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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걸침 Feb 21. 2024

사람 빼기

어느 지하철에 본 시다.

‘못을 빼기가 박기보다 어렵다. 그리고 아프다. 또 오래간다.’ 

빼야 되는 것도 많다. 모두가 살 빼기에 생사를 건다. 예비군에서 지겹도록 하는 피티체조가 아니라 수십만 원 목돈을 들여 헬스장 피티를 등록한다. 목에 걸린 생선 빼기는 위급하다. 조심해야 한다. 대형폐기물 수거하는 어플이름이 빼기이다. 귀엽다. 삶에서 더하기보다 빼기가 중요하다 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소유보다 존재를 하라는 성인들의 일갈이다. 집안에서도 덜 필요한 가구나 장식품들을 과감히 빼버리면 훨씬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 빼기의 시대이다. 말끔히 옷을 빼입고 점잔을 빼는 것도 이에 해당될까.   

    

많은 빼기가 있어도 한 가지는 쉽지 않다. 바로 사람 빼기. 늘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을 걷어낸다는 것. 늘 옆에 붙어 있던 사람의 사진을 오려낸다는 것. 조청같이 끈적한 기억에서 그 사람에 대한 것만 뽑아낸다는 것. 깨알 같은 대화 속에서 그 사람의 어록만 골라내 버린다는 것. 그게 어찌 쉬운 일일 수 있겠는가. 테이프를 떼면 종이가 같이 찢겨 나오듯이 가슴에 박힌 화살촉을 빼면 검은 피가 솟구쳐 나오듯이, 빼기란 그렇게 어려운 일일 것이다.    

 

형제들끼리 오랜만에 모여 점심을 하자고 예약을 했다. 약속한 사흘 전 아침 일찍 전화 한 통이 날아왔다. 큰 형님이 돌아가셨단다. 나의 미래상이 빠졌다. 점심상이 발인상으로 바뀌었다. 더운밥을 그만큼 먹었으면 되었지 하는 마음이셨을까. 찬밥 한 공기가 제상에 올려졌다. 제사 때마다 맨 먼저 향을 피우고 잔을 따르시다가 이젠 액자 속에 멈춰 잔을 내다보신다. 형님은 나와 거의 20년 차이다. 형님은 늘 나를 보면 20년 전의 자신을 보는 것 같다고 지금이 좋을 때라는 것을 고취시켜 주셨다. 형님 40대는 나의 푸른 20대였고 그가 50대일 때 나는 한창의 30대였다. 나는 그의 과거였고 형님은 나의 20년 후의 미래였다. 나는 늘 젊었고 항상 좋을 때였다. 그 자리에 계신 존재만으로도 형제들에게는 든든한 라이언킹이었다. 물론 그의 이상대로 삶이 따르지는 못했지만 언제나 웃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환한 모습이 이제 스틸사진이 되었다.      

큰형수님이 우리 가족에서 빠진 것은 형님보다 일 년 전이다. 열여덟에 결혼해 시집에 들어오니 시어머니 배가 남산이다. 결국 새색시가 시어머니 해산관부터 하게 되고 그렇게 태어난 것이 이 몸이다. 그러니 어머니와 무엇이 다를 바 있겠는가. 매해 설날과 추석, 제사 때마다 일에 치이고 시동생까지 챙기느라 자신의 생에 그럴듯한 더하기를 하지 못하셨던 분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의 말뚝을 대신 매어놓았던 분이다.     

  

형님상을 치르고 얼마 있어 형제모임이 있었다. 사진을 찍는데 늘 있어왔던 가운데 두 사람의 자리가 비었다. 그 자리를 좁혀 채우기까지 빼기에 익숙지 못한 우리는 한동안 시간이 걸렸다. 그 자리는 단순한 두 사람의 흔적이 아니었다. 몇십 년 가족사의 주인공이며 공동의 추억이며 크고 작은 기억이며 내가 스며들었던 역사며 우리의 모든 것이었다. 마치 이 자리에 같이 앉아있을 것 같은 숨결이요 진동이요 물결이었다. 

사진을 보니 좌우의 넓이가 눈에 띄게 좁혀졌다. 빠진 두 분이 남은  우리를 서로 밀착시켜주고 있었다. 못이 빠진 것은 아프지만 우리 마음은 서로 덧입혀져 가까워졌다. 

빼기는 더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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