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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Jan 30. 2023

마스터즈들의 자뻑 모임

3년차, 수린이의 수영 이야기

   

 난 한국인들이 이 정도로 아침형 인간인 줄은 몰랐다. 각종 자기계발서나 미디어에서 아침형 인간을 칭송하는 건 그만큼 실천하기 어렵기 때문 아니었나.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게 아침잠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좋은 아침잠은 다 어디에들 버린 걸까. 설 연휴 첫날 아침 8시 50분, 수영장 샤워실로 들어선 나는 저녁 강습 시간 직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광경을 목격했다. 따뜻한 수증기로 꽉 찬 샤워실에서 전투적으로 씻고 있던 사람들은 수영장에 전쟁이라도 벌이러 나가는 건가. 아님, 물에서 금이라도 캐려는 건가, 나는 홀딱 벗은 채 멈춰 서서,  수증기 반, 사람 반인 샤워실의 광경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늦잠폭탄형인 나는 그럼 그 아침에 왜 일어났냐고? 동호회 모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몇 달간 눈팅만 해오던 수영 동호회에서 수친(수영친구)도 사귀고 체력도 키울 겸 번개에 나가보기로 결심했던 터였다. 하나같이 이른 아침에만 잡혀 있는 벙이 꺼려졌지만 사람이 없는 시간대에 신나게 놀기 위해 일찍 만나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수영장 안은 모락모락 피어나는 물 아지랑이 속, 의욕에 넘치는 인어들로 꽉 차 있었고 나는 손 흔드는 사람들 속 무리로 반쯤은 혼이 빠진 상태로 합류했다.     

 

 그 사람들은 분명 맨발이었는데도 내가 오리발을 신고 수영할 때와 똑같은 속도를 냈다. 웜업으로 IM(접배평자) 세 개를 연거푸 돌았고, 최고의 체력을 요구하는 드릴을 무자비하게 시켰다. 그런데도 그 다음의 미션이 뭔지 궁금해 죽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그들은 알고 보니 이 동네 여기저기서 다 모인 마스터즈 반 사람들이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그 속에 끼려 하다 가랑이 찢기고 물에 빠져 죽은 뱁새가 될 뻔했던 것이다.     

 

 운동 동호회는 대체로 강습비를 절약하고 새로운 운동친구까지 사귀려는 목적으로 많이들 가입하는 터라, 수영도 같을 거라고 착각했던 나는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곧 알아차렸다. 수영은 모든 수영장에서 단체 강습을 통해 저렴하게 배울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동호회를 통해 비용을 절약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모임 사람들은 수친을 만들고 놀기 위해 동호회를 나오는 목적도 없어 보였다. 마치 운동에 미친 듯 레인을 돌기만 하던 사람들, 모든 수영 동호회가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이 지역 이 무서운 모임은 강습이나 친목보다는 아무래도 다른 목적이 있어 보였다. 이미 배울 거 다 배운 사람들이 그동안 갈고 닦았던 실력을 뽐내려고 나오는 자리.


 쉬지도 않으니 서로 얘기할 시간도 없는 듯 보였던 그들은 눈을 씻고 봐도 오리발 따위는 신지 않은 맨발로 역동적인 속력을 냈고, 그래서 그들 레인에는 엄청난 물살이 만들어졌다. 수영장 자체가 흐르는 물이 아닌 게 분명한데도 그들은 마치 물살을 역행하며 고향으로 돌진하는 펄떡이는 연어들 같았다. 다른 레인의 일반인(?)들은 우리 동호회 레인을 다소 경이로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는데,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던 나는 초반에 이미 다른 레인으로 빠져있던 상태였다. 2천 미터를 돌고 나서야 그들은 잠깐 쉬는 시간을 가졌다.  

 천 미터를 겨우 돌고 와서 침울해진 나는 어쨌든 다녀와서 자극제는 되었다. 적어도 강사가 힘들게 시킨다고 앞으로 불평하지는 말아야지, 그 정도의 인격수양은 되었으니까.     


  그렇더라도 ‘우리 동호회는 마스터즈 허세모임입니다.’라는 공지나 귀띔은 미리 좀 해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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