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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루틴 Jul 11. 2023

아, 그래서 그랬구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고



# 전이


"커스틴의 아버지는 일곱 살 그녀를 두고 떠난다. 경고나 설명 한마디 없이 집을 걸어 나간다. 떠나기 바로 전날 밤에 그는 거실 바닥에서 낙타가 되어 등에 그녀를 태우고 소파와 안락의자 주변을 돌아다닌다. 잠잘 시간에는 독일 전래 동화책에서 외로운 아이들과 사악한 계모, 마법, 상실에 관한 이야기를 읽어준다. 그러고는 사라져버린다.


다양한 반응이 있을 수 있다. 그녀의 반응은 느끼지 않는 것이다. 감당이 안 된다. 그녀는 잘 해나고 있고, 어쨌든 학교 선생님들, 두 이모, 한동안 만났던 상담사를 비롯해 모든 사람도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내적으로는 전혀 대처하지 못한다.


운다는 것에는 어느 정도의 강인함, 결국 눈물을 멈출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그녀에겐 작은 슬픔이라도 느끼는 것 자체가 사치다. 그녀는 다 부서지고 나면 다시 조각들을 어떻게 짜 맞추어야 할지 영영 모를 수도 있다는 위험에 처해 있다. (...) 이제 그녀는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을 하긴 하지만, 자신이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것만은 도저히 허락하지 못한다. "


<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중에서 >



아 .. 그래서 그랬구나 -



나는 사실 구분하자면 "잘 우는 사람" 축에 속하는 인간이었다.

눈물의 이유는 다양했는데, 슬픈 이야기, 영화, 섭섭한 일, 보기에 짠한 류의 모든 일

오죽하면 학창시절 열렬한 기독교 신자였던 남자친구는 나에게 "긍휼의 은사"가 있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눈물에 인색해졌다.

슬픈 영화는 사전에 걸렀다. 

드라마나 시리즈물을 정주행하다가도 슬픈 스토리가 나오면 이내 미련없이 뒤돌아섰다.

예기치 못한 불의의 타격으로 슬픈 스토리에 직면하게 될 때도 있다. 

그럴땐 머릿속으로 그 스토리와 현실간에 "거리두기"를 시전했다.


그리고 섭섭한 일도 가급적 만들지 않도록 노력했다. 섭섭해지려고 하면 이내 "냉철한 마음먹기"에 시동을 건다. 현실적으로 사안을 바라보고 손절할 부분은 빠르게 손절한다. 


왜 내가 "슬픔을 느끼는 것"을 이토록 지양하게 되었는가


역설적이게도 내게 "깊은 슬픔의 늪"이 생겨버린 이후와 맞물려 있는 것 같다.


깊은 슬픔의 늪


이것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

우울 버튼 같은 것이 있어서 그 버튼이 자의든 타의든 눌려지기만 하면 나는 속절없이 침잠한다.

그 침잠 속에서도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그 이유를 바로 이 책을 읽다가 알아 버린 것이다.


그 '어느 정도의 강인함' 

결국 눈물을 그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부재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냥 울어버리면 어떨까?

그냥 울어버릴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가끔은 이성을 비집고 눈물이 나와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울어버리기엔 그렇게 감정을 다 드러내버리기엔 용기가 부족하다.





# 미래


"완벽한 행복은 아마 한 번에 5분이 채 넘지 않을, 작고 점진적인 단위들로만 찾아온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이 순간은 두 손으로 붙잡아 소중히 간직해야 할 행복이다. 


불확실성을 의식하는 만큼 라비는 더욱 열렬히 이 햇살을 붙잡아두고 싶다. 비록 잠깐 동안이지만 모든 것이 명료하다. 그는 커스틴을 사랑하고, 그 자신을 충분히 신뢰하고, 아이들을 어여삐 여기고 인내하는 법을 알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절망스러울 정도로 허약하다. 그는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라 부를 권리가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단지 잠깐 동안 만족을 누리고 있는 평범한 인간일 뿐.


그는 이제 거의 어떤 것도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처럼 완전히 평범한 인생을 사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모든 것을 유지하고, 거의 정상인이라는 지위를 계속 확보하고,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결혼 생활을 지속하면서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 그의 제한된 영역 안에서도 용기가 필요하다."


<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중에서 >


그래, 미래라는 것도 그렇게 거창하게 그릴 필요가 없는 것 같다.


결국 미래라는 것은 애초에 내가 염려하고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짐이다.



오늘 하루를 평범한 인간, 평범한 가족으로 살아냈다는 것에만 집중하자.


아이들과 함께하는 순간은 매일이 아주 충만한 짧은 순간들의 연속이다.

그 시간에 집중하자.


그 어떤 삶도 완벽하게 보장된 삶은 없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 

나만 유독 그런 불확실성에 노출된 것 뿐, 잠재된 불확실성이란 인간 모두에게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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