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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우 Aug 04. 2019

펭귄은 용감하지 않다.

퍼스트펭귄의 오해.

아델리펭귄들이 바닷가 끝 얼음 위에 모여들었다. 처음에는 몇 마리가 안되었는데, 계속해서 펭귄들이 모여들더니 백 마리를 훌쩍 넘겨 큰 무리가 되었다. 모두들 바다 방향을 보며 두리번거리고, 앞선 펭귄이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용감한 한 마리가 뛰어들면 다른 녀석들도 같이 뛰어들 것이다. 그러나, 맨 앞에 있던 펭귄은 어찌 된 영문인지 뛰어들지 않고, 주춤주춤 물러서더니 결국 뒤돌아서 무리의 맨 끝으로 돌아갔다. 어부지리로 맨 앞에 서게 된 펭귄. 뒤에서는 자꾸자꾸 밀면서 뛰어들기를 강요하고, 바닷가의 끝까지 밀린 녀석은 또 뒤로 도망가 버렸다. 이게 어찌 된 영문일까? 용감한 퍼스트펭귄이  나서서 뛰어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 무리에는 용감한 퍼스트펭귄이 없는 것일까?


<용감함은 목숨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비겁할지언정 오래 사는 게 낫다. 자연에서 실수 또는 운이 나쁨은 단순히 그것에서 끝나지 않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바다에는 표범물범이 펭귄을 기다리고 있다. 표범물범은 펭귄이 다니는 길목에 숨어 펭귄들이 바다에 뛰어들기를 기다렸다가 쫒아 가 잡는다. 새끼를 키우고 있는 펭귄에게 죽음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자신이 죽으면 둥지에서 먹이를 기다리고 있는 새끼들의 죽음이 뒤따른다. 펭귄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먼저 뛰어드는 펭귄은 그만큼 포식자에 노출될 확률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무리의 규모 또한 중요하다. 소규모로 뛰어들면 내가 잡혀 먹힐 확률이 증가한다. 무리의 규모가 커질수록 내가 잡혀 먹힐 확률은 감소한다. 자연계에서 대부분의 약한 동물들이 취하는 방어 전략인 희석효과이다. 말 그대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자연에서는 중요한 원리이다. 또한, 무리가 커질수록 바다를 감시하는 눈도 많아진다. 포식자의 출현을 더 빨리 알아채고 대비할 수 있다. 그렇다면 누가 먼저 뛰어 들것인가? 내가 바닷가에서 지켜본 지 수십 분이 지났지만, 먼저 뛰어드는 펭귄이 없었다. 결국 마음이 급한 펭귄 한 마리가 바다로 뛰어들었다. 먹이를 보채는 새끼들을 생각하면 이렇게 계속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다른 펭귄이 뛰어들기만을 바라 온 모든 겁쟁이 펭귄들이 늦을세라 뒤따라 바다로 뛰어들었다. 멀찍이 무리에 합류 중이던 펭귄들도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달려와 바다로 뛰어드는 무리의 뒷부분에 합류했다. 바다에서 펭귄들은 번식지 앞바다를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점프하며 멀어져 갔다. 다행히 표범물범에게 잡힌 개체는 없었다. 해안가에는 또다시 바다로 가기 위한 펭귄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큰 무리가 형성될 때까지.. 그리고 그중 한 마리가 뛰어들 때까지 겁쟁이들 사이의 눈치싸움이 다시 시작되었다.

표범물범. 펭귄번식지 앞바다에서 지나가는 펭귄을 잡아먹기위해 기다리고 있다.


펭귄들은 매일 바다를 오가며 목숨을 건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서는 위험한 바다에 뛰어들어야 한다. 번식지에 많은 수가 모여 살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포식자에 공동으로 대항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포식자의 관심을 받아 불러 모으는 단점도 있다. 거의 모든 펭귄 번식지 앞에는 표범물범들이 바다를 오가는 펭귄들을 기다리고 있다. 표범물범은 하루 최대 40마리가 넘는 아델리펭귄을 포식한 기록이 있다. 펭귄들에게는 저승사자와 같다. 표범물범 뿐 만 아니라 때로는 범고래와 같은 더 큰 포식자도 나타나며, 웨델 물범 같은 비교적 온순한 동물도 기회적으로 펭귄을 잡아먹는다.

황제펭귄의 번식지 앞에도 언제나 표범물범이 대기 중이다. 덩치가 큰 황제펭귄도 표범물범에게 대항할 정도는 아니다. 이곳에서도 아델리펭귄 번식지와 마찬가지로 눈치보기가 이어진다. 다른 펭귄이 뛰어들기 전에는 절대로 먼저 뛰어들지 않겠다고 정한 황제펭귄들이 앞선 펭귄을 몸으로 밀며 기다린다. 도저히 뛰어들 마음이 없는 무리에서는 뒤에 서있던 펭귄들이 다른 무리로 이동했다. 먼저 뛰어들어줄 펭귄을 찾아 바닷가에서는 펭귄들의 눈치작전이 계속해서 벌어졌다. 보다 못한 아델리펭귄 한 마리가 바다에 뛰어들었다. 이때다 싶은 황제펭귄들이 뒤따라  모두 바다로 뛰어들었다. 목숨이 걸린 일에 자존심은 사치다. 내가 펭귄이라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누군들 포식자가 기다리는 바다에 먼저 뛰어들고 싶을까. 게다가 매일 많은 수의 펭귄들은 표범물범에게 희생되고 있는 현실에서..

해안가 바다얼음에 모여든 아델리펭귄들. 앞선개체가 먼저 뛰어들기를 기다린다.
바다를 바라보는 아델리펭귄들. 바다 어디에 표범물범이 숨어있을지 모른다. 펭귄에게도 바다를 오가는 일은 목숨을 걸어야하는 일이다.  
황제펭귄들도 바다에 뛰어들기를 주저한다.
다른 펭귄이 뛰어들기를 기다리다보니, 무리가 점점 커졌다.
한마리가 뛰어들자 모든 황제펭귄들이 뒤따라 바다로 뛰어들었다. (사진:서명호)
바다얼음 아래 숨어있던 펭귄포식자. 표범물범이 얼음으로 뛰어 올라왔다. 펭귄의 최대 포식자이다. (사진:서명호)
또다른 포식자인 범고래 무리가 나타났다. 범고래는 남극 최상위 포식자이다. 주로 물범을 먹지만, 펭귄을 잡아먹기도 한다. (사진 : 서명호)


아델리펭귄 한마리가 바다에 뛰어들자, 황제펭귄들이 뒤따라 바다에 뛰어들었다.
바다에 뛰어든 황제펭귄들이 무리를 이루었다. 곧 먼바다로 먹이를 구하러 출발할 것이다.




펭귄의 사진과 영상을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antarctica_adelie_penguin/

트위터 : https://twitter.com/jinwoojung81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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