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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ego emi Jun 13. 2024

전철 안의 부고 방송

저 멀리 희미하게 들리는 열차 소리에 눈을 뜬다. 기다렸단 듯이 맞춰놓은 알람이 울린다. 서둘러 샤워를 하고 점점 불어나는 가방들을 주섬주섬 챙겨 들고뛰는 걸음으로 역으로 향한다. 행여나 수업시간을 쓸 종이나 스케치북이 구겨질까, 어깨에 맨 가방을 아기 포대기처럼 소중히 앞으로 돌려 감싸 안고, 서는 역마다 밀려드는 사람들과 쭈뼛쭈뼛 최대한의 거리 두기를 한다. 익숙한 목소리의 역무원이 도착역 알리며 조심해서 내리라 는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한다. 점점 사람들과의 거리가 밀착되고 후끈해진 공기 때문인지 숨이 막혀온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도쿄의 열차는 지하가 아닌 지상으로 다닌다는 사실이다. 어쩌다 운이 좋게 출입문쪽에 자리를 잡으면 깎아놓은 듯한 아기자기한 일본의 주택가를 내려다보거나, 가늘게 찢어놓은 솜사탕 같은 구름이 덮인 파란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다. 누군가 그랬다. 진짜 하늘의 색이 궁금하면 도쿄의 하늘을 보라고.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 소라색이라고 부르던 그 색이 바로 하늘색이었다. 소라… 일본어로 하늘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잠시 감상에 빠질 즈음이면… 덜컹거리는 열차 안의 침묵을 깨며 어김없이 담담한 목소리의 안내방송이 흐른다. 그 어떤 당황스러움도 다급함도 없다.  같은 라인의 역에서 자살 사고가 있어 열차가 지연되게 되었으니, 만약 지각 증명서가 필요하시분들은 내리는 역에서 역무원에게 반드시 받아가라는 내용이다. 하루를 시작하는 이른 아침 시간에, 그것도 사람들이 가장 붐비는 역에서, 누군가 자신의 몸을 투신하여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그 사실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만큼 놀라운데, 그것으로 인해 회사든 학교든 지각을 하게 된 것을, 역무원이 나눠주는 손바닥 만한 종이조각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사실이 낯설고 섬뜩했다. 나는 등굣길에 이 방송이 나올 때마다 카운트를 해보았다.  바를 정자가 2번 머릿속에 그려졌다. 아른 아침 갑작스러운 누군가의 부고를, 날마다 이 열차 속에서… 나는 10일간 들어야 했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명복을 빌었다. 다음 날부터 나는 세는 것은 포기했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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