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좀 읽어줄래?] 책덕 직장인의 독후 에세이
<과식의 종말>은 내가 선호하는 장르의 책이었다. 주로 비문학, 팩트를 다루는 이런 종류의 책은 묘한 쾌감을 준다. 읽고 나면 마치 엄청난 지식을 알게 된 것 같은 착각을 준다. 하지만 책의 내용에 관한 기억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수많은 사례와 사실을 속속들이 기억하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런 초인은 아니기에 이번 책을 읽으며 기록으로 남겨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굉장히 어려웠다. 예전 같으면 한 번 완독하고 나서 "다 읽었다!"며 책을 덮어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요약하고 정리하고 내 생각을 그 위에 덧씌우기 위해서는 다 읽은 책도 여러 번이나 다시 읽어야 했다. 많은 시간과 수고가 들어갔지만 결과적으론 매우 만족한다. 한 번만 읽은 책은 마치 새것처럼 빳빳하지만, 여러 번 읽으면 표시하고 접어두고 내 손이 탄 모습의 책을 보면 내심 흐뭇하기까지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에게 더욱 특별하다.
<과식의 종말>은 직관적인 제목 그대로 과식하는 모든 사람들이 과식을 멈출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소개한다. 저자는 미국의 소아과 의사로서 자신이 연구하고 경험한 방대한 지식과 사례를 토대로 이 책을 지었다. 저자 자신의 논리를 말하기 위해 가져온 논리들은 모두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기 때문에 반박의 여지가 없을 만큼 탄탄하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식습관의 역사에 대해 돌아본 것은 어쩌면 가장 큰 성과이다. 풍요로운 현대 환경에서 나고 자란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 자연스럽게 과식을 했다. 우리네 부모님과 어른들은 어린 자식이 많이 먹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고 그걸 권장했다. 나 또한 눈앞에 놓인 음식은 지구가 두 쪽 나도 다 먹어야만 하는 줄로 알았고, 음식을 남기지 않으면 언제나 칭찬받았기에 먹을 수 있는 양보다 억지로 더 먹는 일이 흔했다. 하지만 그런 식사 뒤에는 소화되지 않는 불편함이 늘 따라다녔다. 이런 식습관은 내가 자의식이 생기기 전부터 만들어진 것이라 이상하다는 의심조차 하지 못했다. 음식을 조절하게 된 것은 성인이 되고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다행히 나는 비만이라기보다는 마른 체형이었기에 음식을 많이 먹는 것에 비해서 살이 쪄 보이진 않았다. 젊은 시절의 기초대사량 덕분이었을 것이다. 적당히 움직여도 알아서 살이 빠지는 기적의 시기가 지나자, 기초대사량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같은 양을 먹어도 더 소화하기 힘들었고 조금씩 체중도 증가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고기도 예전만큼 좋지 않았고, 입맛도 같이 변해갔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먹는 양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내 식습관이 어떻게 변해왔는가에 대해 이렇게 깊게 생각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건 자연스러운 변화였고 공들여 의식하지 않으면 알아채기 쉽지 않은 그런 종류이기 때문이다. 내가 음식을 어떻게 대해왔고 어떻게 먹어왔는지를 돌이켜보고 나니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훨씬 잘 인식할 수 있었다. 나에게 적당한 양의 음식이 어느 정도인지라거나 어떤 음식을 먹는 것이 좀 더 나에게 장기적으로, 궁극적으로 좋을 지에 대해 매일 접하는 음식을 보며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회사 구내식당에서 받는 음식의 양은 나에게는 필요 이상이었다. 밥은 받은 양보다 1/2 ~ 2/3 정도가 적당했고, 반찬도 굳이 다 먹지 않아도 충분한 포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여러 반찬 중 가장 맛있는 핵심 반찬, 주로 고기반찬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아도 되었다. 예전 같으면 그런 반찬은 꼭 하나를 더 받아 두 그릇씩 먹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조차 못 느낀다.
책의 내용이 단지 공허한 이론이 아니라 실제 나의 생활에도 영향을 미칠 만큼 도움이 된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만큼 이 책이 유용하고 또 누군가에겐 나처럼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가 비문학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성질 때문일 것이다. 과식에 대한 비밀을 알고 싶다면, 혹은 과식으로 고민하고 있다면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