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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MH Nov 01. 2020

도저히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한 아이

다음 해 입학을 할 것이라면서 한 아이와 엄마가 찾아왔다. 그 엄마는 상담을 하고 입학원서를 쓰려고 온 것이었다. 호주에서는 입학하는 그 해 6월까지 만 5세가 되면 입학이 허용된다. 그러므로 입학 시기인 3월에는 만 5세가 되지 않은 아이들이 종종 있었다. 정식 학교는 1학년 전 단계인 킨더가든부터가 시작이다. 엄마 손을 잡고 센터를 찾아온 그 아이, 잭은 그때 막 만 4세가 되었을 때였다. 이제 얼마 후 입학 시기가 되면 4살 반이 될 터였다. 잭은 어찌나 귀여운지 모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다소 걱정스러운 면이 있었다.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바빴고, 잭의 엄마는 잭을 옆에 붙들어 두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들이 돌아간 후 우리 모두는 아이가 과잉행동 증후군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게다가 얼핏 보기에 언어 발달도 몹시 늦어 보였다. 잭의 엄마 말로는 아무 문제가 없고 단지 조금 주의력이 약하다고 했기에 그 말을 믿었다. 


어쨌든 그렇게 입학원서가 접수되고 시간은 흘러 잭이 입학하는 날이었다. 갓 입학한 킨더가든 학생, 학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린아이들이 처음 센터에 오는 날이었다. 고학년 아이들은 흥분했고, 우리도 어떤 아이들이 들어올까 들뜬 마음으로 만반의 준비를 했다. 아, 우리 모두는 얼마나 놀랐던가. 잭은 주의력이 조금 약한 것이 아니라 단 1초도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설명하고 듣는 과정이 가능하지가 않을 만큼 상호작용이 전혀 불가능했다. 잭은 교사들을 '엄마 mum’라고 불렀는데, 하루 종일 그의 뒤를 따라다녀도 잭이 혼자만의 세계 속에서 마구 행동하는 것을 멈추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규칙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비상사태였다. 학교에서도 난리가 난 모양이었다. 학교와 센터는 서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잭의 부모님들이 용기를 내어 잭이 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설득해야 했다. 설득하는 과정에서 혹여 부모님들이 상처 받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문제였다. 


부모 중 엄마는 장애를 부인하면서 아무 문제가 아니라는 처음의 생각을 우리에게 강요했으나, 잭의 아빠는 생각보다 쉽게 결심을 하셨다. 아빠가 엄마를 설득하시고 드디어  잭의 진단 결과가 나왔다. 아주 긴 이름의 병명이었으나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부터 잭을 전담할 수 있는 임시 교사가 한 명 더 왔으나, 한 사람으로는 부족할 지경이었다. 학교에서도 보조교사 한 분이 잭을 전담하는데도 불구하고 수업 중에 계속 학교 운동장을 뛰고 돌아다닌다는 전언이었다. 우리의 여러 가지 교육 계획이 먹히지 않고 있을 때 그야말로 엄청난 일이 연이어 터졌다. 


어느 날 모든 아이들이 실외 놀이터에서 여러 가지 놀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교사들 중 누군가는 잭을 주목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잭은 바깥 놀이터 일부를 가리고 있는 지붕 위에 올라가 있었다. 건물 구조상 바깥 놀이터에서 밖으로 나가는 계단을 올라가면 어찌어찌 지붕으로 올라갈 수는 있겠으나 그것은 어른들에게 해당할 일이었지 이제 겨우 1미터도 안 되는 키로 어떻게 가능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2층 창문을 통하면 그 지붕으로 갈 수도 있었으나 잭은 건물 안으로 들어간 적은 없었다. 모든 아이들을 대피시키고 난 후 여러 명의 어른들이 최대한 숨을 고르면서 잭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 안정시켜 천천히 걸어 나오게 해야 했다. 잭과 친분이 많이 쌓였다고 생각되는 교사가 2층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고 최대한 안정된 목소리로 창문 쪽으로 걸어오라고 부탁을 했다. 하지만 잭은 우리의 그 모든 노력을 비웃듯 위험해 보이는 지붕 위에서 펄쩍펄쩍 뛰면서 까르르 웃어댔다. 놀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잭을 지붕에서 내려오게 했는지 정확한 경로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지금 생각해도 등에 땀이 날 지경이다.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사고 보고서가 산더미였다. 무사하게 잘 해결된 것이 어딘가. 잭의 아빠께 그 하루의 엄청난 사건을 보고하니 웃으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전부였다.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이면 사실 충분한 일이었지만 너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행동하시는 학부모의 태도에 맥이 탁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집에서 너무나 많이 겪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잭을 위한 여러 교육 계획에 대해 회의를 하고 의견을 내고 했지만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해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결국 팔찌를 하나 만들었다. 그 팔찌를 끼고 있는 교사는 다른 데는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잭에게만 눈길을 주고 있기로 했다. 팔찌 낀 사람이 잭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느껴지면 언제나 누구에게나 그 팔찌를 넘겨주기로 했다. 잭과 함께 있다 보면 서로 소통이 안될 뿐 아니라 하지 말았으면 하는 행동들만 골라서 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정말 혈압이 오른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기 때문에 교사들의 심리적 육체적 피로를 높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에서만 잭을 전담함으로써 비상사태에 대처하고, 잭의 행동을 잘 관찰해서 좋은 교육방법을 찾아보자는 취지였다. 스스로 판단해서 평정심을 잃을 상황이 되어간다고 생각되면 언제든 다른 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그리고 불과 며칠 후였다. 모든 아이들을 데리고 가까운 공원에 체험학습을 나간 날이었다. 그곳에는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는 작은 식당이 있었는데 잭은 교사의 손을 잡아끌면서 감자튀김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지갑도 들고나가지 않은 상태에서 감자튀김을 사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억지로 달래었다고 생각되는 그 몇 초 후 잭은 공원 가장자리에 있는 큰 나무로 달음질쳐 뛰어갔다. 따라간다고 갔으나 어느새 그 나무를 오르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높은 나무의 끝에 가까워져 있었다. 위 쪽에는 나뭇가지가 가늘어지고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긴박한 순간이었다. 교사들 누구도 나무에 오를 자신이 없었을뿐더러, 나무에 오른다고 해도 잭이 나무에 오르는 사람을 피하려고 더 높은 곳으로 오른다면 큰 사고가 날 수 있었기에 정말이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구급대원을 일단 불렀다. 잭에게 눈을 고정시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사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젊은 청년 두 명이 용감히 나섰다. 청년 둘 다 나무에 올랐다. 잭의 주변을 맴돌며 조심스럽게 그를 끌어내렸다. 구급대원들에게 다시 전화해서 사태가 마무리되었음을 알렸으나 경찰 두 명이 어느새 와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는데 몸이 덜덜 떨리는 기분이었다. 체험학습은 중단되었다.


 한숨이 나오고 온 몸이 저려왔다. 연락을 받은 잭의 아빠는 웃으면서 자신의 회사가 그 근처인데 자신을 부르면 될 것을 뭣 하러 구급대원까지 불렀냐고 대수롭지 않게 대했다. 장애를 가진 아이 부모님들의 긍정적인 태도는 교육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부모님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가볍게 대하거나 또는 현실을 외면하려고 하는 태도는 교육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 아버지의 태도에 조금 서운하기도 했고, 제발 사태를 직시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으나,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그 집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전쟁 같을지 짐작이 가서 맘이 편하지 못했다. 또한 그 아버지는 웃으면서 넘기는 일 말고 뭘 더할 수 있을까 이해도 되었다.


두 번의 사건으로 우리 모두 너무 지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우리 센터에 온 아이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학교와 센터의 협의가 이루어지고, 우리들의 강력한 권고로 잭의 부모님은 상담과 치료를 받는 것에 동의했다. 그 효과가 우리가 기대하는 것만큼 빨리 나타나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우리가 잘하는 일은 아이를 관찰하고 흥미를 가지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파악한 다음 그 흥미를 발전시켜 재미있게 배울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우리가 아이를 꾸준히 관찰하고 관찰한 것을 서로 회의시간에 공유했다. 그 결과 비눗방울 놀이나 풍선놀이에 집중도가 높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런 놀이를 자주함으로써 잭과의 친숙도를 높여갔다. 점점 신뢰도가 높아지면서 잠깐이긴 하지만 교사들의 말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고학년 아이들이 잭을 따라다니면서 같이 놀아주기도 하고, 다른 어린아이들에게 해를 가하지 못하게도 하면서 교사들을 적극 도와주었다. 고마운 일이었다. 장애가 있다고 따돌리지 않고 함께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잭이 센터에 나타나기만 하면 교사들 모두가 긴장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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