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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아람 Apr 30. 2023

다큐멘터리 영화가 가진 힘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

하나. 다큐멘터리는 그 만의 힘이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을 건조하고 담담하게 담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한 사람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고, 사회 제도의 사각지대, 역사의 참혹함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수프와 이데올로기> 스틸컷


둘.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봤다. 활자로만 누워있던 ‘제주 4.3’이 양영희 감독의 어머니 인생을 통해 얼마나 잔혹한 사건이었는지 생생해졌다. 위패 봉안실에 빽빽이 적힌 이름들과 너른 땅에 줄지어있는 희생자 위령비는 희생자의 규모를 가늠하기 위해 불렀던 ‘만 4천여 명’이라는 숫자에 희생자 얼굴이 가려져 있었음을 깨닫게 했다. 


셋. 양영희 감독의 어머니는 북한 국적으로 일본에 사는 재일조선인이다. 제주 4.3 때 자신의 가족과 이웃이 군에 의해 무참히 학살당하는 모습을 보고 남한과 북한 중 북한을 국적으로 택했다. 딸(양영희 감독)만 일본에 남기고, 세 명의 아들은 김일성 생일 때 북한에 보냈다. 북한이 남한보다 살기 좋은 지상낙원이라는 선전을 믿었다. 어머니는 찢어져 사는 북한의 혈육에게 돈과 생필품을 보내기 위해 밤낮없이 그리움으로 돈을 벌었다. 감독은 어머니가 왜 그토록 남한을 불신하고 북한을 지지하며 사는지 이해하지 못하며 다큐멘터리를 열었다. 


영화에서 2018년, 감독은 어머니를 모시고 제주에 왔다. 문재인 정부가 조선 국적자의 대한민국 입국을 허가하면서 어머니는 70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 때 제주 땅을 밟을 수 있었다. 70년 만이었다. 감독은 70년 전 18살의 어머니가 무참히 살해된 시신들 사이로 경찰의 검문을 피해 수십 km를 걸어 피신했던 길을 걸으며 어머니가 겪었을 당시의 제주 4.3을 상상한다.


그리곤 영화 말미에 감독은 눈물을 흘린다. 제주 4.3이 이렇게나 ‘큰 일’이었다고 말한다. 감당하기 힘든 만큼의 참혹한 역사가 제주에 있었다. 휠체어로 옆에 앉아있는 어머니는 역사가 할퀸 상처를 안고서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한 사람에게 이데올로기는 자리 잡았다. 


<수프와 이데올로기> 스틸컷. 70년 만에 밟은 제주 땅. 


넷.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 4.3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희생자와 유족, 제주도민에게 사과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2년이 지나고 그 바통을 이어받아 유족과 생존 희생자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국가차원의 배상과 보상, 국가트라우마센터 건립 등 정부 차원의 조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희생자의 한을 풀어주고 희생자를 치유하는 일이자, 국가적 반성을 통해 불행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게 다짐하는 일이다. 그리고 사건의 당사자에겐 국가가 국민을 보호한다는 신뢰를 주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대통령과 정치인의 역사관은 그래서 중요하다. 국가가 나아갈 방향성이나 나라와 나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무엇보다 개인의 인생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올해 4.3 추념식에 윤석열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일정상의 이유로 불참했다지만 직전 주말에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시구를 하고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했던 건 대통령이 경중을 어떻게 두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어 씁쓸하다. 국민의힘 최고위원 김재원은 제주 4.3이 3.1절보다 격이 낮다고 했다. 태영호는 제주 4.3이 김일성의 지시로 촉발됐다고 발언해 제주도민의 상처를 건드렸다. 수많은 희생자와 여전히 트라우마를 겪는 가족들을 떠올려봤다면 내뱉을 수 있는 말이었을까. 국민의힘은 내일(1일) 윤리위원회 첫 회의를 열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김재원, 태영호의 징계 수위는 어떻게 될까. 여러 정치적 계산을 통해 수위가 결정되겠지만 부디 제주 4.3 당사자가 실망하거나, 후퇴한 역사관이 드러나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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