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 세계의 아이들 10
주로 아이들과 놀다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상을 조금씩 이어 붙였습니다. 그러다 보면 희한하게, 주위 사람들에게 들은 소소한 이야깃거리나, 뉴스에서 보는 현실의 이야깃거리들도 같이 달라붙었습니다. 이야기들이 점점 더 머릿속에서 살아났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소위 '저 세상' 존재들은 왜 우리 옆에 있으려고 하는 걸까?'와 같은 단순한 질문에서 가지치기를 한 머릿속 상상은 자꾸 커져서, 나름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두리뭉실 덩어리였는데, 자꾸 이런저런 모양새가 만들어지고, 그 모양새들끼리 이야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모험도 하다 보니,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어 한 번 써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첫째가 8년 후쯤에는 읽을 수 있는 재미난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썼습니다. 꼬리표를 붙이자면 '아동 판타지 소설'이 되겠지만, 엄마인 어른의 입장에서 던져보고 싶은 현실의 문제들, 어른의 문제들도 같이 들어 있습니다.
“이제 가게에 가자꾸나. 아주 가까워. 저 길 끝에서 돌면 된단다.”
라며 아마님은 활기차게 움직였다. 진짜 금방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길 끝에서 도니, 파란색과 노란색이 아주 눈에 띠는 건물이 보였다. 전면으로 난 쇼윈도 2개에 물건이 진열된 것을 빼고는 다른 집과 크게 다른 점이 없어 보였다.
“주문한 생기가 도착했다고 하셨죠, 아까?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이에요? 생기 탱크에서 충전하는 생기와는 다른 건가요, 그럼?”
“그래, 보비야. 생기 탱크의 생기는 모두가 필요할 때 충전할 수 있는 거야.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생기를 얻을 수 있는 거지. 그리고 그건 무료이고. 물론 엄밀히 말해선, 우리 모두가 생기를 채집할 수 있는 권리를 생기 회사에 양도하는 대신, 생기 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 같은 거라서 완전 공짜는 아니지. 생기 회사는 방해받지 않고 편하게, 또 전문적으로 생기를 채집해서 일부는 의무적으로 공동체에게 제공해야 해. 그게 생기 탱크에 들어가는 생기지. 나머지는 생기 회사가 자유롭게 팔 수 있단다. 갓난아기나 어린아이들에 게서 채집한 생기는 보통 최고급으로, 가격도 비싸지.
제한된 조건에서 더 많이 채집을 하고, 최대한 보존을 잘하는 것은 회사마다 조금씩 다르고, 그게 바로 그 회사의 노하우가 되는 거야. 우리들로 말하자면, 사람들이 음식을 먹는 것과 똑같아. 생존을 위해 먹기도 하지만, 즐기기 위해서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을 찾고 먹고 싶어 하잖니. 생기 탱크의 생기로 생존을 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지만, 다양한 생기를 맛보고 싶어 하는 거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행복해지는 것처럼요?”
“하하하하. 그렇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멋진 그림이나 풍경을 보고, 따뜻한 햇볕을 쬐고, 정원에 나가서 꽃과 나무 냄새를 맡고... 그 모든 것은 몸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똑같이 감동을 준단다. 몸도 정신도 다 즐거운 거지.”
이야기를 하는 사이, 아마님과 보비는 가게에 도착했다.
“여기 말고도 다른 가게들이 있어. 하지만 조이 씨네 가게가 제일 빠르고 정확하단다.”
라고 보비에게 말하며 아마님은 문을 안으로 밀었다. 딸랑하는 종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리고, 보비는 곧 상쾌한 꽃향기를 맡았다.
“어머, 은방울꽃이네. 탐스럽기도 해라. 어쩜 매번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구해다 놓는 거죠? 너무 기분이 좋네요.”
아마님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호호호호, 뭘요. 그냥 정원에서 피는 것을 좀 가져다 놓는 건데요. 아마님이 운이 좋으신 거예요. 매번 싱싱하고 좋은 꽃이 나와 있을 때마다 딱 오시는 거 보면.”
카운터 뒤에서 웃으며 이야기하는 아주머니를 본 보비는 ‘여자 산타 할아버지 같아’라고 생각했다. 올리 씨가 산타 할아버지의 젊은 버전이라면, 조이 씨는 여자로 변한 산타 할아버지, 아니, 산타 할머니라고 생각했다. 기분 좋게 동글동글한 인상에, 코안경을 쓴 복스럽게 생긴 할머니의 머리카락은 솜처럼 하얗고 부드러워 보였다.
“자, 이렇게. 여기 있어요. 가져가세요.”라며 커다란 화병에서 꽃가지를 한 움큼 빼서 리본으로 묶는 손놀림은 무척 경쾌하고 부드러워 보였다.
“아휴, 매번 이렇게. 너무 고마워요.”
둘은 사이좋게 이야기하다가 곧 아마님이 말했다.
“참, 여긴 보비에요. 새로 알게 된 친구랍니다. 살아있는 몸을 가진 사람들의 세상에서 왔어요.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자유롭게 이쪽으로 올 수 있는 친구예요. 아주 씩씩하고 예의 바른 소년이에요. 자, 그리고 보비야, 이쪽은 조이 씨. 우리 마을 최고의 정원사이자, 최고로 좋은 가게의 주인이셔.”
“어머, 무슨 그런 과찬을. 호호호호. 보비야, 만나서 반갑다.”
라고 손을 내밀며 조이 씨가 말했다.
보비는 씩씩하고 예의 바르다는 아마님의 말에 얼굴이 붉어졌지만, 기분 좋게 조이 씨와 악수를 했다.
“여기 주문하신 생기요. 어제 오후 늦게 도착했어요. 그래서 바로 연락을 드렸답니다. 아무리 보존이 잘 되어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신선도가 떨어지니깐요.
자, L사에서 나온 ‘놀이터의 활기 - (3~4세 아이들의 생기 / 밖에서 뛰어놀 때)’ 병 하나와, P사에서 나온 ‘이른 주말 오전 도서관’ 병 하나예요.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아이들의 생기는 L사가 제일 섬세하답니다. 가격은 똑같거나 저렴한데도 불구하고, 순도가 높고 깨끗하달까요. 채집부터 병입, 보존, 유통까지 아주 깔끔하게 나오는 편이에요.
P사는 좀 다르죠. 생기의 품질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연령별 채집보다는 아예 대담하게 상황이나 장소별로 테마를 잡았죠. 다른 회사들도 비슷한 것을 시도했지만 결국엔 지지부진해서 연령별 채집으로 돌아간 데 비해, P사는 특징 있는 생기를 잘 잡아내는 데 성공했어요. 지난번에 제가 한 번 권해드렸는데, 이번에 또 주문하신 거 보면 괜찮으셨나 봐요?”
“네, 맞아요. 오랜만에 신선한 경험이었답니다. 지난번에 말씀해 주셔서 처음 사 봤었는데, 꽤 흥미 있었어요. ‘방학 시작하는 날 학교길’이었죠. 민트 차와 초콜릿 민트 쿠키에 뿌려 먹었는데, 향이 아주 확 하고 살아났답니다. 아, 그리고 병이 정말 예쁘네요. 디자인은 단순하지만 흔들 때마다 다르게 반짝거리는 것이 정말 예뻐요.”
“정말 그렇죠? 저도 여기 병 좋아해요. 민트라... 저는 버터와 마늘을 듬뿍 올린 스테이크에다가 뿌려 먹었답니다. 정말 좋았어요.”
아마님과 조이 씨는 한동안 생기 제품들에 대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옆에서 들으면서 보배는 ‘엄마가 가시는 시장이나 가게와 똑같네. 소재만 다를 뿐이지, 뭐가 더 좋고, 뭐는 어떻고 하는 건 똑같잖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신기해. 사람마다 상황마다 장소마다 느껴지는 기운, 생기, 에너지... 뭐가 되었든 간에 그런 게 다 다를 수 있다는 게 말이야.’
혼자 생각에 잠겨 있던 보비는 조이 씨가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보비야, 이렇게 알게 되었으니 다시 한번 반가워. 자, 이건 알게 된 기념으로 주는 거란다.”
라면서 조이 씨가 막대사탕을 하나 내밀었다. 보비는 ‘나는 막대사탕을 먹는 나이는 지났는데’라고 시큰둥하게 생각했지만, 예의 바르게 “정말 고맙습니다”하고 받았다.
“어머, 저도요? 이런, 은방울꽃에 막대사탕까지! 항상 이렇게 대접을 잘 받아서 어떻게 하죠?”
옆에서 아마님이 좋아하며 말했다.
“뭘요. 저에게도 항상 멋진 그림이며, 맛있는 파이를 가져다주시잖아요. 그렇게 나눠야 맛있죠.”
“와, 이거 벚꽃 사탕이군요. 포장을 보고 그러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한 번 맛보고 너무 맛있어서 사러 와야지 생각했는데... 지금 재고가 좀 있나요?”
“그럼요. 좀 드릴까요?”
아마님과 조이 씨가 다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보비는 호기심이 들어 막대사탕의 포장지를 벗겼다. 벚꽃과 체리가 그려진 예쁜 포장지를 벗기니, 투명한 막대 사탕이 나왔다. 사탕 안에는 커다란 벚꽃이 얼려진 것처럼 보였고, 체리색의 조그만 알갱이들이 박혀 있었다. 보비는 저도 모르게 “와, 예쁘네요”라고 감탄을 내뱉으며, 얼른 사탕을 입에 넣어 보았다.
“와아아아”라고 외친 후, 보비는 또 한 입을 넣어다 빨았다. 그리고 다시 “와아아아”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마님과 조이 씨는 그런 보비를 보며 웃었다.
“와... 이건 정말... 봄을 먹는 것 같아요. 너무 맛있는데 뭐라고 잘 표현할 수가 없네요.”
라는 보비의 말에 아마님과 조이 씨는 또 한 번 웃었다.
“보비야, 너는 시인이로구나.”라며 조이 씨가 다정하게 말했다. 조이 씨에게 인사를 하고 보비와 아마님은 가게를 나와 집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참 잘 가는구나. 이제 다시 가봐야지?”
“네, 지금 가면 충분할 거 같아요.”
보비와 아마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자전거는 아까 보비와 아마님이 집을 떠날 때 모습 그대로 있었다.
“저 그럼 지금 가 볼게요. 토요일 오전에 올게요, 그럼.”
“그래, 잘 가라. 토요일에 보자.”
인사를 하고 보배가 돌아서는 데 자전거가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보비 쪽으로 다가왔다.
“자전거가 이제 다 쉬었나 보다. 보비 너를 데려다주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자전거가 통통통 거렸다.
“그런가 봐요.”
보비는 미소를 지으며 자전거 핸들을 쓰다듬고 올라탔다. 자전거는 빠르고 부드럽게 달려 순식간에 보비를 울타리 앞에 내려주었다.
“고마워. 충분히 다 쉬었니? 아까 이 집에서 큰 소리가 난 것 같았는데, 너도 좀 놀랐지?”
자전거는 통통통 거렸다. 보비는 새삼스럽게 집을 쳐다보았다.
‘이게 역이란 거지. 당연히 여기 역은 우리 세상의 역과는 다르겠지. 척 봐도 철로가 없고, 이렇게 조용한 걸 보면 말이야.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냥 보기엔 전혀 모르겠어. 벽도 창문도, 커튼도, 창문의 장식품들도 다 변함없어 보이는걸. 올리 씨와 아마님이 1층은 그냥 빈 공간이라고 했었지. 이렇게 밖에서만 보면 누가 꼭 살고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잘 상상이 안 가... 뭐, 토요일에는 좀 더 알게 되겠지.’
보배는 옆에 서 있는 자전거를 쓰다듬으며 인사를 건네고 울타리 밖으로 빠져나왔다. 시계를 보니, 아직 도서관이 문을 닫는 5시까지는 1시간 정도 남아 있어서 보비는 여유 있게 걸어갔다. 하지만 왠지 책을 읽을 기분은 들지 않아, 지난번처럼 도서관 옆의 작은 놀이터에 앉아 아빠를 기다리기로 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떠들썩하게 놀고 있었고, 엄마들은 한쪽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보비는 멍하니 벤치에 앉아 아이들을 보다가 거리 쪽을 보다가, 땅을 보다가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 주로 어떻게 토요일에 역의 3층으로 갈 것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머릿속에서 한참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땅에 낙서를 하다가 눈을 들었을 때, 보비의 눈에 웬 낯선 사람이 들어왔다.
아이들이 깔깔 웃으면서 놀고 있는 뒤쪽 수풀에 웬 남자 어른 하나가 가만히 서 있었다. 다리 쪽은 수풀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상체는 분명히 보였다. 의사와 같은 하얀색 가운을 입고, 하얀색 장갑을 낀 손에는 길쭉한 나팔 같은 것을 들고, 등에는 가방 모양의 상자를 매고 있었다. 가운 가슴 부분과, 나팔, 상자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선명한 초록색으로 P라고 적혀 있었다. 남자는 30대 정도로 꽤 젊어 보였고, 안경을 쓴 채로 심각하게 아이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웬 푸르스름한 연기 비슷한 게 나팔 끝으로 빨려 들어가는 게 보였다. 보비는 무척 놀랐다. 갑자기 낯선 남자가 보이는 것도 이상했고, 남자의 차림이나 이상한 도구도 무척 낯설어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로 아이들 뒤쪽에 가까이 서 있었는데, 아이들이나 엄마들도 전혀 신경 쓰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이상했다. 보비는 엄마들 쪽으로 몸을 틀어 반쯤 일어섰다. 아이들 뒤에 있는 남자를 아시냐고 물어볼 참이었다. 그 순간 보비는 퍼뜩 깨달았다.
‘아! 생기 채집꾼이야. 저 연기 같은 게 생기고, 나팔 같은 저건 생기를 빨아들이는 건가 봐. 그리고 저 등에 맨 상자가 생기를 저장하는 탱크야. 와, 이렇게 직접 보게 되다니. 그런데 잠깐, 그럼 저 사람은 나 같은 사람이 아니고, 아마님의 세계에서 온 존재겠지? 그럼 내가 지금 귀신, 아니, 영혼, 하여간 이상한 존재를 보는 건가? 물론 아마님의 세계에선 다들 그런 존재들이고 자연스럽게 봤지만... 여기에선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된 거지?’
보비는 혼란스러운 채로 계속 그 이상한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꼭 조각상처럼 아무 움직임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가끔 안경을 치켜올리지 않았다면 정말 조각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보비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 남자가 보비를 정면으로 쳐다보았고, 둘의 눈이 마주쳤다. 보비는 깜짝 놀랐다. 깜짝 놀라기는 그 남자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순간 화가 난 표정이 된 남자는 뭐라고 말할 것처럼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경을 다시 한번 치켜올린 남자는 보비를 물끄러미 한 번 보더니, 곧 혼란스러운 표정이 되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비는 계속 입을 벌린 채로 그 남자를 보고 있었다. 그때 누가 뒤에서 보비의 등을 두드렸다.
“얘, 뭘 그렇게 보고 있니? 아빠가 계속 불렀는데!”
“네? 어, 아빠? 언제 오셨어요?”
보비의 아빠였다. 보비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놀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좀 전에. 버스 정류장에서 계속 불렀는데, 못 듣더구나.”
“아, 그게...”
라면서 보비는 재빨리 그 남자가 서 있던 곳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그 남자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뭐니, 보배야? 얘는... 꼭 귀신이라도 본 얼굴이로구나. 허허허...”
“하하하하”
하고 어색하게 따라 웃었지만, 보비는 속으로 ‘정말 귀신을 본 걸지도 모른다고요’라고 대꾸했다. 아빠와 보비는 곧 집으로 향했고, 보비는 걸어가는 내내 일상적인 대화를 하려고 애썼다.
다음날, 보비는 학교를 마치고 솔과 바미에게 집으로 놀러 오라고 이야기했다. 세 친구와 보미까지 넷은 같이 식탁에 앉아 보비 엄마가 준비한 간식을 먹으며 시험이며, 학교며, 친구들 이야기며 일상적인 이야기를 했다. 간식을 다 먹을 때쯤 보비가 말했다.
“이제 우린 올라가자. 보미 너는 여기 있어.”
“나도 같이 언니들이랑 놀 거야.”
“그래, 보미도 같이 놀자. 우리 다 같이 보드게임할까?”
솔과 바미는 둘 다 보미를 예뻐했다. 솔은 형제가 없고, 바미는 남동생이 하나 있어서 그런지 보미 같은 여동생이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다. 보비 역시 보미를 좋아했지만, 동생은 역시나 귀찮을 때가 많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특히나 보비가 뭔가 이야기를 할 때마다, 보미는 왜 그런 거냐, 어떻게 그런 거냐라고 꼬치꼬치 묻곤 했다. 부모님께서는 웃으며 보미가 궁금한 게 많아서 질문하는 거라며, 보비 너 역시 똑같이 질문이 많다고 하셨지만 보비는 속으로 내가 저 정도일 리 없다고 생각하곤 했다. 솔과 바미, 보미 셋을 다 이길 순 없었기에, 보비는 투덜거리면서도 다 같이 보드게임을 하게 되었다. 투덜거리긴 했지만, 막상 넷이 같이 게임을 하거나 놀면 또 재미가 있어서 보비는 투덜거렸던 것을 잊어버리고 같이 신나게 놀았다. 넷이 한참 놀고 났을 무렵, 엄마가 보미를 불렀다.
“보미야, 이제 이쪽으로 와서 엄마 텃밭 일하는 것 좀 도와주렴. 오빠는 친구들이랑 위층에 올라가게. 보비야, 올라갈 때 레모네이드랑 과일 가지고 가렴. 여기 식탁에 놔뒀어.”
보미는 실컷 놀았겠다, 워낙 엄마랑 같이 있는 것을 좋아하는 탓에 군말 없이 엄마에게 갔다. 보비는 속으로 엄마에게 감사하며, 과일을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셋이 간식을 한 입씩 먹자마자, 보비는 말을 꺼냈다.
“솔이야, 바미야, 너네 토요일에 뭐해?”
“토요일? 나는 별일 없는데.”
“좋겠다. 나는 아빠랑 동생이랑 같이 낚시 가기로 했어.”
입을 삐죽이며 바미가 말했다.
“낚시가 왜?”
“야, 덥고 지루하단 말이야.”
“그럼 안 간다고 하면 되잖아.”
“엄마가 그날 친구들을 집에 부른다고 하셨거든. 그래서 아빠 보고 우리 둘 다 데리고 가라고 하셨어. 나는 그냥 집에 조용하게 있겠다고 했지만, 내가 안 가면 동생도 안 가겠대. 그래서 우리 둘 다 가든지, 안 가든 지야. 엄마가 ‘방해받기 싫으니 다들 놀러 다녀와’라고 강하게 이야기했거든. 그래서 안 나갈 수가 없어.”
바미는 투덜거리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잠시 가만히 있다가 덧붙였다.
“뭐 아빠가 엄청 좋아하시기도 하고. 같이 간다니깐 무척 신이 나셨거든. 거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잖아.”
솔과 보비는 싱긋 웃음을 띠며 친구를 쳐다보았다.
“근데 왜? 토요일에 뭐 하게?”
바미는 쑥스러움을 떨치려는 듯이 손짓을 하며 보비에게 물었다.
“아... ”
하고 보비는 망설였다. 친한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최근 몇 주 사이에 경험한 이상한 일들을 그대로 말하는 것도 망설여졌다. 바미와 솔이 보비의 말을 믿지 않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좀 미심쩍어할지 몰라도, 결국엔 보비의 말을 믿어줄 것이라는 것이 보비의 생각이었다. 만약 바미와 솔이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는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 보니, 보비 역시 결국엔 친구들을 믿을 것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친구이기 때문에 무조건 믿는다는 것은 아니야. 물론 친구이기 때문에 믿는 것도 있지만... 내가 아는 바미와 솔은 믿을 만한 애들이거든. 바미는 똑똑하고 용감하고 상상력이 풍부해. 그리고 솔은 침착하고, 종종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야기할 때가 많아. 그런 둘이서, 나를 속이려고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왠지 말이 안 돼. 우리 셋은 서로 잘 통하고, 믿고, 좋아하고, 친한걸.’
보비가 말을 꺼내지 않자, 둘은 보비를 계속 쳐다봤다.
“대체 뭐?”
바미가 한 번 더 물었다.
“있잖아... 최근에 나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어. 차근차근 설명하려면 엄청 긴 이야기가 될 거고, 또 나도 아직 이해를 못 하는 부분들이 있어서 지금 너희에게 이야기를 해 주긴 좀 그래. 나 자신도 지금 좀 얼떨떨하거든. 토요일에 음, 새로 알게 된, 음, 사람들, 친구들을 만나러 갈 거야. 그리고 궁금한 부분을 같이 알아볼 거야. 그러고 나서 너네랑도 같이 이야기를 해 보고 싶어.”
보비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허둥지둥 뒤죽박죽 이야기를 했다. 바미와 솔은 꽤 오랫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마침내 바미가 먼저 말을 꺼냈다.
“보비, 너 설마... 무슨 이상한 사이비 종교 이런 데 가입한 거야? 아니면 다단계 이런 거 아니니? 너한테 무슨 물건 사라고 하던, 그 친구들이? 요즘엔 애들한테도 안 가리고 막 들이댄다더라.”
“뭐? 아, 이런. 아니야! 절대 아니야!”
라고 보비는 웃음을 터뜨리면 말했다. 보비의 웃음에 바미도 피식 웃고, 솔도 웃음을 터뜨렸다. 셋은 한참을 같이 웃었다. 마침내 솔이 똑 부러지는 어조로 말을 꺼냈다.
“보비야, 이상한 사이비 종교나 다단계가 아니면... 혹시 무슨 범죄와 관련된 건 아니지? 이상한 약이나, 아니면 도박이나, 아니면 조직범죄나, 아니면 이상한 어른들이 만나자고 한다던가, 이상한 동영상을 보내라고 한다던가... 아이고, 나도 잘 모르겠다. 하여간 말이야. 나는 널 믿어, 넌 이상한 애도 아니고, 바보도 아니고, 나쁜 애도 아니고. 그건 바미도 마찬가지일 거야. 나는 너와 바미를 둘 다 아주아주 좋아하고 믿어.”
다른 사람은 얼굴을 조금 붉히거나 주저할 수도 있는 말을 솔은 아주 침착하고 진지하게 했고, 듣는 사람들 역시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네가 무슨 이상하거나 위험한 일에는 끼어들었으리라곤 생각지 않아. 하지만 원래 이상하거나 위험한 것들도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잖아. 그래서 우리는 당연히 친구인 네가 걱정이 되는 거야.”
바미 역시 열심히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무슨 말인지. 그리고 나도 똑같아. 나 역시 너희한테 무슨 일이 있을지 걱정될 거야. 그런데 정말 무슨 범죄나 사이비 종교나 아니면 이상한 그런 건 아니야. 이상한 일이긴 한데, 또 전혀 말이 안 되는 건 아니고. 약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일이야.”
솔은 고개를 끄덕였고, 바미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토요일은 왜 물어본 거야? 토요일에 그 새로운 친구들과 어디를 간다면서?”
솔이 물었다.
“그것 때문에 그래. 그날 아침에 집을 나섰다가 오후엔 일이 다 끝날 계획이거든. 어디 멀리 가는 건 아니고 동네야. 학교 근처. 그런데 그날 부모님한테는 너네들이랑 같이 있을 거라고 하려고. 알아, 알아. 거짓말하는 건 나쁜 거지.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일단 먼저 궁금한 것을 좀 알아본 다음에, 너네랑 이야기할 거야. 그다음에 부모님한테도 말씀드리고.”
이후 한참 동안, 세 친구는 실랑이를 벌였다. 보비의 확언에도 불구하고 솔과 바미 두 친구는 여전히 못 미더워했고, 보비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 안전한 것인지를 미심쩍어했다. 보비는 두 친구를 안심시키느라 진땀을 뺐다. 두 친구들에게 다 털어놓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보비 자신도 모르는 게 많은 데다가, 왠지 아마님과 상의하지 않고 아마님의 이야기를 털어놓아도 될 지도 좀 주저되었다.
“토요일까지만 기다려줘. 토요일이 되면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거야. 그때 이야기할게.”
셋은 좀 더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보비가 두 친구에게 이상한 집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바미는 가족과 낚시를 가게 되었으니, 보비는 솔이와 같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 것으로 한다. 만일을 위해 솔이는 그날 도서관에 가 있는다 (솔이도 책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이 부분은 문제가 없었다). 5시까지 보비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거나 보비가 도서관에 나타나지 않으면 두 친구는 서로 연락해서 다시 한번 확인한다. 5시 30분까지도 보비가 나타나지 않으면 두 친구는 바로 보비 부모님께 가서 간단히 상황을 설명한 후, 보비가 알려준 이상한 집으로 함께 가 보비를 찾는다. 이상이 세 친구가 합의한 계획이었다. 보비 입장에서도 처음엔 좀 주저되었지만, 막상 친한 친구들에게 이상한 집의 위치와 대강의 일정을 알려주고 나니 안심이 되었다. 아마 님과 올리 씨와 함께 가는 것이라서 별로 큰 걱정은 되지 않았지만,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기면 든든한 친구들이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힘이 솟았다.
‘생각해 보니, 난 거기도 여기도 다 좋은 친구들이 있어. 난 운이 좋아.’
라는 생각을 하며 보비는 미소를 지었다.
“야, 너는 지금 웃음이 나오냐? 이제 나랑 솔이는 너 걱정하느라 토요일까지는 계속 초조할 텐데.”
라며 바미가 보비의 팔을 퍽 치며 말했다. 아야야 하고 엄살을 떨며 보비는 같이 장난을 쳤다. 바미가 장난치듯이 말했지만, 보비는 두 친구가 진짜로 자기 걱정을 많이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토요일이 되었다. 초여름의 상쾌하고 살짝 더운, 아름다운 날이었다. 보비는 기분 좋게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오늘이야. 좀 떨리긴 한다.’
라고 생각하며, 보비는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을 먹고, 보비는 집을 나섰다. 부모님께는 미리 솔과 함께 도서관에서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드려놨다. 보비는 익숙한 길을 뛰듯이 걸어가 이상한 집 앞에 도착했다. 집으로 다가서기 전, 보비는 잠시 서서 집을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보았다. 지금은 물론 많이 친숙해진 모습이지만, 처음에 느꼈던 이질적인 느낌은 여전했다. 겉면이나 지붕을 보면 낡았는데, 집을 둘러싼 나무며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닦인 창문, 깨끗해 보이는 커튼, 창문가의 장식 인형을 보면 누군가 살면서 잘 돌보는 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이런 게 아마님이 이야기한 ’바깥세상에서 봤을 때 너무 튀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것‘일지도 몰라. 도둑이 이 집을 본다면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겠지. 그냥 낡은 가정집 느낌이니깐. 노숙자나 그냥 빈 집에 들어가서 장난을 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안 들어갈 거야. 분명 누가 살고 있는 집이란 생각이 들 테니 말이야.’
보비는 시선을 위로 옮겼다.
‘저 2층이 역이란 말이지. 여기 역은 어떻게 생겼을까? 기차는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다니는 걸까? 다들 몸이 없으니 둥둥 떠다닐 수 있을 텐데, 아마 기차도 그렇게 다니겠지. 3층은 잘 안 보여. 빛이 반사되어서 그냥 반짝이는 창문만 보이는걸. 저기 저 끝 방이 내가 본 방이겠지? 물론 내가 본 건 건물 뒷면이니깐 똑같은 방은 아닐지도 몰라. 저건 복도를 사이에 두고 이쪽을 보고 있는 방이고, 내가 그때 본 건 건물 뒤쪽을 보고 있는 방일 수도 있어. 뭐, 나중에 좀 더 알 수 있겠지.’
보비는 어깨를 으쓱하고 울타리로 들어섰다. 이제 익숙해진 덤불 틈을 빠져나오니 바로 자전거와 공이 보였다.
“안녕, 오늘은 함께 있네. 그런데... 너도 말을 알아듣는 공이니? 자전거처럼 말이야.”
보비는 손을 흔들며 인사하다가 문득 물었다. 공은 잠시 있더니 빙그르르 돌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보비는 잠시 놀랐다가 다시 싱긋 웃었다.
“반가워. 난 보비야. 여기 자전거랑은 이미 친구야. 너도 내가 여기 온 첫날에 봤잖아, 그치?”
공은 다시 빙그르르 한 바퀴 돌았다.
“난 이제 아마 님네 갈 거야. 너도 같이 갈래?”
자전거와 공은 각자 뛰고 도는 것으로 대답을 했고, 보비는 자전거에게 타도되냐고 물었다. 자전거의 찬성 대답을 본 후 보비는 올라탔고, 공도 보비 뒤에 올라탔다. 자전거는 평소처럼 부드럽고 빨리 달려 순식간에 도착했다. 아마 님네 집이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보비는 아마님과 올리 씨를 멀리서 알아볼 수 있었다. 아마 님과 올리 씨는 정원에 서서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보비는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며 손을 흔들었고, 두 사람도 고개를 들어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보비는 도착하자마자 자전거에서 내려와 다시 인사를 했다.
“오늘은 공도 같이 왔어요. 제가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 보니, 자전거와 공이 같이 있더라고요. 같이 가겠냐고 물어봤더니 좋다고 해서 같이 왔어요.”
“그렇구나. 안녕, 얘들아. 올리 씨와 나는 오늘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어.”
보비는 아마님과 올리 씨의 엄지손가락 위에서 빛나는 물체를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보비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느낀 아마님이 웃으며 말했다.
“이건 우리의 전화기 같은 거란다. 집에도 전화기가 있는데, 그건 집에 있을 때만 쓸 수 있지. 이건 휴대할 수 있는 거야. 스마트폰처럼. 하지만 스마트폰처럼 검색이나 게임이나 그런 걸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뭐, 우리는 사실 그런 게 별로 필요가 없고, 잘 안 하기도 하고. 정말 필요할 땐 컴퓨터가 따로 있으니깐 말이야. 이건 그야말로 개인 간의 의사소통을 위한 거지.”
빛이 꺼진 물체는 아주 작았다. 완두콩 한 알만한, 아니 그보다도 더 작은 크기의 동그란 흰색 단추 같았다. 저 작은 걸로, 도대체 뭘 어떻게 한다는 걸까 하고 보비는 생각했다. 말을 하거나 들을 수 있는 장비 같아 보이지 않는데 하고 말이다.
“이걸 이렇게 서로 페어링 하면”이라고 하면서 아마님과 올리 씨는 각자의 엄지손가락 끝에 있는 하얀 단추를 맞대었고, 두 개의 단추는 잠시 후 번쩍번쩍하는 빛을 내었다. 꼭 무슨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빛이 몇 번 더 번쩍댔다가 꺼졌다.
“이제 두 장치 간에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
라며 아마님과 올리 씨는 그 단추를 각각 소매 끝과 목둘레 깃 끝에 붙였다.
“이제 이걸 톡톡 두드리고 난 다음에,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하면 전달된단다.”
보비는 입을 벌린 채로 그 단추 같은 것을 쳐다보다가, “와”하는 외마디 감탄사를 내뱉었다.
“하하하하, 여기에선 다들 시간이 많고, 연구하길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거든. 이런 희한하고 재미난 것들을 만들어 내지. 우리는 몸이 없으니, 신체적인 제약이 없어. 정신으로 구성된 존재니깐, 생각을 서로 전달하면 되지만 여기에도 나름대로의 방법과 장비가 필요하지. 이건 상용화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 아직 좀 비싸단다.”
“자, 그럼 이제 우리 계획을 다시 한번 정리해보자.”
아마님이 예의 차분한 어조로 정리한 셋의 계획은 이랬다 - 셋 다 같이 역 건물로 간다. 아마님이 먼저 올라가서 캅투 씨에게 기차 여행에 대해 물어볼 것이 있다고 말을 건다. 아마님은 이미 친구를 방문하겠다는 계획과 물어볼 질문들을 시시콜콜 다 준비해 두었다. 이때 첫 번째 기차가 들어오고 캅투 씨는 바빠진다. 승객 명단과 승객 도착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아마님은 기다리겠다고 하고 잠시 플랫폼에 앉아 있는다. 바로 이때 아마님이 올리 씨에게 신호를 보낸다. 그러면 올리 씨와 보비는 바로 3층으로 올라간다.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2개로, 건물의 양쪽 끝에 있다. 보안막 때문에 3층으로 접근하지 못할 경우, 바로 다시 내려와 밖으로 나온다. 올리 씨는 아마님에게 신호를 보내 밖으로 나왔음을 알린다. 신호를 받은 아마님도 적당한 핑계를 대며 나온다. 3층에 접근할 수 있을 경우엔, 당연히 내부를 살펴보고 안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수상한 것이 없는지 살핀다. 보통 기차가 3~4대 있는 토요일 오후엔 캅투 씨가 항상 2층에서 대기하고 있지만, 만에 하나 캅투 씨가 3층으로 올라갈 기미가 보일 경우, 아마님은 즉시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캅투 씨의 주의를 돌려 올라가지 않도록 한다.
“간단하고 잘 정리된 것 같아요.”
보비는 계획에 대한 감상을 말했다.
“그렇게 이야기해 주니 고맙다만... 항상 예상치 않은 일들이 생길 수 있지. 갑자기 캅투 씨가 사무실로 올라간다고 3층으로 갈 수도 있고. 아예 3층 전체가 막혀서 못 들어갈 수도 있어. 또 3층에 올라갔는데, 방들이 모두 다 닫혀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올리 씨는 심각한 어조로 말을 멈추었다.
“아니면 뭐요?”
“막상 방도 다 열려있고, 다 들어가 볼 수 있는데, 아무것도 없을 수 있지.”
“아... 하지만 분명 무슨 소리도 들렸고, 번쩍하는 빛도 봤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막상 가 봤더니 아무것도 이상한 것이 없다고 해. 그렇다면 그건 두 가지 경우에 해당되겠지. 우리가 착각하고, 캅투 씨 말대로 전기 합선이 일어났고 고양이들이 야옹 댄 것이 맞는다는 얘기 거나, 아니면... 아니면, 캅투 씨나 다른 누군가가 이미 그곳을 싹 치워 버려서 남아있는 것이 없거나.”
올리 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보비는 왠지 초조함을 느꼈다.
“뭐, 지금부터 그걸 걱정할 필요는 없지. 우리는 그걸 알아보러 가는 거니깐.”
이라고 아마님이 침착하게 말하고, 올리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셋은 다시 미소를 띠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자, 갑시다!”
라고 올리 씨가 외쳤고, 셋은 같이 이상한 집이자 역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