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도쿄

by anego emi

12월의 도쿄는 크리스마스다. 해가지면 곳곳에 작품에 가까운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화려하게 불을 밝히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넘친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감쪽 같이 사라지는 하룻밤의 마법 같은 일루미네이션을 보기 위해 지방에서 관광버스를 빌려 도쿄로 오기도 한다. 시내의 핫 플레이스는 국내외 유명 기업이 스폰서가 되어 광고효과를 노리기도 하고, 유명 아티스트들의 이색적인 라이팅 퍼포먼스로 그곳을 찾은 이들의 눈과 마음을 끈다. 유독 롯폰기를 좋아하는 나는 금요일 늦은 오후부터 그곳에 있는 쯔타야 서점에서 새로 나온 신간들을 뒤적이며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해가 지면 전혀 다른 공간으로 변해 버린 눈부신 밤거리를 걷는다. 도쿄의 12월은 서울보다 춥지 않으며 바람이 불지 않은 날에는 가벼운 패딩만으로도 충분하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도쿄 타워는 도심 한가운데 세워진 알록달록한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된다.


나는 도쿄타워가 정면으로 보이는 타코야끼 체인점에서 타코야끼 여섯 알과 하이보루 세트 메뉴를 주문한다. 처음에는 이 조합이 어울릴까 갸우뚱했지만, 입안 가득 채운 물컹하고 뜨거운 타코야끼를 차가운 하이볼 한 모금이 진정시켜 주면서, 감칠맛이 도는 도톰한 문어와 달짝 지근한 소스맛을 살렸다. 이 메뉴는 퇴근 후에 식사를 대신해 간단히 한잔하고 싶은 직장인들을 위해 개발되었다고 했다. 보통 타코야끼는 천 엔에 열두 알이 기본인데, 혼자서 다 먹기는 조금 부담되니 개수를 반으로 줄이고, 대신에 신메뉴인 하이볼의 시음 효과를 노리기 위해 세트로 만들었다. 천 엔이면 보통 한 끼의 식사 값이고 퇴근길에 부담 없이 허기를 채우고 한 잔 할 수 있다. 게다가 약간의 추위를 감당할 수 있다면 야외 오픈 테이블에 서서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다. 혼자서 먹고 마셔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뿐더러, 주변에 외국인들도 많아서 순간 여행 온 기분을 낼 수도 있다. 나는 하이볼 한 잔을 더 주문하고, 이곳에서 맞이하게 될 세 번째 크리스마스를 떠올려 본다. 아마도 성당에 가서 미사를 본 후에 저녁에는 대모님의 가게를 도우며 보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어떤 에세이에서 읽은 적이 있다. 작가는 자신은 일 년 중에서 결코 혼자이고 싶지 않은 날이 딱 이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생일과 크리스마스라고 했다. 생일과 크리스마스를 함께 할 사람이 있다면 자신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나 또한 그러하기에 크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뒤돌아 보면 늘 기대는 실망을 남기고 생각대로 계획대로 되는 일은 별로 없다. 대학 시절에는 내 생일은 늘 기말고사와 맞물렸고, 회사원 시절에는 어찌 된 일인지 생일을 며칠 앞둔 날부터 일이 쏟아졌다. 매번 한참이 지난 후에 내 생일을 챙기지 못한 것을 안 친구들과 팀원들은 버스 지나간 다음에 손을 드는 것처럼 맥 빠지 소리를 하곤 했다. “ 에이, 그런 건 쑥스러워도 본인이 챙겨야지. 왜 말 안 했어?" 반면에 크리스마스는 친구들이랑 보낸 적이 많았는데 늘 크리스마스이브 날부터 마신 술이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졌고, 우리 집으로 몰려가 해장 라면을 끓여 먹고 잠이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생일도 크리스마스도 별 기대 없이 보내게 되었다. 이렇게 타지에 나오면 더욱 그러하다. 한편으로는 타지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 어느 날과 상관없이 눈을 뜨고 밥을 먹고, 행여 누군가 그날을 알아주면, 새로 산 옷이나 머리 스타일을 알아봐 주는 것처럼, 환하게 웃으며 감사하면 그만이다. 조금 쓸쓸한가?


적당한 취기를 벗 삼아 롯폰기 힐스를 넘어 아자부주반까지 걸어간다. 이곳은 오래된 노포들이 많은 곳이다. 소바부터 어묵, 야끼소바, 야끼토리, 고기, 초밥, 일본식 이탈리안까지 좁은 골목 곳곳에 보석 같은 맛집들이 숨어있다. 가격대도 다양해서 나처럼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유학생도 맘 편히 갈 수 있는 곳도 있다. 나는 이곳에서 오면 100년 다 되어간다는 야끼토리집과 어묵집을 들려 포장을 해 가곤 한다. 어디서나 먹어도 맛있는 메뉴들이지만, 왠지 그냥 지나갈 수가 없다. 수더분한 아저씨가 숯불 앞에서 정성껏 구워주는 야끼토리를 한 입 베어 물고, 맥주 생각이 간절하지만 차마 가게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오늘따라 아저씨는 그런 나를 힐끔 보며 말한다. “ 우리 집 야끼토리는 맥주랑 먹어야 제맛이지요. 매번 야끼토리만 사가는데 오늘은 들어가서 한 잔해요. 내가 대접할게요.” 나는 집에 가야 할 시간이 지났다고 말하며 손사래를 친다. 그러나 아저씨는 가게 안을 향해 맥주 한 잔을 외치고 종업원이 가져온 생맥주 잔을 건네며 말했다. “ 남겨도 되니까 시원하게 마셔요. 내가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라 생각해 주면 더 좋고.”나는 어쩔 줄 몰라하며 맥주잔을 받아 들고 수줍게 한 모금을 삼킨다. 차가운 겨울바람 같은 맥주 한 모금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자 온몸이 짜릿해진다. 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맥주 한잔을 모두 비우고 막 구워낸 야끼토리가 담긴 봉지를 선물처럼 받아 든다. 행복한 밤이다. 행복이란 막다른 골목에서 우연히 맞닥뜨리는 기대치 않은 오늘 밤 같은 것이란 생각을 하며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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