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에는 아버지의 용기를 보여주는 자국이 남아있다.
사랑방 벽에 뚫린 구멍과 외양간 구유에 난 총알 자국. 그 두 가지의 흔적은 내가 자라면서 아버지를 우러르게 만드는 큰 요소였다.
내용인즉슨 이랬다. 아버님이 젊으셨을 때, 마을의 궂은 일을 보면서 산의 나무를 베어 파는 산판 일을 하셨다. 산판이 끝나고 돈이 들어온 날, 그 사실을 알고 밤에 3인조 강도가 들이닥친 것이었다. 아버지는 사랑채
에서 일꾼 몇 명과 잠이 들어 있었다. 강도 한 명은 밖에서 망을 보고 두 명이 들어와 당시의 권총인 육혈포로 일꾼들과 아버지를 위협하고 돈 내놓을 것을 강요했다. 아버지는 자는 척하면서 이들의 거동을 살피고 있었다. 잘못하여 반항하면 목숨을 빼앗길 판이다. 한 놈이 잠자는 아버지의 머리에 총을 들이대면서 일어나라 소리쳤다. 아버지는 그 짧은 시간에 궁리를 하였다. 열한 남매를 키우는 가장으로 서 이 돈을 빼앗긴다는 것은 거의 일 년 농사를 망친다는 것과 같았다. 총은 한 놈만 들고 있었다. 아버지는 끙 하고 일어 나는 척하면서 강도의 손에 든 육혈포를 낚아채는 쪽으로 계획을 잡았다. 갑자기 일어나면서 총을 잡아채려 하자 강도가 놀라 그대로 방아쇠를 당겨 버린 것이다. 총알은 아버지의 왼 손가락을 스치고 흙벽을 뚫고 외양간 구유로 날아가 박혔다. 놀란 강도가 넘어지자 아버지는 주먹으로 강도를 제압하였다. 또 한 명의 강도는 놀라 튀어나가서 밖에 있던 놈과 줄행랑을 쳤다. 아버지는 비록 손가락을 다치셨지만 그 많은 가족의 생계를 구했고 커다란 무용담을 남기셨다.
서울에 올라와 사회생활을 하면서 힘들고 용기가 없을 때면 나는 가끔씩 장롱에 넣어둔 비법책을 열어 보듯이 아버지의 그 사건을 회상하며 곱씹어 보곤 했다. 과연 그러한 아버지를 둔 내가 과연 이렇게 허약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목숨을 바쳐 내 가족을 지켜내는 아버지의 그러한 DNA가 내게 남아있기는 한가.
눈앞에서 오토바이나 경운기의 교통사고가 났을 때였다. 옆에 있던 누구보다 달려가서 피해자를 끌어내 놓고 119로 연락하거나 빠른 조치를 해낸 것도 그러한 맥락이었을까.
힘없는 부하직원을 괴롭히는 상사에 맞섰다. 그 대신 매를 맞으면서 고비를 넘겼던 일도 같은 줄기였을까.
한 번은 대형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자리였다. 객관적으로 보아 경쟁사보다 성능이 약한 제품에 대한 마케팅 계획안을 클라이언트에게 브리핑하는 회의. 몇 주의 밤을 새우며 고심 끝에 아이디어를 발표했는데, 거기에 앉아있던 간부들과 대리점주등 70여명이 하나같이 이러한 안으로 경쟁사를 이길 수 있겠느냐고 질책을 했다. 한 시간을 죄지은 사람처럼 듣고 있다가 해서는 안 될 말이 터져 나왔다. 어디에서 들었던 구절이었다. “제품이 좋으면 마케팅도 따라서 좋아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장날 개 패듯이 야단스럽게 거품을 물던 사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그 한마디에 얼음이 되었다. 회의는 그 한마디로 끝나고 같은 자리에 있던 내 상사는 얼굴이 하얘졌다. 몇백 억의 클라이언트가 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는 한 마디였다.
상사의 불같은 권유로 곧바로 상대 사장실을 찾아가 사죄의 말을 전했다. 그러나 그 쪽 사장님도 생각이 트인 분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요.’ 라면서 나를 돌려 세웠다. 나는 다른 팀으로 보직을 옮기는 것으로 하고 다행히 계약해지까지는 가지 않았다. 사실은 상대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나의 무용담은 회사는 물론 업계에 수년간 회자되었다. 나는 상사로부터 꾸중은 들었지만 부하나 동료들 사이에선 그들의 말하지 못한 속내를 터트려준 사이다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상당히 위험스런 용기였다. 어찌 보면 치기에 가까운 정도였다. 젊으니까 용서가 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더라도 상대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고 설득하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하긴 그 뒤에 물의를 빚었던 그 회사의 중역이 우리 회사를 다시 찾아왔다. 그러고는 “이번에는 제품을 잘 만들었으니 마케팅 계획안을 잘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웃으며 말하였다. 어찌보면 제품이 우선해야한다는 나의 치기 어린 말이 그 회사 제품개선의 계기가 되었나하는 억측도 들었다. 어쨌거나 그 회사는 10여년 뒤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이 사건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고 보다 사려있는 용기를 가지도록 이끌어준 경험이 되었다.
과감히 육혈포 강도를 제압하신 아버지,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그런데 한마디.
아버지, 혹시 젊은 치기로 그러시진 않으셨죠? 왜냐구요?
아니 그때 만약 그 총알이 아버지 머리나 가슴을 지나갔다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이런 훌륭한 아들이 세상에 못나올 뻔 하지 않았겠어요? 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