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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ego emi May 30. 2024

헤어질 결심

어느새, 어학원은 겨울 방학을 앞두고 있었다.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모여 한인타운의 고깃집에서 간단한 종강파티를 했다.  그 당시 한국음식의 인기는 뜨거웠는데, 특히 삼겹살과 감자탕의 인기는 대단했다. 일본인 선생님들에게 잘 구운 삼겹살을 상추나 깻잎에 싸 먹는 법을 알려주고 사케보다 비싼 소주를 함께 마셨다. 나보다 한참 나이가 어린 선생님들은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도쿄로 유학을 온 나의 사연을 궁금해했다. 나는 빙긋 웃으며 그냥 그러고 싶었다 고 짧은 답을 했다.  정말로, 나는 그냥 그러고 싶었고 딱히 설명할 이유가 없었다.


기분 좋게 취해서 몸을 약간 휘청이며 현관문을 여는 순간, 깜깜한 어둠 속에서 ‘낄낄낄’ 혀를 차는 듯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불 꺼진 부엌 겸 거실 어딘가에서 희미한 불빛 앞에 담요를 둘러쓴 동그란 물체가 들썩였다. 내가 불을 켜자 이어폰을 꽂고 노트북으로 예능프로를 보던 무표정한 룸메이트가 나를 올려다봤다. “ 불 켜고 보지… 눈 버릴라…” 나는 애처로운 그녀의 고독한 밤을 애써 외면하며, 서둘러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짜고 매운 한국 음식 탓인지 새벽녘에 목이 말라 눈을 떴다. 물을 마시러 갈까 말까 망설이는 그때, 어디선가 ‘바스락바스락’ 하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이 집에 쥐라도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드는 순간, 오물오물 천천히 진득한 것을 씹는 소리가 ‘바스락’ 소리와 함께 간간히 뒤섞여서 들렸다. 나는 가만히 숨을 죽이고 그 소리에 촉각을 세웠다. 그 소리는… 벽 쪽으로 등을 돌리고 누운 위층 침대의 그녀에게서 새어 나온 것이 분명했다. 나는 조심조심 반쯤 몸을 일으키고 침대 밖으로 고개를 빼고 그녀를 올려다봤다.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늘 식사대용으로 먹던 지우개 크기만 한 직육면체를 먹고 있었다. 나는 다시 두 눈을 감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순간, 그녀의 굶주린 밤이 가슴 시리게 아파왔다. 그리고 미안했다. 매정하게 삼겹살 냄새를 풍기며 그녀의 허기를 자극했을 나의 무심함이… 새근새근 그녀의 숨소리가 들려올 무렵, 나는 이제 그녀와 헤어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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