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21 남극 캠프 일기
황제펭귄의 번식지가 있는 쿨만섬(Coulman Island)에 다녀왔다. 장보고기지가 위치한 로스해의 황제펭귄 번식지 중 규모가 가장 큰 곳이다. 매년 최대 3만마리의 새끼 황제펭귄이 이곳에서 자라 바다로 떠난다. 작년에 이곳에서 황제펭귄 새끼개체수를 세어보니 2만마리가 안되었다. 번식하는 개체수가 줄어든 것인지, 작년의 바다 상황이 좋지 않아 번식성공률이 감소한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몇 년 더 자료가 확보되면, 이곳 황제펭귄 번식개체군의 경향이 나타날 것이다. 장보고기지와 가까운 황제펭귄 번식지인 케이프워싱턴(Cape Washington)도 최대 2만5천마리의 새끼가 관찰되던 지역이었으나, 우리팀의 조사결과 작년에는 일만이천마리 정도 밖에는 확인되지 않았다. 앞으로 이 두 지역에서의 황제펭귄 개체수 연구는 로스해 황제펭귄 연구를 위한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당초 오늘은 케이프할렛 캠프를 가기로 예정된 날이었지만, 함께 출발해야 할 뉴질랜드 연구팀의 입남극이 하루 지연되어 시간을 벌었다. 그 시간에 이곳 쿨만섬의 황제펭귄 모니터링을 다녀올 수 있었다. 장보고 기지에서는 헬기로 약 한시간 거리지만, 중간에 헬기에 급유를 해야해서 한시간 반 정도를 날아 쿨만섬에 도착했다. 황제펭귄 새끼들의 사체를 채집하고, 먹이원 분석을 위한 배설물을 채집했다. 황제펭귄은 이곳에 4월쯤 돌아와 5월부터 산란을 시작해 7~8월경 새끼가 부화한다. 부화 후 약 3개월이 지난 지금은 새끼들이 많이 자라 한달정도면 털갈이를 시작할 것이다. 그 사이에 바다로 먹이를 구하러 나간 어미가 돌아오지 않거나, 추위를 견디지 못한 많은 새끼들이 죽어 있었다. 11월중순이 되면 황제펭귄 번식지에 도둑갈매기가 날아든다. 죽어있는 새끼의 사체를 먹기 위해서다. 따라서 더 늦으면 깨끗한 사체를 얻을 수가 없다. 다행히 아직은 도둑갈매기가 많지 않아 깨끗한 사체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사체들은 중금속과 같은 오염물질, 기생충 등의 연구에 활용될 예정이다.
돌아보던 도중 번식지의 한복판에 황제펭귄 성체의 사체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벌써 도둑갈매기가 많이 쪼아 가슴 부위 위로는 뼈가 거의 드러났다. 장보고기지에 4번째 방문이지만 번식지에서 성체의 사체를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녀석은 왜 죽었을까. 제 수명을 다 마치고 죽었을까. 하지만 야생에서 제 수명을 다 사는 동물은 많지 않다. 나이가 들어 몸이 약해져 있다면 바다에 나갔을 때 표범물범과 같은 포식자를 피해 달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굶어 죽었을까? 펭귄은 굶는 일이 일상이기 때문에 굶어 죽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아마도 번식을 위해 찾아온 녀석은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몸이 약해져 있었고 혹한의 남극 겨울을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야생에서 죽음은 언제나 가까이 있지만, 번식지에서 스러져 가고있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펭귄의 사체를 보고 있자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새끼는 어떻게 되었을까. 새끼를 가지고 있는 개체였다면 새끼도 추위와 배고픔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번식기간에 성체의 죽음은 혼자만의 죽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다얼음(해빙)위에 위치한 이곳 번식지는 앞으로 짧으면 한달(12월), 늦어도 두달(1월) 이내에 녹아서 떨어져 나간다. 그 때가 되면 펭귄들도 더 이상 이곳에 머물지 못하고 바다로 나가야 한다. 11월 중순이 넘어가면서 번식지에는 도둑갈매기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도둑갈매기에게 이 성체의 사체는 먹이로서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아직 새끼 사체가 곳곳에 많이 남아있지만, 이 성체 사체가 유독 많이 뜯어 먹힌 것은 크기가 커서 도둑갈매기에게 눈에 띄기 쉬웠을 것이며, 먹을것도 가장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남극에서는 먹을것이 귀하다. 극한 환경에서 번식하는 황제펭귄들 중 일부는 죽을 수밖에 없고, 그 사체들은 도둑갈매기의 먹이가 되어 도둑갈매기 새끼들을 키워낸다. 바다 얼음이 녹아 없어지기 전까지 도둑갈매기들은 황제펭귄 사체들을 쪼아서 새끼들을 키워낼 것이다.
남극에서 수많은 죽음들을 목격하고 있다. 기온이 낮고, 건조해 사체들은 거의 썩지 않고 말라 미라가 된다. 때문에 죽은지 얼마 되지 않은 사체부터, 언제 죽었는지 모르는 사체까지 펭귄의 번식지에는 수많은 주검들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 사는 동물들은 그 죽음들을 전혀 개의치 않고 어떤 동물들은 그 사체를 이용해 자기의 새끼들을 길러내고, 어떤 사체는 번식지의 일부가 되어 다른 후손들의 둥지재료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 살아있는 동물들도 언제가 될지 모르는 가까운 미래에 마찬가지로 그렇게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다.
황제펭귄 사체의 부리에는 여전히 살아생전의 화려했던 보랏빛 색깔이 남아있었다. 이곳에서 태어나 바다에 나가 무서운 포식자들을 피해 어른이 되어 한때 드넓은 남극바다를 누비고, 영하 40도 이하의 혹한을 견디며 새끼를 키워냈던 한 마리의 펭귄은 지금 번식지의 한복판에서 다른 남극 생물의 먹이원이 되어 흩어지고 있다. 비단, 남극 뿐 아니라 어느곳에든 적용되는 자연의 법칙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