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에는 생일파티를 떠들썩하게 하는 것을 좋아했다. 선후배, 동기, 친구 가릴 것 없이 일주일 내내 어울려 생일파티를 했고, 회사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도 예전만큼의 규모는 아니지만 친한 친구들을 불러 한껏 축하를 받았다. 그리고 꼭 그때만큼은 연차를 써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려 했다. 주로 영화관을 가거나, 영화를 보거나, 영화를 볼 생각을 하거나... 영화 참 좋아한다. 때가 맞아서 여행을 간 적도 있었고, 벚꽃이 흩날리는 봄 날씨를 만끽한 적도 있었고, 맛난 음식에 술을 마시는 것도 늘 포함되었던 것 같다.
예전부터 생일은 'self care 하는 날!'이라는 생각으로 온전히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멋대로 군 적도 있었다. '내 생일인데?'라는 생각으로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고, 특히 감정적으로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 감정을 앞에 세웠다. 심지어 먹을 것을 골라도 내 맘대로! (이건 아직도 그럴지도..?) 30대 중반 후 결혼을 하고서는 가장 친한 친구라 할 수 있는 아내와 생일을 보내게 되었다는 것이 달라진 점이지만 뭔가 특별한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는 큰 변화가 없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도 오마카세를 가긴 했다.
올해는 생일 바로 전날 회사동료분의 부친상에 다녀왔다. 동백꽃이 유명하다는 가로등도 잘 없는 시골 동네에 도착하니 정말 옛날식 장례식장이 있었다. 당연스레 전기차 충전기가 없는 주차장이라 난감했었던 그곳엔 80을 넘기신 고인을 그의 아들딸과 그들의 배우자들, 또 자녀들이 모시고 있었다. 왕복 대여섯 시간을 깜깜한 도로를 달리며 '꼭 생일은 집에서 맞이하고 싶다'라고 생각했는데 마침 생일날 정각에 집에 도착하여 감사하고도 차분한 마음으로 잠들었다.
그러다 보니 올해 생일은 유독 차분하게 보낸 것 같다. 경건함까지는 아니더라도 생일을 단순히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것이 아닌 더 잘 사는 내가 되기 위한 하나의 기점을 지난다는 마음으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생일을 통해 삶이 시작되었다면 언젠가 사람은 죽는다. 그리고 그날은 대체로 알 수가 없기에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잘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더 좋은 사람, 더 멋진 사람으로 살면 잘 사는 것 아닐까. 그리고 행복에 다다르기 위해 삶을 살아가면 더 잘 사는 것이 아닐지. 그렇다면 역시 행복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인 '관계', 즉 소중한 인연들을 잘 챙기고 관계에서 있어서도 선택과 집중을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소중한 인연들과 보낸 그날이 내 삶의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다. 이대로 죽으면 죽어서도 후회할만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아야지.
최근 읽은 책 <시대예보 : 핵개인의 시대>에 머리를 띵하게 울리는 문구가 있었다.
모든 것은 '나이 듦'의 문제가 아니라 혹시 나의 문제가 아닐까 고민해 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멋지게 나이 든다'라는 이야기는 좀 다르게 해석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멋지게 나이 드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멋진 사람이 나이가 든 것'입니다.
사실 생일인데 그냥 휴가를 취소하고 출근을 해서 억지로 차분해진 것인지 조문을 다녀와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번 생일에 생각한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