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윤 Feb 17. 2023

웨이브를 하려면 제대로

섹시한 영법, 접영

  호텔에서 있는 대로 물을 튀기며 접영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쉬러 와서 가장 힘든 영법으로 체력을 다 소진하다니, 물 밖으로 나가면 곧장 침대로 가서 뻗을 건가? 호텔에는 스카이 라운지와 클럽도 있고 잘 닦인 산책로도 있고, 군것질 하고 수다 떨 예쁜 카페도 있는데 수영장에서 탈진하려나. 우렁찬 물소리를 내며 수영하던 어떤 이는 거의 500미터 이상을 연거푸 접영으로 다녔다. (대단해요.)그러나 얕게 물을 타며 날치처럼 튀어 오르는 접영 고수들이 멋져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들이 비록 조용한 호텔에서 시끄럽게 허세를 부리더라도 말이다.


 다른 영법이 발전하는 속도는 연습하는 시간과 비례했지만 난 이상하게도 접영만큼은 공을 들인 시간에 비해 쉽게 늘지 않는 느낌이었다. 문제가 뭔지 여러 강사님들에게 물어도 보고 영상도 찾아보고도 했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모르니, 장님이 더듬어가며 길을 찾는 느낌이었다. 고수들을 질투하며 접영에 집착하다 보니 조금씩 늘기는 했지만 접영이 불편하고 힘든 건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출수 동작 시, 물 밖으로 시원하게 못나온다는 점이었다. 접영이 가장 힘든 수영이라는 점은 알고 있었으나 힘들 때 힘들더라도 나올 땐 확실하게 나와야 미끄러지듯 유연한 입수도 가능하다. 그러나 출수 때마다 나의  어깨는 반 밖에 나오지 않았다. 숨은 쉬어야 하니, 간신히 나온 머리를 힘껏 쳐들면 그 순간부터는 매번 ‘만세 접영’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없어 보이는 수영이 ‘만세 접영’(=‘나살려 접영’)이다. 멀리서 보면 마치 살려달라며 허우적대는 꼴이 참 볼품없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음, 나는 날치와 만세의 중간쯤에 있었다.

 

 출수 동작을 카메라 컷으로 담는다고 한다면 머리는 정면이나 약간 아래를 보고 있는 형태가 가장 이상적인, 즉 있어 보이는 자세라고 할 수 있다. 부유해(?) 보이는 접영을 하는 것이 올해 위시리스트 중 하나라서.     

 

 최근에 사디스트 강사님이 사업을 한다며 도망가는 바람에, 새 강사가 부임하게 되었다.  나는 이번 강사님에게도 역시 ‘접영 안 돼 레파토리’를 첫날부터 열심히 성토했다. 아담한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 약간은 옥동자를 닮은 듯한(죄송해요, 강사님) 생김새의 새 강사 분은 다음날부터 내 자세를 유심히 보더니 무심한 듯 코칭을 시도했다.

 ‘상체 웨이브가 안 되는데요.’ 

 잉, 웨이브는 허리로 타는 게 아니었나? 예전에 클럽도 다녀보고 나이트도 전전(?)하며 웨이브를 마스터했다고 믿었던 나였는데, 웨이브가 안 된다니.


 ‘허리가 아니라 가슴을 써서 상체 웨이브를 해야죠.’ 

 (얘기하고 보니 접영은 섹시한 영법이다.)

  그는 뻣뻣한 상체로 힘겹게 물을 밀고 올라오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계속 무심한 듯 조언을 주었다. 그의 짤막한 코칭을 모두 종합해 보자면, 가슴을 밀지 못하니 물을 타는 게 어렵고, 물을 타지 못하니 출수가 무거워 진다는, 대충 그런 얘기였다. 클럽에 헛다녔던 내가 그의 조언과 가슴웨이브를 이해하고 나서는 드디어 만세접영의 돌파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수태기(수영권태기)가 살짝 오려고 하는 찰나, 새 강사 분을 만나 매너리즘을 극복하는 중이다. 강사분이 바뀐다는 얘길 들었을 때 내심 유려한(?) 비주얼을 기대하고서는 아주 약간은 실망했었다. 그러나 무엇이든 사람은 외모가 중요한 게 아니다. 접영할 때마다 겪었던 꽉 막힌 체증같은 기분을 해소하게 해준 새 강사님은 옥동자를 닮은 얼굴마저도 이젠 귀엽게 보인다. 나의 수영생활, 귀여운 강사님과 영원하길.      



 <에필로그> 

 ‘외모가 아닌 인성’ 이런 얘길 하고자 했던 게 아닌데 어쩌다 얘기가 이렇게 흘러가 버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스터즈들의 자뻑 모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