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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나무 Feb 20. 2023

일본 불교는 어떻게 전투기 헌납하는 종교가 되었나

이찬수, 2023, <메이지의 그늘>

<책읽기 정책읽기 3-3> 이찬수, 2023, <메이지의 그늘>, 모시는사람들.


인권연대가 주최하는 ‘이찬수 교수의 메이지의 그늘’ 기획강좌 세번째 강좌(2월 14일)는 <전투기를 헌납하는 종교와 전쟁을 옹호하는 철학>을 다뤘다. 이날 강의의 주제는 메이지 시대 불교와 전쟁이라는 이질적인 조합이 천황제를 매개로 결합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일본 철학이 불교에 상당한 토대를 두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메이지 시대 철학과 전쟁이라고 해도 가히 틀린 말은 아닐 듯 하다. 


먼저 이 교수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서 나타났던 국가주의의 사상적 기초를 다룬다. 오규 소라이와 함께 에도막부 시대 일본 성리학의 토대를 닦았던 모토오리 노리나가(1730~1801)는 이(理)를 ‘가짜 마음’[가라고코로]로 규정했는데, 그에 대비되는 ‘진짜 마음’은 자연스럽게 신도(神道)와 연결된다. 여기서 일본적 정서의 단초를 얻을 수 있는데, 흔들리는 마음속 깊은 감정을 뜻하는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가 윤리적 선악을 넘어선 미적 기준이 된다. 


“동시대 조선은 이기론(理氣論)에서 보듯 성리학적, 추상적 논쟁이 주류였지만 일본 유학에선 이(理)를 부정합니다. 이는 곧 보편성을 거부하거나 약화하는 것인데, 그 빈자리는 일본적 특수성, 유사보편주의가 차지합니다.”


성리학에서 중요한 가치 가운데 하나가 성(誠)이다. 성리학에서 일체 상태를 誠으로 보는 주자학과 달리 일본 유학에서 誠은 인간관계에서 자신과 타자를 속이지 않는 주관적 심성의 순수성을 가리키고, 마음에 의한 내재적 초월을 표현한다. 여기서 파생되는 일본어 표현이 “誠[まこと]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다. 우리말로 하면 “대단히 고맙습니다” 정도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마코토”(誠)가 들어가는 데 주목하자. 


이런 배경을 언급한 뒤 이 교수가 소환하는 철학자는 “근대적인 의미의 일본 최초의 철학자(147쪽)”였던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 1870~1945)다. 그가 교토대 철학과 교수를 한 덕분에 그의 철학은 ‘교토학파’라는 이름으로 확산됐다. 그의 책은 어렵기로 악명이 높다. 이 교수는 “처음 읽은 그의 책은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윤리교재였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서양식 표현으로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두루 꿰뚫고 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니시다는 “사상적으로는 탁월한 철학자(148쪽)”였다. “특히 선(禪)의 세계관을 서양철학의 언어로 재해석하고 재구성하면서 동서양을 통합시킨 새로운 철학의 기초를 다졌(148쪽)”고, 이런 “그의 일원론적 장소의 철학과 사상은 이원론의 그늘 속에 있는 서양의 철학자들을 매료시키며 많은 서양의 철학자들을 일본 연구로 끌어들이는 매력적 동력(147쪽)”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그의 철학은 동시에 “침략 전쟁으로 이어 갔던 일본의 제국주의적 정책은 물론 그 정점에 있는 천황가를 칭송하는 데 머물고 말았다(148쪽)”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불교철학에선 ‘색즉시공’(色卽是空)이 핵심인데, 여기서 색은 세계, 현상, 특수를, 공은 영원, 보편을 의미한다. 이게 니시다 손을 거치고 나니 일본이란 ‘특수한 보편’이 돼 버린다. 그는 ‘공’을 ‘절대 무(無)’로 번역했는데 여기서 공 그러니까 ‘절대 무’는 황실에 대응한다. 결과적으로 그의 철학은 일본 황실을 절대긍정하는 일본 제국주의를 이념적으로 정당화하는 철학으로 빠져 버린다는 게 이 교수 진단이다. 비슷한 사례로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1870~1966)가 있다. 선불교를 세계에 알린 그 역시 “군국주의를 정당화할 만한 교묘한 발언으 ㄹ수도 없이 쏟아 냈다(156쪽).  


이 교수는 메이지 시대 일본 불교계의 전반적인 상황에 주목했다. 당시 불교는 전쟁에 적극 협력했고 천황제를 옹호했으며, 심지어 조동종(曺洞宗)은 1941년에 모금 활동을 벌여 해군에 전투기 두 대를 기증했다. “전투기 이름도 조동1호와 조동3호였다(159쪽).” 일련종(日蓮宗) 역시 1938년 <호국불교>를 창간하고 종단 지도자들은 ‘황국의 길 불교 실천 연합’을 결성했다고 한다. 


여기서 이 교수는 이런 질문은 던진다. “불교의 이름으로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163쪽).” 이 교수가 보기에 아주 기초적인 관점, 연민과 공감이 결여되어 있었던 게 원인이었다. “국가에 의해 적으로 규정된 이의 죽음에 대한 공감은 물론 자국민의 죽음에 대한 연민조차 이념에 휩싸인 공적인 의무로 전환시켜 버린 것이다(163쪽).”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종교학자로서 이 교수는 일본정신, 즉 화혼(和魂)을 강조했지만 조화[和]가 아니라 실상 동일화[同]을 지향했던 메이지 시대 불교철학의 한계를 지목한다. “타나베는 물론 니시다, 스즈키 등 불교 철학에 입각해 일본적 사유 체계를 확립하려 했던 많은 사상가들도,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동(同)을 화(和)로 해석하게 만드는 제국주의적 정치 상황에 상당 부분 함몰되어 버린 것이다(185~186쪽).”


이제 결론이다. “전쟁의 희생자를 영령으로 받듦으로써 계속 영령을 만들어 내는 국가의 논리를 배후에서 지원한 역사를 온전히 반성하고,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보편의 차원을 열어가는 일이야말로 일본 종교계의 근본적이고 여전한 과제라 하겠다(186쪽).” 그런데 이게 과연 일본에게만 해당하는 일일까. 강의 말미에 이 교수는 전 총무원장 자승을 둘러싼 다양한 논란을 언급했다. 


그러고보면 한국이 제국주의 침략이라는 어두운 과거사에 빠지지 않은 건 그저 기회가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되돌아보게 된다. 물론 베트남 민간인학살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하라는 판결이 나오는 걸 보면 그래도 일본보단 건강하다고 자부하게 하지만, 이슬람 사원을 못짓게 하겠다고 건설공사를 방해하고 통돼지구이와 돼지고기수육을 보란듯이 먹고 있는 모습을 뉴스로 보고 있자니 내 눈에게 너무 못할 짓이란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이찬수 교수 강의 목록>
1. 일본 메이지의 그늘, '제사하는 국가'와 '천황교'
2. 와타쿠시(私) 죽여 오오야케(公)로, 그 뒤에 남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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