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윤 Aug 12. 2023

수강생이 원하는 수영강사

비주얼?

 오후 네 시 쯤 자유수영을 가면 비교적 한가하게 수영을 즐길 수 있어서 그 시간대를 선호하는 편이다. 이른 아침과 저녁은 직장인 반으로, 오전 시간대는 주부 반으로, 점심 직후는 아쿠아로빅을 즐기시는 할머님들로 북적이는 수영장을 피하기 위한 나만의 쾌적한 시간대를 나름 정해 놓았던 셈이다. 내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이 시간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지켰었는데 요즘은 슬프게도, 일이 다 끝나고 밤 늦게라도 갈 수 있으면 다행인 상황이 되어서, 한동안 황금 시간대를 즐기는 호사를 포기해야 했었다.     

 

 그러나 일의 성격상 7~8월 쯤이 비수기인 요즘, 다시 평일 네시 경에 나갈 수 있는 여유를 획득, 해를 보며 운전하고 역시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 수영하는 기분을 오랜만에 느낄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았던지. 

 어, 그런데 뭔가가 예전과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한가로운 수영장 내부와는 대조적으로 수영장 밖의 좁은 갤러리석에 사람들로 꽉차 있던 풍경이 평소와는 달랐다. 그 시간엔 방과 후 수영레슨을 받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젊은 엄마들이 두 세명 있긴 했으나 그렇게 많은 관중(?)들로 북적였던 적은 없었다. 다음날도 같았고 그 다음날은 엄마들이 더 늘어 있는 느낌이었다.      

 

 그녀들의 시선이 쏠린 레인으로 눈을 돌리자 이목구비의 선이 고운, 훈남형 강사의 얼굴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저녁시간대에도 가끔 봤던 사람, 한 번 보면 기억에 남는 얼굴이었던, 눈에 띄는 마스크로 인해 여자 회원들의 화제에 가끔 등장도 했었던. 그 강사가 낮 시간에 아이들도 가르치는구나. 강사는 쏟아지는 엄마들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는 몰라도, 수영장을 박살낼 것 같은 열정적인 자세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이상했다. 그리고 약간의 웃음도 나왔다. 내가 알던 그 사람은 그렇게 성실한 스타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수영장을 부숴버릴 것 같은 열정적인 눈빛을 가진 사람도 분명 아니었다. 그는 평소 모든 몸가짐이 루즈했고 뭔가가 항상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특히 학부모 관객이 없었던 초반엔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던게 아닌, 열정적으로 핸드폰을 바라봤던 모습이 기억에 남았던 사람이었다. 마치 핸드폰으로 청탁받은 원고를 쓰기라도 하는 것 마냥, 모니터자판을 치거나, 혹은 스크롤을 내리다가 흘깃 아이들을 보고는 대충봐도 너희들의 모든 것을 다 안다는 것처럼 굴었던.. 내가 그 아이들 중 한명의 엄마였다면 곱게만 보이지는 않았을, 그런 타입이었다. 언제 저 사람이 저렇게 바뀌어 있었나. 역시 사람은 믿어주는대로 행동하고 지지해주는대로 변하는건가?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휴먼 카인드’에서 설파했던 것처럼 어떤 인간이고 내면 깊숙한 곳에서 선한 본성을 이끌어 낼 수 있는건가? 혼자 막 이런 생각까지 할 지경이었다.     

 



 30대때까지는 이성을 볼 때 외모에 지배당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점점 현안이 생기면서 내면의 얼굴을 볼 줄 알게 된 점은 늙어가면서 얻게되는 유일한 장점이라 생각한다.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반에 5개월 전 새로 부임(?)했던 강사는 처음엔 수려하지 못했던 비주얼로 여성회원들 사이에서 다소 실망을 샀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사람은 회원들 사이에서 몇 달 후에 또 있게 될 강사 로테이션에 대해 어떻게든 막을 방법이 없을까 고심하는 인기 강사가 되어 있다. 성실한 태도, 서글서글한 웃음, 회원 한명 한명에 대한 관심과 배려, 귀여운 유머, 즐기면서 일을 하는 모습 등이 오랜 기간 쌓여 그 사람의 이미지가 되고, 잘 생긴 얼굴이 되어 있었다. 강사를 좋아해서 수업에 열심히 참석한 회원들은 수영 정체기에서 벗어나 일취월장중이다. 


 수영을 다니면서도 생의 이면에 숨어 있는 진실을 여럿 배우게 된다. 사람의 진정한 매력은 전적으로 내면에 있다는 사실 같은 것 말이다. 잘 생긴 강사 험담한 건 좀 미안하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운동 그룹에서 조차 빠지지 않는 정치적 인간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