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몰아치는 예약 손님을 처내며 새해가 밝았다. 점장만큼 노련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부족함을 아낌없는 친절함으로 채웠고, 한국 특유의 대접받았다 는 기분을 이곳에서 차려낸 한 끼의 식사, 혹은 한잔 술로 느낄 수 있도록 애를 썼다. 그 덕분인지 재방문이 많았고, 지역 신문에서 우리 가게를 취재하러 오겠다는 기쁜 소식도 들려왔다. 그렇다고 해도 주말을 제외하고는 한가한 날이 많았다. 나는 점장을 구하는 대신 지금 아르바이트생들의 일하는 시간을 좀 더 늘리고, 수업이 없는 수요일은 내가 가게를 담당하겠다고 했다. 대모님은 너무 감사한 제안이지만, 행여나 졸업을 앞둔 나에게 부담이 될까 망설이는 듯했다. 나는 흔쾌히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으며, 챙겨주시는 용돈으로 졸업작품을 준비하는데 도움이 된다며 대모님의 두 손을 꼭 잡았다. 그렇게 점장의 부재는 해결되었으나 이제는 기다렸다는 듯이 주방에서 문제가 생겼다.
점장의 소개로 왔던 아르바이트 생이 그만두면서, 다른 아르바이트생에서 슬쩍 흘린 이야기에 의하면, 새로운 가게로 간 점장이 주방 이모님을 그쪽으로 모셔오기 위해 작업 중이라고 했다. 만약 주방 이모님이 점장처럼 갑자기 일손을 놓아버리는 경우라면 가게문을 닫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대모님도 나도 요리를 담당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주방 이모님의 눈치를 살피며 그녀의 의중을 떠보려 했으나, 눈치가 빠른 이모님은 알 수 없는 미소만 지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따라 비가 추적추적 내려 하루 종일 손님이 없었다. 나는 이렇게 손 놓고 있는 것보다 만두라도 빚는 것이 어떠냐고 대모님에게 제안을 했다. 예전에 대모님이 가장 자신 있는 음식이 손만두라고 했던 기억이 났다. 뿐만 아니라,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종종 엄마와 만두를 빚은 터라 자신이 있었다. 대모님은 너무 좋은 생각이라며 자신이 얼른 근처 마트에 가서 재료를 사 오겠다고 했다. 주방 이모님도 만두 맛만 괜찮으면 메뉴에 추가해도 좋다고 했다. 일본 사람들이 물만두를 좋아하니 미리 잔뜩 만들어 냉동시켜 놓고, 주문이 들어오면 끓는 물에 넣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게다가 단가가 높지 않으니 단골손님들에게 서비스로 제공해도 좋다고 했다. 대모님과 나는 눈처럼 내리는 겨울비와 간간히 눈을 맞추며 만두를 빚었다. 늦은 저녁식사 겸 술을 한잔 하러 온 몇몇 손님들이 우리가 빚어내는 만두를 보며 군침을 삼키기 시작했다. 눈치 빠른 대모님이 얼른 서비스로 한 접시를 내어 놓자, 손님들은 이렇게 이쁜 만두는 처음이라며 먹기 아깝다고 너스레를 떨었고, 모두 만두 맛은 더 일품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만두 빚기를 제안한 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대모님은 그런 나에게 찡끗 하고 윙크를 보내며 엄치를 척하고 올려 보였다. 손님은 많지 않았으나 신 메뉴가 탄생한 뜻깊은 날이었다. 어김없이 대모님은 오늘도 고생한 우리 딸을 위해 차가운 맥주 한잔을 건네주고 마감준비를 했다.
그때였다. 왠지 비장함이 담긴 굳는 표정의 이모님이 주방에서 나와 입구 테이블에 털썩 소리를 내며 앉았다. 그리고 살짝 미소를 머금은 낮은 저음으로 말했다. “ 마마, 내가 요즘 혼자서 너무 힘이 드는데, 주방 보조는 외국인이라 재료 다듬는 것 말고는 도움이 안 되잖아요. 마마가 너무 좋은 사람이라 가만히 있었는데 이곳저곳 오라는 곳도 많고… 그래서 말인데요. 급여를 좀 올렸으면 하는데… 슬슬 가게도 안정되고… 인기 메뉴도 생기고… 그렇죠?” 마지막에 마치 이 모든 것이 자신의 덕이라는 듯 이모님은 목소리의 톤을 높였다. 대모님은 부지런히 계산기를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이모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뭐라 할 말을 떠올리려는 듯 애를 쓰는 표정이 생각지도 못한 이모님의 급여 인상에 당황한듯했다. 게다가 다른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경악스러웠고, 순간 점장의 얼굴이 반사적으로 떠올랐을 터이다. 나 또한 그러했다. 나는 크게 맥주 한 모금을 넘기며 무표정하고 당당한 그녀의 표정 뒤에 감춰진 속물근성에 구역질이 났다. 대모님은 미소를 지으며 차분하게 말했다. “ 이모님,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시니 좀 당황스럽네. 그리고 아직 적자인데 벌써 이모님 급여를 올려드리기엔 부담이 돼요. 조금만 더 생각을 해주시겠어요? 우리 입장도 좀 배려해 주고요. 솔직히 이모님 월급은 처음에 오실 때 말한 대로 정확하게 맞춰드린 건데.. 고작 한 달이 지났잖아요. 부탁해요. 다시 한번 생각해 주세요.”
그러나 예상외로 결론은 쉽게 났다. 때마침 퇴근길에 들린 대모님의 남편분이 사업가답게 빠른 결론을 내어 주었다. 그분은 이모님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 불가능합니다. 이미 오실 때 급여에 대한 계약을 끝냈고 한 달이 겨우 지났는데 이런 요구는 부당합니다.” 그러자 이모님은 알듯 말듯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몇 번 고개를 끄덕이고 주방으로 들어가 자신의 가방을 챙겨 들고 인사도 없이 거칠게 문을 열고 나갔다. 그녀가 나간 후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대모님에게 이모님이 말을 저렇게 해도 당장 그만두시지 않을 것이라고 애써 위로를 하며 남은 맥주를 급하게 비운 후, 식탁을 움치고 빈 잔과 안주 접시를 치웠다. 설거지를 위해 주방에 들어섰을 때, 조폭 영화의 한 장면처럼 소름 돋는 풍경에 나도 모르게 헉하고 신음 소리를 내고 말았다. 서슬 퍼런 칼끝이 반짝이는 부엌칼이 빨래판 크기의 나무 도마 한가운데 꽂인 채 선반 위에 놓여있었다.
<아네고 에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