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기독교 집안이라 할 수 있다.
친척들이 모두 목사고 전도사고, 선교 활동하러 외국에 가있고 그렇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랑 엄마는 교회를 안 간다. 나도 한때는 다시 청년부에 갔지만, 목사님이 이동하시고 나니 다시 뜸해졌다.
그런데 나는 또 중•고등학교를 불교 학교를 나왔다.
내가 중3이었을 때, 마지막 연합고사 세대이다. 당시에 동네에 있던 집과 가까운 고등학교에 붙었고,
다니던 중학교 바로 옆이었다.
둘 다 스님이 지으신 불교 학교라 일주일에 한 번 법회도 하고 불교 과목도 배우고 그랬다.
아직도 반야심경 욀 수 있는 게 재밌다.
교가는 아니었지만.. 교가는 기억도 안 나는데 반야심경은 기억나는 게 신기하다.
어쨌든 지금의 요가라는 직업, 이론 그리고 내 생각과 불교는 밀접한 연관이 있고, 나는 그게 싫지 않다.
절에서 좀 더 편안함을 느끼기에 여행지에서 절에 간 적도 필수는 아니었지만 몇 번 있었다.
몇 주 전 진철 씨랑 성북동에 갔을 때 길상사에 갔다. 서울에 절은 별로 가본 적이 없어서 가고 싶다고 했다.
그곳이 법정 스님이 창건하고 입적한 공간이란 거 그날 알았다.
스님의 자취도 느끼고 종소리도 듣고 그랬다.
그러다 어제 다시 길상사 생각이 났다. 사진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행복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와 처음으로 읽어보았다.
당시 구입하고서는 무소유 샀어야 하는데 잘못 샀다고 보관만 하고 있었는데, 지금이 내가 이 책을 볼 때였나 보다.
모든 것들에는 때가 있다.
지금 이 책을 읽고 이 페이지를 본 것은 내가 이 책을 만나고 귀 기울일 때가 온 것이다.
같은 책을 보아도, 내가 왜 여기에 밑줄을 그었지? 할 때가 종종 있다.
때로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던 글귀가 들어오기도 한다.
영화나, 강연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말을 듣더라도, 나의 때가 아니면 그저 소귀에 경 읽기이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