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아픔을 기록하고 먹을걸 기록하고 수련을 기록했던 날들이 있었다.
매트위에서 아픈몸을 끌어가며 앞으로 숙이는 동작조차 되지않아 울면서 다시 집으로 오고.
그래도 다음날 또가서 울면서 수련하고..
워크샵이란 워크샵은 전부 찾아 다니기도 하고..
어느날 수련 신나게 하고와서는 일상에서 애들한테 버럭 화를 내는 나를 보고 띵.. 한 느낌이 들었고
이게 맞는 것인가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던 요가가 이런 것이었나, 그전에는 지금보다 동작을 못해도 하루가 평온했던 거 같은데.....
곰곰이 생각에 잠긴 나는 스스로를 괴롭히던 것들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후로 나에게 맞는 길을 찾았고 지금도 계속 찾아가는 중이다. 다쳐가며 했던 때도 역시 소중한 자산이며, 역사의 시간들이다.
어떤 회원은 내게 말했다. 샘은 해볼때까지 다해보고 끝까지 가봤으니까 미련이 없는것 아니냐고.
글쎄, 나라고 미련이 없겠냐만은. 하지만 그게 전부인건 아니다. 미련에 매여서는 현재에 있을수 없다.
자기만의 길을 가는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며
그길이 무엇이든 믿음과 확신을 가지는것이 가장 힘든 일이다.
휘둘리더라도 스스로를 다시 믿고 정진하는 것.
그게 바로 수행이 아닐까..?
개개인의 길은 모두 고유하다. 그치만.. 누군가 고통을 견디고 수련하고 있는것에 의문이 생긴다면, 혹은 비건을 해야 하는데 나만 왜이럴까 하고 패배감이나 자책을 하고있다면, 자책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나또한 다들 참으면서 고행하는데 왜 나만 이렇지 하고 패배감을 느꼈었다. 하지만 몸적인 수련만으로 수행이 끝이라 한다면 세상에 절반은 성자일 것이다.
우리는 저물어 간다. 나는 100세 시대라는 지금에 절반도 못미치는 50까지 산다해도, 먹을꺼 기록하며 체중재고 오늘 동작 안됐다고 스스로 자책하고 살고싶지는 않았을 뿐이다. 그것은 내가 바라는 수행이 아니었을 뿐이다.
이렇게 저렇게 요렇게도 해보고 조렇게도 해본다.
억지로 하지 않아도 분명 마음에서 강하게 이끌리는 것들이 생긴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보고 그런다. 그러다 보면 뚜렷해지는게 있을 것이다. 조용히 침잠해보는 날도 온다. 조금씩 스스로 좋아하는것과 원하는 것의 교집합점을 찾고 그길로 가본다. 스스로를 좀더 믿어도 좋을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농담처럼 진담섞어 말하자면 특히 스스로의 길을 찾을때 중요한건 남들이 하지말라는걸 더 해야한다는 것이다.ㅎㅎ
그리고 그 길도 중간에 돌수도 있는거 아닌가? 언제나 시속 60킬로의 포장도로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때로는 비포장길도, 유턴도 할 수 있고. 30킬로로 갈 수도 있다. 요가말고 뭔들 아니그러겠냐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