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차로 3시간을 달려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에 가면 서울과는 분리된 공간에 놓인 듯하다. 누구 하나 이탈 없이 빠른 시계로 돌아가는 서울과 달리,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고 평온하다. 폰까지 무음으로 바꾸고 방에 던져놓으면 서울 생활자의 삶은 OFF다. 거실에는 엄마가 우편함에서 가져오신 지역 소식지가 놓여있고, TV에선 KBC광주방송, 광주MBC가 나온다.
채널을 돌리다가 지리산씨협동조합 광고를 발견했다. 지역 소멸 위기를 딛고 지속 가능한 도시재생을 만들기 위해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단체라고 했다. 지역주민 간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며 활력을 만들고, 지역자원을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중이었다. 맞다. 지역도 이렇게나 역동적인 곳이다. 활력을 불어넣어 '주어야' 하는 곳이 아니고 자발적으로 의미 있는 프로젝트와 사업들이 벌어지고 있는 곳. 그러나 서울에선 지역의 소식을 들을 수 없다. 다만 고요하고 평화롭고, 동시에 침체되는 중이라는 인상만 남아있을 뿐.
2년 전이었던가, 본가에서 광주MBC에서 만든 다큐 <친애하는 나의 도시>를 보고 솔직히 좀 놀랐다. 지역사에서 다큐를 이렇게 잘 만든다고? 지역사가 만드는 방송에 대한 편협한 생각을 반성했다. 지역사 방송이라면 약간은 올드할 것 같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라면 전형적인 농촌 모습에 푸근한 시골 인심이라거나 맛집이 많은 좋은 여행지였는데 그런 것들은 없었다. 다른 지역사와 협력해서 만든 총 3편의 시리즈였는데, 광주, 순천, 진주에 터전을 두고 살아가는 청년들이 등장한다. 변영주, 요조, 알베르토가 지역의 청년들을 만나 도시를 경험하고 그 도시의 매력을 발견한다. 그리고 아직 발견되지 않은 도시의 가능성도 담겨있다. 대형사에서 만든 다큐나 넷플릭스 다큐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때깔이었다. 지역에 사는 청년 당사자와 외부인의 시선이 함께 만들어내는 이야기도 좋았다. 지역에서만 소비되기엔 너무 아쉬운 다큐였다. 다행히 <친애하는 나의 도시>는 한두 달쯤 후에 <MBC 네트워크 특선>이라고 MBC지역사의 의미있는 방송을 선별해서 전국 채널에 편성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에 송출됐다. 다양한 지역의 이야기를 서울에서도 들을 수 있는 플랫폼, 통로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 도시재생은 그 도시가 품고 있는 매력과 도시생활의 ‘가능성’을 알게 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유튜브 콘텐츠 <오느른>을 생각했다. <오느른>은 각박한 직장 생활에 지쳐있는 도시 생활자가 로망처럼 꿈꾸는 시골살이를 대신 실현한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었다. 집을 뜯어고칠 땐 '저걸 언제 다 치우고 정리하나…' 내 일처럼 답답하지만 이겨내자고 응원하고, 동네 어른들과 새참을 나누고, 고스톱을 칠 땐 가족처럼 지내는 모습에 덩달아 따뜻해진다. 지역을 이야기하는 콘텐츠에서는 여전히 지역의 자원을 '이용'하고 만다. 관광 자원이나 개발 자원 정도로 여기고 이렇게 개발해 보자고. 그러나 <오느른>은 그 지역에 터전을 잡고 사는 생활자로서, '당사자'로서 이야기한다. 덕분에 시청자는 내가 시골에서 실제로 살아본다면 어떨까, 감각을 느껴보곤 하는데 그것만으로도 분절된 지역과 도시에 교류를 만드는 일에 일조한다고 생각한다.