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봄이 오기 전 나는 새집으로 이사를 왔다. 역과 멀지 않으며 시장골목을 조금 지나 작은 주택가 골목에 있는 4층 맨션의 2층이다. 제법 큰 통창이 있고, 빨래를 널 수 있는 베란다와 욕실이 딸린 아담한 방이다. 중고 가게에서 텔레비전과 꼭 필요한 가구를 사고, 식기와 조리기구등은 백앤샵에서 샀다. 일본 친구에게 선물 받은 하늘색 체크무늬 커튼을 달고, 큰 맘먹고 이케아에서 산 키다리 스탠드 등을 켜자,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도톰한 요 위에 엄마가 보내준 커다란 토끼가 그려진 캐시미어 담요를 깔고, 그 위에 대자로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며 혼잣말을 한다. ‘ 잘 부탁한다. 이곳은 도쿄에서의 새 보금자리이자 작업실이 될 것이다.’
그해 3월, 나는 2년제 전문학교에 입학했다. 내가 입학한 학교는 도쿄에서 가장 큰 디자인 전문학원이다. 만화, 게임, 디자인, 캐릭터, 일러스트레이션, 순수미술 등을 가르치는 곳으로 일본 각지에서 학생들이 모여든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의 첫날, 이 어리디 어린 일본 청춘들과 어떻게 2년을 지낼까 막막해하는 나에게 제법 성숙해 보이는 한 여인이 다가왔다. “ 안녕하세요, 저도 반은 한국 사람입니다. 어머니가 한국 사람이에요” 일본어 뉘앙스가 잔뜩 묻어났지만 또박또박 정확한 한국어 발음이었다. 나고야에서 온 Y는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일러스트를 그리고 싶어서 이곳에 온 믹스, 즉 혼혈이다.
“ 아… 정신없어. 이렇게 철없는 애들이 많을 줄이야…” 정신없이 수다를 떨며 게임을 하고 장난을 치는 학생들을 힐끔 거리며, 그녀가 혼잣말을 내뱉는다. 말없이 학교에서 나눠 준 안내서를 보는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겨온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언니라고 불러도 괜찮아요? 그냥 언니 같아서요”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자발적으로 나의 동생이 된 그녀 덕분에 나는 별 어려움 없이 입학에 필요한 절차를 가볍게 해결하고, 그 보답으로 근처 라면집에서 그녀에게 라면을 대접했다. 주인장에게 넉살 좋은 그녀가 늦깎이 신입생이라고 하니 잔멸치와 새우가루가 썩인 미니 후레 가키 덮밥을 서비스로 주었다. 왠지 시작이 좋다. 같이 그림을 그릴 친구가 생긴 운 좋은 날이다.
“수학여행을요? 음…… 그건 좀… 안 가도 되지 않을까요?” 나보다 5살이 어린 담임 선생님과 이런저런 학교 생활에 관한 면담을 끝내고 막 일어서는 나에게, 그는 방금 생각이 났다는 듯이 다급하게 말했다.
“김상, 수학여행은 꼭 가야 합니다!”
그는 입학금에 수학여행비가 포함되어 있음으로 별도의 비용은 필요 없다고 했다. 단지, 학우들과 친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반드시 참가해야 하며, 불참할 경우 향우 시작될 첫 수업의 과제와 장학금 신청에 불리해질 수 있다고 했다. 어마도 학교 내 왕따, 즉 집단 따돌림을 가장 신경 쓰는 일본 학내 문화의 영향인 듯했다. 자발적 왕따이고 싶었던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학우들과 잘 지낼 터이니 수학여행만을 빼달라고 간곡히 사정을 했으나, 선생님은 단호했다.
눈이 잘 오지 않은 도쿄에 싸릿눈이 내리던 날, 학교 앞에 길게 늘어선 관광버스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났다. 다행스럽게도 나고야 출신의 Y 덕분에 비교적 말이 없고 얌전하고 성숙한 무리들 틈에 낄 수 있었다. 버스 안에서 달뜬 마음으로 쉴 새 없이 떠들며 군것질을 하는 일본의 청춘들을 묵묵히 참아내며, 숙소에 도착했다. 호텔 로비에서 선생님들이 방 배정을 한 종이를 임시 방대표에게 나눠주며 프론터에서 키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역시 또 다행스럽게도 나고야 출신의 Y와 같은 방으로 배정된 나는, 임시 방대표가 된 그녀가 잰걸음으로 씩씩하게 키를 받으러 간 사이에, 여전히 왁자지껄 떠드는 학생들의 무리와 저만치 거리를 두고 혼자 서성였다. 그때였다. 전형적인 호텔리어의 상냥한 미소를 머금은 한 직원에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 선생님은 이쪽으로 오셔서 우선 키를 받으시면 됩니다” 순간 당황한 나는 어색한 손사래를 치며 황급히 무리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 그래… 이 편이 났겠다. 하긴… 선생님으로 보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
그 일 이후, 나는 수학여행 내내 나고야 출신의 Y가 중심이 되어 모인 비교적 얌전하고 성숙한 무리들 곁을 한 번도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들과 함께 시큼한 우메보시가 올려진 도시락을 먹고, 끈적한 까만 설탕물이 줄줄 흐르는 당고를 간식으로 먹고, 고성이 그려진 엽서를 기념품으로 사고, 브이자를 그리고 김치를 외치며 사진도 찍고, 알록달록한 다양한 소다를 수시로 마셨다. 그렇게 나는 두루뭉술 성격 좋은 한국에서 온 나이 많은 동급생 언니가 되었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