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주식에 내재가치란 것이 실재할까? 노동이라는 개념만이 가치의 실재를 입증할 수 있다. '부의 원천은 노동'이라는 애덤 스미스의 말로부터 시작하여, 리카르도의 '노동가치설' 그리고 종국에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론'으로 이어지며 노동에 기반한 경제적 가치 개념이 정립되어 왔다. 하지만 사회가 복잡다단해지면서 우리의 인식 속에 노동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육체노동의 비중이 줄어들고 정신노동의 범위가 확장되며 노동의 의미가 모호해져 버렸다. 여기서 노동가치의 본질적 부분을 정의하려 하지 않겠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말도 있듯이 본질을 논하기 전에 우리가 노동가치를 중심에 놓고 현상을 이해하려는 결심이 왜 중요한지 말하고 싶다.
주식시장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현상의 중첩들을 보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온갖 휘황찬란한 미사여구들이 가치의 최대치, 최저치를 오락가락하게 만들며 주식가격의 오르고 내림을 설명하려 든다. 오랜 기간 경험하다 보면 모든 설명과 해석들이 사후약방문 격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종국에는 철저한 회의주의자가 돼버린다. 가치의 실재란 것이 있을 수가 없으며 모든 것이 허상이라고 믿고 싶게 된다. 마치 신을 열렬히 찬양하다 불신자가 돼버린 꼴이다. 그러다 보면 서로가 속고 속이는 야바위 판으로 주식시장을 바라보게 되며, 샀다 팔았다를 반복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실용적인 관점에서라도 최소한 가치의 실재는 노동에서 연유한다고 믿는 게 현명하다.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는 기업이 주식시장에서 승자이고, 안타깝게도 경영자가 노동자의 피와 땀을 환상적으로 뽑아가는 기업이 주식시장에서는 더 큰 승자이다.
주식에 내재가치가 있다면 노동만이 그 가치의 연원임이 분명하다. 노동이라는 개념의 추상성 때문에 노동가치를 본질로 보게 되면 내재가치란 수학적으로 계산 불가능 할 것이다. 오히려 CEO의 인물 됨됨이, 그리고 그가 제시하는 비전이 얼마나 노동자들의 열과 성을 끌어올릴 수 있느냐가 수학적 계산이 불가능한 가치의 핵심일 것이다. 고로 노동이라는 추상과 이를 둘러싼 전체를 직관하는 정신의 소유자가 알파값을 누리는 자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가치의 총합인 주가지수에는 이러한 인식론적 사유 너머에 정신의 총체로서 존재론적 존재함이 있다고 믿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앞으로 계속 이와 관련된 사유를 이어나갈 작정이다.
(미국을 제외한 타 시장에서의 하방압력이 미국증시에 마저도 즉자적 압력으로 작용하여 상방이 제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