 등을 안내드렸다. 다행히도 별문제 없이 예약대로 서비스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약 일주일이 지났고 아이도 실컷 만나며 돌보고 있기 때문에 글을 차분하게 잘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나간 일임에도 왠지 모르게 이 글을 쓰며 몇 번이나 눈물이 흘러나와 스스로도 굉장히 놀라고 있다. 지울 수 없는 감정이 묻은 기억이기 때문인 것 같다. 쉽게 쓰기 어려운 글이었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앞서 이야기했던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주시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다. 


코로나 19가 불러온 나비효과로 평범한 가정의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시간이 이렇게 고통스럽게 바뀔 수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확진자나 밀접 접촉자가 되어 피해를 입으신 분들의 고충은 헤아리기도 어렵다. 내 주변의 소상공인 분들도 많은 손해를 입고 계신다. 안타깝게도 이 모든 것은 현재 진행 중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하여 많은 분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계신 것으로 알지만 그래도 자신과 주위 사람들, 그리고 일면식은 없더라도 소중한 가족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좀 더, 끈기 있게, 끝까지 노력해주시길 바라며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부디 코로나 19가 이제는 더 이상의 후폭풍 없이 그저 잠잠한 날갯짓으로 하루빨리 잠들기를 바랄 뿐이다.


다소 무거운 이야기의 분위기 전환을 위하여 아가 사진을 함께 올립니다.

힐링하시고, 이 아이가 안심하고 밖에서 뛰놀 수 있는 날이 빨리 오도록 함께 힘 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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