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윤 Mar 02. 2023

운동 그룹에서 조차 빠지지 않는 정치적 인간형

운동하는 중2병 어른

 “무슨 일 해요? 결혼은 했겠고”

 “몇 살이예요? 난 75년생 범띠. 아니, 나보다 어린 것 같아 말 좀 편하게 하려고.. 여기 있는 사람들끼리 말 편하게 해요.”     

 

 몇 번 만나지도 않았을 뿐더러 심지어는 이름도 잘 모르는 누군가가 이런 식으로 훅 들어오는 건, 나와 친해지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닐 거다. 그건 어린 사람이 쉽게 말을 놓지 못한다는 점과 거절이라는 불편한 태도를 드러내기 쉽지 않다는 점을 이용한 무례함이고, 모임 내 대화에서 주도권을 쥐고 싶어하는, 유치한 자기도취 심리의 표출이다. 언제 봤다고 반말을 하겠다는 거지?

 신기한 건 어느 그룹을 가도 이런 사람이 한 명쯤은 꼭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부류는 또 대게 극도의 관계 지향형에 정치적이기까지 해서, 주변 사람들을 자기 옆으로 끌어모으는 데에 전력투구를 하는 편이다. 그렇게 자기만의 그룹을 만든 정치인(?)은 다음 순으로 꼭 하는 일이 있으니, 자기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신 외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누군가를 괴롭히고 공격하는 일이다. 나이가 들어도 그런 면에서는 중2때와 하나 다르지 않다. 그건 중2병이라 하기에도 사실은 너무나 온건한 표현이다.


 어떤 무리에 들어가더라도 항상 그런 사람은 있기 마련인데도 겪을 때마다 도통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건지, 그런 순간을 가장 현명하게 극복하는 방법이 어떤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 사람이 설령 사내 정치 혹은 그룹 내 정치질의 결실(?)을 거둬서 한 무리의 중심에 서 있다 하더라도 비호감인 그에게 굳이 가까이 가려 하지 않으니, 종종 나는 그런 사람의 타겟이 되고는 했다.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하기에 그 사람은 무리 내에서 힘을 구축해 놓은 상태이다. 이 점은 내 카메라 초점을 그 사람 밖으로 아무리 맞추려고 해도 그 존재는 억지로 나의 카메라를 잡아 도로 자기에게 포커스를 맞추기를 반복했다. 나를 바로 공격하기 여의치 않을 경우, 그는 내 주변 사람들부터 타겟으로 삼기도 했다.


 수영 강습 때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의 강습반은 천만 다행히도 (마치 기적처럼) 그런 인간이 한 명도 없어서 모두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수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전에 다녔던 수영장에서는 중2병 인간 하나가 매번 신경을 긁어댔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다른 수영장을 찾을수 밖에 없었다. 우리 수영장 중2의 텃새질은 그러나 몇 달 전, 뉴스에까지 보도되었던 그 사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보도된 수영장내 텃새는 상상을 초월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은 그저 멀뚱하게 있었다는 죄로 너덜너덜해지는 운명을 맞이해야 했다. 뉴스에 나왔던 사건은 신입 희생자가 강습반의 고인물(?) 회원들에게 떡을 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혹은 신입답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단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다고 토로했다. 기존 회원들은 보이지 않게 그를 팔꿈치로 찌르고 밀치고 집단적으로 따돌렸다. 불쌍한 신입회원이 수영장 측에 피해 사실을 호소해 봤지만 운영진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와, 이에 비하면 내가 당했던 그년(?)의 정치질은 애교로 봐줘야 했던 건가.     

 

 수영강습 땐 여기에 더해 자리싸움이라는 보이지 않는 경쟁도 있다. 보통 모든 영법에서 더 뛰어나고 속도가 빠른 사람일수록 앞자리에 서게 되는데, 한 반에서 보통 세 번째까지는 실력차이가 눈에 띄게 좋은 자들이기 때문에 그 자리를 이들이 점거(?) 하는 데에는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는다. 앞에 섰다가 너무 잘 쫓아오는 뒷사람에게 민폐를 끼칠 수도 있는 부담스러운 자리인 만큼 쭈뼛거리며 잘 서지 않으려고도 한다. 문제는 그다음 줄 부터이다. 뒤로 가면 실력이 엇비슷한 사람들끼리 뭉쳐있기 때문에, 이때부터는 한 칸(?)이라도 앞자리에 서야만 강습을 받는 데에 유리해진다. 강사의 지시와 설명을 알아듣기 쉽고 또 조금 더 빨리 와서 쉬는 시간도 확보되기 때문이다. 맨 뒤에 서는 수강생은 수업할 때 불리할 뿐만 아니라 재미도 없어진다. 때문에 이들끼리의 자리다툼에 은근 신경전이 생기는 것이다.


 같이 하는 운동이니 뒤처지면 안 된다는 약간의 강박관념과 경쟁, 그 안에서 형성되는 인간관계에도 신경 써야 한다는 점, 어느 반을 가든지 미친년, 혹은 미친놈이 꼭 한 명씩은 있다는 점은, 어찌 보면 수영장 하나의 레인이 인간 사회의 작은 축소판 같다는 생각도 든다. 지긋지긋한 직장을 다니는 기분? 느긋하고 즐겁게 그냥 운동만 할 수는 없는 건가.


 그런데도 굳이 강습을 받는 이유는 분명 사람들과 어우러지면서 같이 운동하는 편이 자유 수영 끊고 혼자 다니는 것보다 더 재미있기 때문일 것이다. 경쟁이 있어도 더 활기가 있고, 텃새가 있어도 혼잣 말 하는 수영보다는 더 다이나믹하고 재미있기 때문일까. 혼자 있기 좋아하는 나조차 그런 걸 보면, 인간은 하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인가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웨이브를 하려면 제대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