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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우 Mar 21. 2019

잡아먹히는 펭귄을 지켜보았다.

안타까웠던 날의 기억.

조사지로 가는 길이었다. 해변을 걷고 있는데, 멀리서 도둑갈매기가 우는 소리에 바다를 쳐다보았다. 펭귄 서너마리가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오는 중이었다. 그냥 보기에 전혀 이상해 보이는 광경은 아니었다. 펭귄들은 얕아진 수심에서 등만 내놓고 헤엄을 치고, 꼬리를 흔들었다. 그중 한마리가 펭귄의 허리정도까지 차는 물에서 몸을 세우고 육지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와 함께간 일행들은 잠시 쉴겸 해안가의 바위에 걸터앉았다. 펭귄과 우리의 거리는 30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가만히 앉아 뭍으로 올라오는 펭귄을 지켜보았다. 쌍안경으로 보니 올해 막 털갈이를 마친 젠투펭귄이었다. 그런데 그 어린 펭귄의 바로 앞 작은 바위에는 도둑갈매기 두마리가 가만히 물에서 올라오는 펭귄을 지켜보고 있었다. 도둑갈매기는 주로 펭귄의 알과 어린 새끼를 잡아먹고, 다 큰 새끼를 잡아먹는 모습은 보지 못했었다. 털갈이를 마친 펭귄은 날개가 단단해지고, 도둑갈매기보다 오히려 몸무게가 많이 나가기 때문에 도둑갈매기 입장에서 함부로 덤벼들기 어려운 상대일 것이다. 자칫 덤볐다가 그 단단한 날개에 얻어맞기라도 하면 가벼운 도둑갈매기가 오히려 부상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은 2월 중순. 젠투펭귄의 새끼들은 대부분 털갈이를 마치고 일부는 바닷가에 내려가 물놀이를 하고 있는 시기이다. 빠른 녀석들은 어미를 따라 바다로 나가 헤엄치는 연습을 하고, 가까운 육지로 올라오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아직 수영에 익숙하지 않은 새끼 펭귄들이 어미처럼 능숙하게 헤엄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뭍으로 올라오는 녀석들도 수영 연습을 하다 올라오는 것처럼 보였다. 어찌보면 전혀 이상해보이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다음순간, 도둑갈매기 두마리가 뭍으로 거의 올라온 펭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상한건 펭귄도 반격을 할법 한데,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무차별적으로 도둑갈매기 두마리에게 쪼임을 당하는 것이다. 도둑갈매기가 다 자란 펭귄을 공격하는 모습도 흔치 않거니와 전혀 무저항의 펭귄을 보는 것도 흔하지 않다. 설마 펭귄 새끼가 도둑갈매기에게 잡혀먹히지는 않을 거라고 쉽사리 판단해 버렸다. 같이 뭍으로 오르던 다른 새끼 펭귄들은 놀라 바다로 돌아갔고, 홀로 서있던 펭귄만 공격을 당하는데, 바로 돌아서 물로 들어가버리면 될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새끼펭귄은 그저 도둑갈매기의 공격을 받아들이고만 있었다. 

설마설마 하던 사이 공격을 당하던 펭귄이 바닥에 몸을 뉘였고, 두마리의 도둑갈매기는 펭귄의 배 부위를 잡고 순간적으로 찢어버렸다. 아....지켜보던 우리도 말문이 막혔다. 방금까지 헤엄을 치다 올라온 펭귄은 손 쓸 세도 없이 도둑갈매기에게 산채로 내장을 뺏겨버렸다. 그 기막힌 상황에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펭귄은 아마도 바다에서 에너지를 다 써버려 저항할 힘이 없었던 모양이다. 충격적인 장면에 우리 또한 말을 잇지 못하고 한참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연에서 벌어지는 말 그대로 자연적인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눈앞에서 벌어진 기막힌 상황에 펭귄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어미펭귄들은 새끼를 키우기 위해 추운 남극에서 한달 넘게 알을 품고, 도둑갈매기들을 상대하고, 수십일동안 바다에 나가 먹이를 물어다 새끼를 키워 간신히 바다로 내보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잃을 수는 없는 일이다. 조금만 우리가 상황을 빨리 이해하고 달려갔다면 어쩌면 펭귄을 살릴수 있었을 지도 몰랐을 거라는 뒤늦은 후회만 남았다. 두마리의 도둑갈매기에게 펭귄이 잡아 먹히는 모습을...후회속에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생명의 귀천이 어딨고, 도둑갈매기도 새끼를 키우고 있는 부모새이며, 먹이가 부족한 남극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자위하기엔 이미 펭귄에 감정이입해버린 마음이 달래지지 않았다. 

남극에서 펭귄을 관찰하다보면 무수히 많은 죽음을 보게된다. 평균 하루 한마리이상의 펭귄들이 바다를 오가는 도중 기다리고 있는 표범물범의 먹이가 된다. 영악한 표범물범은 펭귄들이 바다에 뛰어드는 곳의 절벽 뒤에서 몰래 기다리고 있다가 지나가는 펭귄을 붙잡아 공중에 던지며 찢어 먹었다. 지켜보기 어려운 장면들이 매일 펭귄마을에서 펼쳐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광경은 내 마음에 깊숙히 남아 벌써 몇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간혹 죄책감에 빠지게 한다. 소리라도 한번 질러봤으면,,,우리가 조금만 더 펭귄에게 가까이 갔다면 어쩌면 도둑갈매기는 날아가고 펭귄도 안전하게 바다로 가거나, 뭍으로 올라오지 않았을까.. 

털갈이를 마친 새끼 젠투펭귄들이 바닷가에 모여있다. 왼쪽 홀로 서있는 펭귄은 성체이다. 누워있는 새끼들은 등의 색깔이 어미보다 옅어 구별이 가능하다. 
아직 털갈이를 마치지 않은 젠투펭귄이 바닥에 누워 자고있다. 솜털이 물에 젖었다. 털갈이를 하고나면 방수깃털이 나와 물에 잘 젖지 않는다.
털갈이를 마친 펭귄들은 물 웅덩이에서 자맥질을 하며 논다. 바다로 나갈날이 다가오고 있다.
올해 털갈이를 마친 새끼는 등의 색깔이 푸른빛을 띈다. 완전 검은색인 어미펭귄들과 구별이 된다.
펭귄마을의 언덕에서 펭귄 새끼들을 노리는 갈색도둑갈매기.
남극도둑갈매기 두마리가 해안가에서 서성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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