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맨부커상에 빛나는 명작 줄리언 번스의 소설의 제목이다. 그렇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이 예감이라는 감각은 좋은 쪽 보다 나쁜 쪽으로 더 민감하게 안테나를 세우고, 그것이 단순히 오고 가는 감정이 아니라 크고 작은 사건의 서막임을 깨닫게 한다. 이런 식의 예감이 나에게 무척이나 발달되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된 것은 중학생 1학년 무렵이었다. 그날따라 좋은 일이 생겨도 마음이 괜스레 무겁고, 급하게 먹은 점심처럼 마음이 답답했다. 다 같이 떡볶이를 먹고 엄마의 모임 탓에 집이 빈 단짝 친구의 집에서 숙제를 하자는 제안도 거절한 채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경비실에서 열쇠를 받아 들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깔끔하게 청소된 집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안방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조심조심 나도 모르게 까치발을 하고 방안에 들어서자 마치 도둑이 든 것처럼 장롱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이불장에 쌓아 놓았던 담요며 솜이불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나는 집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을 직감했다. 아버지 회사로 전화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는 고민할 때, 덜컥 문 여는 소리가 났다. 엄마였다. 나는 와락 엄마의 품에 안기며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엄마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동생이 학교 앞 횡당보도에서 교통사고가 났는데 거의 죽을 뻔했다고 했다. 트럭 바퀴에 옷자락이 끼여 질질 끌려갔는데 다행히 큰 부상이 없었다고 했다. 입원준비를 급히 하느라 방이 난장판의 되었다며 엄마는 옅은 미소를 띠었다. 오후 내내 나를 짓누르던 불길한 예감이 바로 이것이었던 것이다.
그 후로, 나는 이유 없이 걱정이 앞서면 불안해지기 시작했는데, 대부분의 걱정은 현실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지만 예감의 영역은 불안과는 다른 듯하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식스센스, 즉슨 직감과 비슷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너무나 평화로는 날들이 이어질 때 혹은 알 수 없는 불안한 감정들이 속시원히 떨쳐지지 않는 찜찜한 날들이 이어질 때, 불현듯 닥치는 어떤 예감은 좋은 쪽 보다 나쁜 쪽일 확률이 높았다. 나의 경우는.
대모님의 가게는 예상을 뛰어넘고 순항하고 있었다. 어머님의 훈훈한 인심 덕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쌈 문화에 익숙지 않은 일본인들에게 친절하게 고기를 쌈에 싸서 먹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한몫을 했다. 게다가 일본어가 서투른 한국 아르바이트생들도 손짓 몸짓을 더해가며 먹는 법을 시연하고 알려주는 것이 그들에게 진솔하고 귀엽게 보이는 듯했다. 오픈 시점에는 손님이 반짝하다가 없을 경우가 많다는 점장의 예상을 뛰어넘은 것이다. 그는 그 공백을 자신의 옛 단골들이 채우겠다는 으름장을 놓았으나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았으며, 어쩌다 찾아온 그의 손님들에게는 과다한 서비스를 베풀었다. 나는 그것이 눈에 거슬렸으나, 어머님은 점장의 사기를 높여주어야 한다며 모른 척을 했다. 크리스마스이브 날에는 몰려드는 손님으로 눈코 뜰세 없이 하루를 보내고, 어머님의 주는 특별 인센티브까지 받아 들고 모두 기분 좋게 퇴근을 했다. 마지막으로 가게를 나서는 나에게, 점장은 말했다. “ 누나, 내일은 손님이 오늘 보다 많지 않으니 쉬셔도 괜찮아요. 성당 가서 미사 보시고 친구분들과 보내세요.” 그러자 어머니는 나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불안한 마음이 조금 앞섰으나 오늘의 팀워크로 보아 충분히 나 없이도 해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