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잡콩 Mar 07. 2019

[잡기] #3 : 물을 얼리는 일

티 안나는 배려 

집에서 직접 물을 얼려드시나요?



얼음 정수기를 사용하거나 얼음을 마트에서 사먹지 않고, 조그만 틀에 얼음을 얼려먹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바로, '얼음을 얼리는 일'이 생각보다 손이 많이가고 귀찮다는 것.



우리집 냉장고 한켠에는 늘 얼음을 얼리는 틀이 장착되어 있어, 얼음을 사먹지 않고 먹고싶을 때마다 얼려먹곤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한번에 얼려지는 양이 많지 않기 때문에, 하루 이틀만에 얼음을 다 써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얼음을 다 먹고 나면, 누군가는 빈 얼음틀을 밖으로 꺼내어 다시 생수를 붓고, 냉장고 안에 집어 넣어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다음에 얼음을 먹고 싶을 때 얼린다면, 3시간이 넘게 기다려야만 시원하게 얼려진 얼음을 먹을 수 있게 된다.



이 말을 듣고 다수의 사람들은, "그거 뭐 어렵지도 않은데, 그게 왜?"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쉽지만 매우 하기 귀찮은 일이라는 걸 알 것이다. 특히, 혼자 사는 집이 아니라 가족이 다같이 사는 집이라면, 이 문제는 더욱 성가신 일이 될지도 모른다. 내가 얼려놓은 얼음을 다른 가족들이 꺼내 먹기만 하고 제때 채워넣지 않는 것은 매우 짜증나는 일이 될 수 있다. '나는 했는데, 왜 다른 사람은 안하지?'하는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집 안 가사 노동에는 이런 보이지 않는 쉽지만 번거로운 노동들이 숨어 있다.


빈 휴지를 채워넣는 일

빨래를 제때 돌리는 일

설거지를 쌓아두지 않고 해치우는 일



이들은 어렵지 않아 보이지만, 매번 한 사람이 이 일들을 담당하게 되면 그 피로도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어머니가 하셨던 가사노동의 어려움을 직접 자취를 시작한 사회 초년생들은 그제야 비로소 알게 된다.

직접 해봐야 그 노동, 그 배려의 가치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얼음을 얼리는 일' 등은 사소해보이지만, 한 개인의 일상의 유지하는 소중한 한 부품이다.

즉, 이런 안보이는 배려들이 모여 개인의 일상이 불편없이 유지되는 것이다.



가사노동 외, 인간관계에도 보이지 않는 배려는 항상 삶 곳곳에 숨어 있다.



만약, 누군가 자신에게 일정 주기마다 먼저 연락을 한다거나, 생일이나 경조사에 때맞추어 안부문자를 보낸다거나, 우울한 날에 함께 맛있는 걸 먹어준다면, 우리는 그 보이지 않는 배려를 받아, 그 힘들을 동력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쉬워보이지만, 제때 신경쓰지 않으면 돌보기 쉽지 않은 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상의 인간관계들은 마치 '얼음을 얼리는 것'과 같아 한 사람만 일방적으로 노력한다면, 곧 냉장고에서 얼음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얼음을 얼리던 이'는 알아주지 않는 외로움과 피곤함에 그 일에서 벗어나기를 선택하고, '얼린 얼음을 꺼내먹던 이'는 그제서야 삶의 소중했던 이의 부재를 깨닫게 된다.



이런 슬픈 상황과 마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지속적으로 서로 공유하는 '얼음칸'을 점검해야 한다.

얼음이 잘 얼어가고 있는지, 제때 물을 부어 얼음을 얼리는 것을 잊지는 않았는지, 혹시 너무 일방적으로 얼음을 얼리고, 꺼내먹고 있지는 않은지.



서로의 얼음칸의 시스템을 속속들이 알게 되는 순간, 그 관계는 배려안에서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원동력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 삶에는 '타인의 보이지 않는 배려'가 얼마나 더 있을까요?


작가의 이전글 [잡기] #2 : 평균의 함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