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은 원래 어려운 화두라 봅니다. 책이나 조언도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빨리 이해가 되는 사례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영화, 드라마, 소설, 고사 속에 나오는 촌철살인의 명장면을 뒤졌습니다. 수년동안 직접 또는 주위의 도움을 얻어 수집한 1000여 개가 넘는 장면들을 모았습니다. 이제 그 보따리를 하나씩 풀어보려 합니다. 물론 영화, 드라마는 조금 때가 지난 것이 많긴 하지만 그 장면이 주는 메시지는 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매거진은 오픈으로 하였습니다. 다른 분들도 영화나 책을 보다가 그런 장면들을 보면 언제나 들어오셔서 함께 이야기를 풀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설득의 상황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필요한 경우는 무엇보다 상황이 긴급할 경우 일 것이다. 상대의 감정이 고조되어 있다거나, 자칫 시간을 놓치면 나중에 아무리 좋은 방안이 있더라도 소용이 없게 되는 경우가 그렇다. 이럴 때 당황하게 되면 나의 입장에서 억지로 상대의 행동을 바꾸려는 생각이앞서게 된다. 그러나 그럴 경우 상황은 오히려 악화될 수가 있다. 이럴 때일수록 상대의 심정을 헤아려 스스로 마음을 돌리게끔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자존감을 주어라
진나라 소왕의 신하에 중기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중기는 소왕과 논쟁을 하다가 화가 잔뜩 난 왕을 본체만체하고 나가려 했다. 중기와 가까운 다른 신하가 옆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사태를 이대로 놓아두면 중기에게 화가 미칠 것이 뻔하였다. 이에 그는 왕의 자존감을 치켜세워 상황을 모면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왕에게 정중히 아뢴다. “상대가 명군이니까 다행히 아무 일 없이 끝났습니다만 이것이 만일 폭군이었다면 영락없는 주살감이옵니다.”친한 중기를 헐뜯어 내리고 대신 소왕을 ‘명군’이라 치켜세운 것이다. 소왕도 생각하기를 그 정도의 일로 중기를 벌한다면 폭군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고 중기를 벌하지 않게 된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앞을 못 보는 주인공 프랭크는 자포자기 상태로 자결을 할 직전에 있다. 이를 젊은 찰리가 설득하는 장면이다.
프랭크가 말한다. ‘난 사는 게 아냐! 난 어둠 속에 있어!’ 찰리는 말리지 않는다. ‘그럼 포기하세요.. 방아쇠를 당겨요..’ 상대가 의외로 나오자 프랭크 멈칫한다. ‘넌 죽고 싶지 않을 테지.’‘당신도 마찬가지죠.’이에 프랭크가 한발 물러선다. ‘내가 죽지 않을 이유를 하나 대봐.’‘두 가지를 대죠. 당신보다 탱고를 잘 추고 페라리도 잘 모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결국 찰리는 중령의 손에서 총을 놓게 만든다. 상대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상기시켜 준 것이다.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에서 보자. 서로 연인사이이던 사쿠와 아키. 어느 날 아키가 백혈병으로 투병을 하게 되고 아키는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자살을 하려 하는데 사쿠는 이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를 고민한다. ‘ 어차피 죽는다면 왜 괴로운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거냐고. 다들 졸업해서 사회에 나가고 결혼하고 그런 걸 옆에서 보면서 살아야 해?’하고 아키는 자조적인 말을 되뇐다. 사쿠는 아키의 장점을 알고 있다. 그것을 상기시키는 것이 방법일 것 같았다. ‘ 내가 알고 있는 아키는 코피가 나도 양호실에 가지 않아. 누구보다 지는 걸 싫어하고. 그러니까 나는 아키를 믿어. 절대로 배신하지 않아. “ 그간 자신이 사랑했던 그녀의 모습들 하나하나를 언급하며 다시 마음을 잡게 만든다.
드라마 ‘메디컬센터’에는 두 형제와 홀어머니가 나온다.
큰아들은 신장이 안 좋아서 일주일에 3번씩 투석을 하곤 하다가 유학을 가기 위해 동생의 신장을 이식을 받으려고 한다. 형은 명문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했고 사회에서 엘리트의 모습이다. 하지만 동생은 형의 반도 못 따라가고 어머니는 그런 형만을 위하고 동생은 안중에도 없었다.
동생은 그런 어머니가 미웠고 형도 좋지는 않았다. 동생의 신장을 이식하는 것도 동생의 의견은 전혀 없고 어머니의 일방적인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 동생은 주위의 시선과 어머니의 강압으로 수술을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수술 날 아침 동생은 수술을 펑크 내고 어디론가 사려졌고, 담당 여의사에게 저녁에 몰래 찾아갔다. 의사는 찾아온 동생에게 밥을 사주면서 그동안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동생은 그동안 소외된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수술을 하기 싫다고 말한다. "왜 내가 형한테 장기를 줘야 하는지 너무 억울하다"
그러자 의사는 "네가 주기 싫으면 하지 말아라."라고 일단 상대에게 결정권을 준다. 그러나 형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간절한 부탁이고 형도 바라는 점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러면서 이 일은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말하면서 남한테 베푸는 기쁨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동생은 형에게 장기를 기증을 하게 되고 소원했던 형과의 관계를 스스로 풀어버린다. 동생의 입장에 서서 그의 존재가치를 심어주는 의사의 현명한 접근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다급한 상황에서 용왕을 설득하는 토끼의 이야기에서도 주목을 할 부분이 있다.
"대왕이 어찌 이다지 의심하시나이까? 소신 같은 목숨은 하루 천만 명이 죽사와도 관계가 없사오나, 대왕은 천자의 위치에 있는 귀하신 옥체로 동방의 성군이시라 그 무게가 다르오니 , 만일 불행하시면 천리강토와 구중궁궐을 뉘에게 전하시며, 종묘사직과 억조창생을 뉘에게 미루시려 하나이까? 소신의 간을 아무쪼록 갖다가 쓰시면 환후가 즉시 회복되실 것이오, 그리되면 대왕은 만세나 향수하실 것이니...”기분이 좋아진 용왕은 결국 토끼의 계략에 넘어간다. 상대의 자존감을 어루만져 주는 효과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