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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MH Nov 01. 2020

당황스러운 첫 만남

아이들과의 첫 만남에서 기선을 잡는 것이 교사에게는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그것이 언제나 그렇게 용이한 일은 아니었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황스러운 일이 터지기도 했다. 


방과 후 학교에 처음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 킨더가튼부터 6학년까지의 아이들이 섞여 있어서 다양한 발달과정과 그들 개개인의 흥미를 충족시켜줄 환경과 교육 방안을 마련한다는 것이 녹녹하지는 않았다. 


처음 며칠간은 아이들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입학서류는 아이들을 파악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동료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가며 아이들을 직접 파악하는 것이 큰 과제였다. 물론 매일 진행되는 회의에서 이것저것 정보를 듣고 나도 내가 파악한 사항에 대해 질문하곤 했지만 한 아이에 대해 내가 파악하기도 전에 엄청난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운동이나 요가 등을 위해 쓰는 큰 방에 몇몇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같이 공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하나 둘 흥미를 잃고 야외로 옮겨가고 어쩌다 보니 알렉스라는 아이와 나만 그곳에 짧은 시간 남게 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별다르게 기억할만한 사건 없이 그 날이 끝났는데 일은 그다음 날 발생했다. 알렉스가 더 이상 방과 후 학교를 다니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그 애의 어머니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그 이유가 황당했는데 내가 알렉스와 둘만 있을 때 그 아이의 팔을 비틀었다는 것이었다. 알렉스는 4학년이었는데 키가 나보다 컸고 단단한 체격의 남자아이여서 신체적으로도 그런 일이 발생하긴 어려웠지만, 일단 불만이 접수된 이상 우리는 긴급회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교사들의 입을 통해 알렉스가 교사를 음해한 것이 그때가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들었다. 당시 알렉스가 지명한 교사는 일을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거기에 재미를 붙이고 알렉스는 새로 온 교사에게 또 딴지를 거는 것 같다는 것이 다른 교사들의 의견이었다.


알렉스가 교사를 골탕 먹이려는 의도였다는 것이 교사들의 결론이었지만, 교사들은 바빠졌다. 어머니와의 단독 미팅을 먼저 하고, 알렉스를 포함시킨 전체 미팅을 또 하고, 상당량의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 일상의 바쁜 와중에 더해졌다. 또한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학생들과 교사가 일대일로 있는 시간을 갖지 않는데 더욱 노력하기로 했다. 사실 교사 혼자 한 학생과 단 둘이 같이 있는 시간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이지만 아이들이 자유롭게 이곳저곳에서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는 시스템에서 어쩌다 보면 단둘이 있는 시간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다 나를 위로해 주기는 했지만 나로서는 억울하고 명예가 더럽혀진 기분이었다. 알렉스의 얼굴을 보는 것이 부담이 될 지경이었으나 프로다운 면모를 보이려면 그 감정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어쨌든 나는 교육을 하는 사람의 입장이므로 알렉스의 심리적 안정을 꾀할 수 있는 활동을 생각해야 했고, 또한 나에 대하 신뢰를 쌓게 할 방안을 마련해야 했다. 


유심히 알렉스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알렉스가 유독 한 친구와 같이 있을 때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고 행동이 과격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 하나 더 발견한 것은 알렉스가 그림에 소질이 많다는 것이었다. 특히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라피티에 관심이 많았다. 그라피티를 모르는 나는 여기저기서 정보를 모았다. 그라피티에 쓰이는 3차원적 글씨를 따라 그릴 수 있게 복사를 하고, 괜찮아 보이는 그라피티 작품을 컬러로 복사해서 펼쳐놓고 알렉스를 맞아들였다. 아니나 다를까 알렉스의 눈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조용히 앉아 오랜 시간 그라피티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거친 행동을 유발하는 다른 친구와는 좀 떨어져 지낼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나는 슬쩍 옆에 앉아 같이 따라 그려보면서 알렉스의 그라피티를 칭찬해 주기도 하고 한 술 더 해서 나에게 가르쳐달라는 제안까지 했다. 말 수가 적은 알렉스는 작은 목소리로 자기는 그라피티를 가르칠 정도는 아니고 그냥 그릴 뿐이라고 대답했다. 


시간이 얼마 더 흐른 후 알렉스의 그림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난해해져서 제법 그라피티 같은 티를 내게 되었다. 어느 날 그림을 그리고 있던 알렉스가 자신은 커서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해왔다. 나는 공감을 하면서 나를 성장시키는 친구와 그렇지 않은 친구가 있다는 이야기를 넌지시 해 보았다. 알렉스는 조심스럽게 친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기도 하는 등 상당히 안정을 찾는 듯해서 은근히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편안한 날들이 계속되는 듯했다. 알렉스가 점점 더 마음을 열어가고 있어 마음이 놓인다라는 생각을 할 즈음 주말이나 방과 후에 동네에서 행동이 좋아 보이지 않은 형들과 알렉스가 어울려 다닌다는 소문이 계속 교사들의 귀에 들려왔다. 우리는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었으나 알렉스의 주변 환경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알렉스가 중학교에 진학한 후 엄마가 아직 일터에서 돌아오지 않은 방과 후의 시간에 집을 나와 거리를 방황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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