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WITH YOU] 북극이 위험하다
2015년 8~9월, 한 달 동안 북극을 취재했습니다. 우리나라 쇄빙선 아라온(ARAON) 호가 북극에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당시 북극 하늘에 오로라(Aurora)가 펼쳐졌습니다. 2015년 8월 25일 알래스카 배로(Barrow)에서 출항한 이후 긴 항해와 탐사를 마치고 알래스카 놈(Nome)에 돌아온 아라온 호를 반겨주는 것이었을까요. 현지시각으로 2015년 9월 9일 늦은 밤,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이 아라온 호 선상 위 하늘을 수놓았습니다.
아라온 호는 당시 알래스카 놈(Nome)에 도착했습니다. 연구원들과 승조원들은 태운 아라온 호는 아무런 사고 없이 네 곳의 연구지점 등에서 모든 탐험을 끝내고 안전하게 놈에 입항했습니다. 9일 밤 11시쯤 선실에서 쉬고 있는 연구원들에게 안내방송이 갑자기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선교에서 “지금 오로라가 펼쳐지고 있으니 바깥으로 나오면 관측이 가능하다”는 메시지였습니다.
승조원과 연구원들은 5층 선교로 모두 모였습니다. 선실 문을 열고 나섰는데 하늘은 온통 녹색 빛이었습니다. 짙은 녹색이 긴 꼬리를 흔들며 나아가고 희뿌옇게 옅은 녹색이 온 하늘을 덮고 있었습니다. 자연이 주는 선물이자 북극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었습니다. 이리저리 휘날리며 녹색 빛이 하늘을 가득 채웠습니다. 저 멀리 놈(Nome) 시내에서는 간간이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낮은 파도 소리가 더해져 자연이 만든 아름다움으로 취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몰려오는 피곤도 잊은 채 많은 사람이 하늘로 고개를 고정시켰습니다. 오로라는 태양풍과 지구 자기장의 상호 작용으로 발생하는 자연 현상입니다. 매년 9월 말에 알래스카 등 북극에서 자주 발생합니다.
“메뚜기 한 마리가 지구를 파괴할 수 있는지요? 나비 한 마리 날갯짓이 지구에 폭풍을 만든다는데 진짜입니까?”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메뚜기 한 마리가 지구를 파괴할 수 있습니다. 동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사막 메뚜기떼가 인도와 파키스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중국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 시작은 메뚜기 한 마리에서 시작됐습니다.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으로 지구에 폭풍이 몰아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작은 날갯짓인데 이 날갯짓이 점점 주변에 영향을 끼쳐 큰 폭풍이 발생합니다.
지구에 사는 우리는 지금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길을 잃고 있습니다. 정보는 많은데 그 정보를 너무나 쉽게 사용하고 배설해 버립니다. 정보를 만드는 사람도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만들어진 정보를 아무 생각 없이 소비해 버리기 일쑤입니다. 깊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훑어보는 것에 불과합니다.
북극 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북극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극 변화는 북극에 국한되는 것이지 우리와 무슨 상관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이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북극에서 아무도 관심 없는 ‘날갯짓’이 시작됐습니다. 보기에 따라 매우 작은 날갯짓입니다. 이 날갯짓이 점점 저위도 지역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북극에서 시작된 날갯짓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북반구 저위도 지역엔 인간이 감히 막아낼 수 없는 최악의 폭풍, 최악의 ‘메뚜기 떼’가 될 수 있습니다.
메뚜기 한 마리가 지구를 파괴할 수 있습니다. 실제 지구에서 지금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동아프리카는 2019년 습한 기온이 이어졌습니다. 다른 해 같으면 비가 오지 않는 날이 이어져야 하는데 올해는 달랐습니다. 동아프리카에 비가 자주 내렸습니다. 이때 사막 메뚜기 한 마리가 깨어났습니다. 자기가 아주 좋아하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죠. 이 메뚜기는 습한 기온에 먹이가 풍부해 빠르게 성충으로 자랐습니다. 한 마리의 메뚜기에서 2세가 태어났습니다. 이어 또 다른 3, 4, 5, 6, 7세… 메뚜기가 탄생합니다.
이들은 마침내 ‘메뚜기 떼’를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1~2마리가 특정 지역에서 먹이 활동을 할 때는 문제가 없습니다. 점점 늘어나는 메뚜기들은 먹이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합니다. 이동해야 합니다. 먹이 활동을 위해서 말이죠. 때마침 인도양에서 발생한 사이클론도 메뚜기떼들 이동에 매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줬습니다. 지구는 공전하고 있고 적당한 비가 내렸고 바람이 메뚜기 이동을 도왔습니다. 동아프리카에서 시작된 한 마리의 메뚜기는 마침내 거대 ‘군단’을 만들었고 바람 등을 통해 인도와 파키스탄으로까지 이동했습니다. 물론 이동 과정에서 해당 지역 농작물과 농장은 ‘쑥대밭’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르웨이 스발바르(Svalbard) 군도의 롱위에아르뷔엔(Longyearbyen) 지역. 2020년 7월 25일 기온이 섭씨 21.7도에 이르렀습니다. 롱위에아르뷔엔은 북위 78도에 있는 곳입니다. 사람이 사는 최북단 마을입니다. 노르웨이 기상청은 당시 “롱위에아르뷔엔의 그동안 7월 평균기온은 섭씨 5.9도에 불과했다”며 “2020년 7월 25일 기록된 21.7도는 롱위에아르뷔엔에서 새로운 기록을 세운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북극이 일촉즉발 위기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비정상적이고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는 시베리아 고온 현상, 전례 없는 북극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산불. 이 때문에 뿜어져 나오는 탄소 배출 등 북극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오래전부터 빠르게 녹고 있는 해빙(바다 얼음)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2020년 시베리아 지역의 평균온도만 보더라도 심각함을 알 수 있습니다. 2020년 1~6월까지 시베리아는 그동안 평균기온보다 섭씨 5도 이상 높았습니다. 특히 6월에는 평균기온보다 10도 높은 기온을 보였습니다. 2020년 6월 20일 시베리아 베르호얀스크에서는 무려 섭씨 38도를 기록하는 등 이상 고온 현상이 이어졌습니다. 2020년 7월 19일 시베리아 일부 지역 온도는 30도에 이를 정도로 고온 현상이 지속했습니다.
매우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는 이번 북극 지역 고온 현상을 두고 전문가들은 두 가지에서 원인을 찾았습니다. 하나는 거대한 ‘차단압력 시스템’이고 두 번째는 북서쪽으로 요동치는 ‘제트 기류’에 원인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 때문에 북극 지역에 따뜻한 공기가 흘러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원인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 전문가들은 ‘인간 활동으로 비롯된 기후변화’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진단합니다.
페테리 탈라스 세계기상기구(WMO) 사무총장은 “북극의 지구 가열화(Heating)에 따른 흐름은 다른 지역보다 두 배 이상 빠르게 일어나고 있는 곳”이라며 “북극에 사는 주민과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전 지구촌에 재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북극 변화는 북극에 국한되는 게 아니다”라며 “북극이 빠르게 변하면 이는 북반구 다른 지역(우리나라를 포함한 저위도 지역)에 날씨와 기후 조건에 영향을 끼치고 이는 수천만 명에 피해를 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차갑고 얼음으로 덮여 있는 북극에 최근 산불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매우 치명적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유럽의 센티넬3(Sentinel 3) 위성사진을 보면 2020년 북극권 시베리아에 영향을 미치는 산불은 무려 약 800km의 폭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최북단에서 현재 발생한 북극 산불은 북극해에서 8km 떨어진 북위 71.6도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북극 전체가 산불 위험에 휩싸여 있고 점점 더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산불이 발생하면 나무 등 모든 것들이 불에 타면서 일산화탄소 등 오염 물질이 배출됩니다. 2020년 7월 북극의 탄소 배출량은 그동안 측정된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습니다. 유럽연합(EU)의 관련 전문기구 관측 자료를 보면 그동안 관측한 18년 데이터 중에서 올해가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고온, 산불, 얼음이 녹는 현상이 지금 북극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점점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2020년 우리나라에서 장마가 이례적으로 오래 이어지고 있고 예측 불가능한 것도 이 영향 때문입니다. 기상청에서 분석한 것과 달리 집중호우, 돌발 홍수 등으로 이어진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북극 날갯짓은 주변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북극의 변화는 어제, 오늘 일은 아닙니다. 2000년대부터 북극의 ‘예측 불가능한’ 변화는 여러 차례 지적됐습니다. 1979년부터 북극 바다 얼음 등 다양한 연구를 진행 중인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기후변화로 가장 예측 불가능한 지역이 북극”이라며 “북극은 지구 가열화가 다른 지역보다 2~3배 빠르고 매우 속도가 높은 게 원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극이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s)’ 즉 임계점에 이르렀다고 경고했습니다. 티핑 포인트는 조금씩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상황이 천천히 진행되면서 한순간 그 한계선을 넘는 것을 말합니다. 양동이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은 아주 천천히 차오릅니다. 가득 찰 때까지는 그 흐름을 읽을 수 없고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양동이에 가득 찼을 때 한 방울의 물이 떨어지면 흘러넘쳐 버립니다. 이처럼 북극도 인류가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천천히 그동안 기후변화가 진행됐고 한순간 급격한 변화가 몰려올 것이란 경고 메시지입니다.
NASA 측은 “북극 티핑 포인트의 징후는 알래스카 지역 영구 동토층 붕괴, 해양의 산성화 등에서 예고하고 있다”며 “북극의 바다 얼음이 줄어들고 그린란드 대륙 빙하가 녹으면서 ‘티핑 포인트’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기후변화에 따른 위협 중 신종 감염병도 예외는 아닙니다. 스콧 도니(Scott Doney) 우즈홀 해양학과 기후변화 연구소(Woods Hole Oceanographic Institution Ocean and Climate Change Institute) 박사는 “기온이 오르면 바다 온도가 오를 것이고 이렇게 되면 전염병도 더 빠르게 확산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미 러시아에서는 빙하에 갇혀 있던 탄저균이 빙하가 녹으면서 노출돼 그곳에 사는 이들이 감염된 적도 있습니다. 수십만 년 동안 빙하에 잠들어 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얼음이 녹으면서 노출되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바이러스는 동면하다가 녹으면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