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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titude Apr 24. 2023

10년 전 출근길을 다시 가는 길

10년은 아니고, 벌써 9년 만인가. 오랜만에 나서는 길이다. 9시에 딱 맞추려면 붐비는 지하철에 몸을 던져야 한다. 그게 싫어서 보통 일찍 나서서 근처 카페에 머물다 가곤 하는데, 가까운 투썸플레이스가 8시에 연다. 어떤 기사에서였나 손님이 음료를 주문하고 머무를 때 카페 입장에서 경제적인 마지노선이 1시간 14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동안 그랬고 앞으로도, 자리가 차서 손님을 돌려 보내지 않으면 괜찮을 거라 스스로 합리화를 해서 90분 내지 2시간을 보통 머무르기에 시간이 애매해서 러시아워를 견디기로 결정했다.


기억을 떠올려 보면, 내가 향하는 6호선 라인은 사람이 적었다. 대부분 합정(2호선 환승)에서 탔다. 공덕역에서 갈아타는 길에 한 줄짜리 에스컬레이터를 오른다. 반대쪽에 내려오는 출근하는 분들이 보인다. 매일 같이 출근하는 사람들 중에 '오늘의 미녀'를 찾곤 했다. 그래봤자 따로 어쩔 일은 없지만 앞뒤로 출근길의 고단함이 풍겨오는 가운데 단비 같은 즐거움이었다.


내 앞에 서계시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뛰어가신다. 처음에 반대쪽 에스컬레이터에 내려오는 사람들이 적어서 막 지하철이 떠났다고 생각하시고 가만히 계셨나 보다. 그러다가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사랑들을 보고 그제야 '속았다'는 듯이 분노의 질주를 하셨지만 늦었다. 추측건대 아마 공덕역의 전체적인 구조를 모르시는듯하다. 여기는 5.6호선 뿐만 아니라 공항철도, 경의중앙선도 환승하는 곳이다. 환승노선에 따라 6호선 플랫폼을 통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나는 그 모든 걸 간파하고 서있던 게 아니라, 앞에 분이 가만히 계시기도 했고

굳이 질주해서 힘 뺄 정도로 지각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느긋했던 이유에서다.


다음 열차를 타고 보니 희한하다. 8시 20분인데 사람이 별로 없다. 마포구청이나 DMC 상암 등으로 출근하는 사람이 이쪽 방향에서 이렇게 많지 않은지. 자리도 비어서 앉아 있었는데 옆자리가 비었다. 다음역에서 문에 들어선 여성분이 슥보더니 다른 쪽으로 향한다. 아마 남자옆이 부담스러웠으리라. 내가 몸집이 커서 경계선 같은 골짜기를 넘어오는 엉덩이살에 눌린다거나 어깨가를 움츠려야 한다는 생각까지 했을 거라 보기에는 돌아서는 시간이 매우 짧았다. 나는 확신한다.


같은 칸에 마주 앉은 사랑들을 훑어본다. 이중에 나와 목적지가 같은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같은 부름을 받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낼 사람들.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상수역에서 다 내렸다. 운동복의 한계선에서 최대한 멋을 낸 느낌의 복장이었는데, 알고 보니 음악 하는 예술가들이었을까? 드디어 합정역에 도착했는데 타는 사람이 없다. 이게 뭐지? 낯선 정도가 영화 데스티네이션 3 지하철칸을 의심할 정도였다. 내릴 때서야 (다들 내리려고 일어섰으니까) 다시 보인다. 깔쌈하게 운동복이 추레하지 않고 댄디한 느낌의 복장들.


개찰구를 지나 계단을 오르는데 앞의 여성분이 치마를 입었다. 몸의 기억 덕분에 살짝 거리를 둔다. 예전에 출근시간이 자주 겹친 구청 아나운서는 피해사례가 있었는지 주의예방차원인지 가방 든 손으로 뒤쪽 치마를 붙잡으며 갔다. 괜히 뒤에서 걷는 내가 이상해 보일까 그분이 보이면 오르는 계단의 진로를 바꾸곤 했다. 그나저나 이해가 안 가는 건 그걸 촬영하려고 손 뻗는 거나 그런 행동이 그 자체도 뭔가 부자연스럽고 민망하지 않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참 많다.


에스컬레이터 맞은편 옅은 화장의 여성분이 내려온다. 풀메이크업 보다 생얼느낌의 밋밋한 정도의 화장을 선호해서인지 눈길이 갔다. 그 정도 관심이 뭐라고 팔짱 끼고 빠른 속도로 내려가는 탓에 얼굴을 구경할 시간이 줄어 아쉬우면서 저러다 넘어지면 어쩌려고 그러나 염려하기까지 했다.


아까 한 추측도 틀렸다. 내릴 때 같이 일어섰던 사람들은 2층으로 향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셜록놀이는 그만해야겠다. 홀로 계단을 오르는 듯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강당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강당에 들어섰을 때 속으로 대사를 읊는다.

I know this place. 이 공간을 다 안다. 인턴 벤이 어바웃핏을 둘러보며 보인 여유로움 만큼 예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라뗴는 종이와 펜이었는데 지금은 디지털로 바뀌었더라. 계속 라뗴를 품은 채로 신분증을 꺼낸다.


9시가 되었다. 


출근러 같이 공부한다고 지겹던 나날 꿀 같은 휴식을 주지만 그렇다고 즐겁거나 설렐 리 없는 민방위훈련 1년 차 교육이 시작되었다.


사진: Unsplashkwan f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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